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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명작의 공간 게재 일자 : 2017년 12월 22일(金)
차갑게 흩어진 ‘우리’처럼…‘샤갈의 마을’은 어디에도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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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우 작가가 자신의 외장 하드를 뒤져 찾아낸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과 가장 가까운 이미지 사진이다. 그는 소설을 쓴 지 수십 년 만에 카메라를 들고 소설의 배경을 찾아 헤맸지만, 결국 그런 마을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박상우 제공

(103) 박상우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의 배경… 종로·신촌 일대

폭설 내렸던 1990년의 겨울
술자리 끝난 뒤 걸었던 눈길
집 오자마자 미친듯이 글 써

정치적 허무小說로 불리지만
이합집산과 환멸이 반복하는
‘인간의 정서’ 말하려했던 것

실제로는 없는 ‘샤갈의 마을’
그늘진 정서 속 여전히 존재
‘우리’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내가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을 월간 ‘문학사상’에 발표한 것은 1990년 11월이었다. 작가로 등단하고 2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 무렵 나는 5년 가까운 중등교사 생활을 정리하고 등단과 동시에 학교에 사표를 내고 상경해 막막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전업을 선언하고 나서던 해에 아이까지 태어났으므로 작가로서의 막막한 미래와 가장으로서의 생계에 대한 두려움이 극에 달해 있을 때였다.

지리멸렬하고 고난스러웠던 1980년대가 저물고 드디어 1990년대가 막을 올렸지만 나 같은 작가 초년생에게는 그런 연대적 구별이 아무런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관철동의 호프집에서 작가 평론가 편집자 등등이 모인 술자리에 동석할 기회가 있었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1990년 1월 21일이었다고 기억된다. 그날 밤 실제로 소설의 내용과 흡사한 폭설이 내렸다. 어둠이 내릴 무렵부터 시작된 폭설로 인해 일행이 술자리를 파하고 밖으로 나왔을 때 이미 세상은 설국이 되어 있었다. 폭설에 겁을 먹은 일행이 하나둘 흩어져 가고, 그 흩어짐을 아쉬워한 몇몇이 신촌 이대 입구의 카페로 자리를 옮겨 맥 빠진 분위기를 이어갔다.

그날 새벽까지 눈은 계속 내려 21년 만의 폭설을 기록했다. 술자리가 끝난 뒤 나는 차량 통행이 끊어진 눈길을 몇 시간이나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설국이 된 서울, 아름다운 눈의 풍경을 관통하는 동안 나는 강렬한 영감에 사로잡혀 한 편의 소설을 온몸으로 다운로드하고 있었다. 몇 시간 동안 어디를 어떻게 걸어 집으로 돌아왔는지 모르겠지만 새벽 다섯 시가 가까워질 무렵 가까스로 집에 당도하자마자 나는 몇 십 장의 16절지를 꺼내놓고 미친 듯이 펜을 휘갈겨 대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알 수 없고, 나의 내면에서 봇물 터지듯 쏟아진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인지할 수 없었지만 나는 그것을 책상 가장 아래쪽 서랍에 처박아 두고 곧바로 곯아떨어져 버렸다.

여름이 끝날 무렵 문학사상사로부터 청탁을 받고 나는 서랍에 처박아 두었던 16절지를 꺼내 다시 읽어 보았다. 엄청나게 거칠고 막힘없는 속필이었지만 그 내용에는 당시 민중의 가슴에 보편적으로 맺혀 있던 1980년대에 대한 울화와 안타까움, 그리고 뚜렷한 거리감이 내재돼 있었다. 1980년대 내내 우리를 사로잡았던 민주의 새벽, 대동단결,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이 올 거라는 기대감 같은 것들을 소설 속의 정서는 강렬하게 거부하고 또한 혐오하고 있었다. 그것을 위해 나는 소설의 시점으로 1인칭도 3인칭도 아닌 ‘우리’라는 집단 인칭을 선택했다. 이런 식이었다.

“정치에 대한 혐오감이 언제부터 왜 생겨났느냐고 묻는다면 대동단결을 앞세우던 무렵의 몸서리쳐지던 정황을 다시 한 번 입에 담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 시절에 횡행하던 그 수다한 주의를 하나로 뭉뚱그려 ‘통통 속의 넝마주의’라고 마냥 비아냥거리며, 그러면서도 우리는 참담한 표정으로 때마다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넝마주이에게도 넝마주의가 있는 시대는 행복한가?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일부)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은 나의 첫 번째 소설집이다. 그 책이 출간되고 그것에 대한 세상의 관심 덕분에 ‘샤갈의 마을’은 낭만주의와 허무주의의 대명사처럼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다. 소설 제목과 같은 이름의 카페가 도처에서 목격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소설에 등장하는 정치 허무적인 낭만이 몹시 부담스러웠다. 내가 소설에서 말하고자 했던 본질은 정치도 아니고 허무도 아니고 낭만도 아니고 단지 물의 흐름과 같은 인간의 정서일 뿐이었다. 조건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환호와 환멸을 밥 먹듯 되풀이하는 인간의 정서 말이다.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여러 번 정권이 바뀌고 변화무쌍한 환호와 환멸, 이합집산이 거듭되었다. 작가인 나로서는 다른 무엇보다 인간 세상의 정서적 변모를 주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촛불이 광장을 메우고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혁명적 성과를 이루었을 때의 감동과 기대감은 ‘역사적 정서’가 아니라 ‘정서적 역사’로서의 가능성을 나로 하여금 강하게 느끼게 했다. 하지만 정서적 가변성은 정의도, 역사도, 승화도 결코 뿌리 깊은 나무로 성장하지 못하게 한다. 그것이 정서의 속성이지만 우리 민중에게 내재된 강한 잠재력도 또한 그것으로부터 우러난다는 게 나의 판단이다.

소설 속의 ‘우리’는 처음 모였을 때 여섯이었다. 하지만 시대적 문제에 대한 집중력을 잃은 뒤부터 정서적 분열과 갈등, 대립과 쟁투를 경험한다. 집단의 속성이 여지없이 노출되는 것이다. 그래서 ‘대동단결’을 포기하고 각자의 길로 뿔뿔이 흩어져간다. 우리가 인생에서 심심찮게 경험하게 되는 차갑고 냉랭한 흩어짐의 정서를 품은 채 말이다.


▲  박상우 작가가 12월 어느 날 종로, 신촌, 합정동 일대를 배회하다 돌아와 맥없이 앉은 종로구 익선동 선술집 골목 풍경.

“우리는 국도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겨놓았다. 서로의 보폭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하나는 앞서가고 둘은 그 뒤를 따라가고 나머지 셋은 앞선 자들이 가는 길을 그저 따라가는 형국이었다.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걷는 사람도 없었다. 하나같이 묵묵히, 그러면서도 무거운 등짐을 짊어진 사람들 같았다. 얼핏얼핏 내리는 눈발 속으로 어제의 우리가 다가오고, 다가오다가 순간적으로 등을 보이며 멀어져 가기도 했다. 어제까지 어깨를 겯고 걷던 길이 오늘 갑자기 낯설게 여겨지는 이유를 우리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런 거리감도 느끼지 못하던 사람들에게서 어느 날 갑자기 숨 막히는 단절감을 느껴야 하는 이유도 또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잃어버린 것과 앞으로 잃어버릴 것, 그리고 다가오는 것과 멀어져가는 것. 그런 것들 속에 낯선 우리가 던져져 있었기 때문이다.”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일부)



2017년 봄, 상상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작가생활 30년이 가까워지는 시점에 그것이 다시 나를 찾아올 거라는 생각은 꿈에서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작가생활 30년 동안 내 소설의 궤적은 ‘샤갈의 마을’을 떠나 ‘사탄의 마을’과 ‘사람의 마을’ ‘인형의 마을’을 거쳐 ‘마야의 마을’에 당도해 있었다. 평생을 일관하는 주제 궤도의 마지막 지점에 이른 작가에게 가장 초기 작품이 다시 나타난다는 건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어느 봄날, 3호선 대화역에서 전철을 탔다. 깜빡 잠이 들었다 눈을 뜨자 누군가 내 앞에 서 있었다. 10년 이상 만나지 못해 까마득히 잊고 있던 출판인이었다. 꿈속에서 걸어 나온 인물처럼 그가 나에게 책 한 권을 만들자고 했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작품 제목이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었다. 클래식 판본의 시리즈물로 기획된 그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는 1990년에 처음 발표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을 수정할 수 있었다. 쉼표를 없애거나 조사를 없애거나 몇 개의 단어와 문장을 첨삭하는 일이 오래된 원한을 푸는 과정 같았다. 나에게 문학적 명성을 얻게 해 준 대가로 외려 나에게 외면당한 애증을 푸는 데 오랜 세월이 걸렸다. 작가 서문에 나는 “2017년 6월 이후, 이 책에 수록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 정본임을 밝히는 것으로 이 작품의 본래 자리를 되찾게 해 주고 싶다”고 썼다.

2017년 9월 문학 심포지엄을 위해 11일 동안 터키·그리스를 다녀온 뒤 어느 일간지에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을 회고하는 기사가 실렸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두 달 뒤, 이 지면을 위한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나는 처음으로 ‘샤갈의 마을’이 나를 부르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었지만 27년이 지난 뒤에 나는 비로소 내가 출발한 지점, 바로 그 마을로 되돌아가서 뭔가를 확인해야 할 절실한 필요성을 느꼈다.

2017년 12월 어느 날, 나는 샤갈의 마을을 찾아 오전부터 늦은 저녁 무렵까지 종로와 신촌, 합정동 일대를 배회했다. 샤갈의 마을을 찍겠노라고 카메라까지 챙겨 무거운 걸음을 옮겨야 했다. 하지만 어둠이 내리고 지칠 대로 지쳐 다시 출발 지점인 종로로 돌아와 익선동 뒷골목 선술집에 앉았을 때 나는 깊은 충격에 사로잡혀 있었다. 지난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실체적 배경으로 존재할 거라고 믿어온 ‘샤갈의 마을’은 이 세상 어디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사진 한 장 찍지 못한 채 처음부터 그런 마을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걸 비로소 깨치게 된 것이었다.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마을, 구글 지도로도 찾아갈 수 없는 샤갈의 마을에 나는 두 명으로 줄어든 최소 단위로서의 ‘우리’를 남겨둔 채 다른 마을로 떠났다. 그 최소 단위로서의 우리를 해체하려는 여자가 두 사람 앞에 술이 취한 채 앉아 있었다. 저간의 세월 속에서 그들은 어떤 정서적 부침을 거듭하고 지금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나는 소주에 취해가며 반추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술이 취할 만큼 취했을 때, 물리적 공간에서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그 마을이 내 정서 속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또렷하게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정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정서적 그늘 속에 그 마을은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나와 너, 그와 그녀, 우리 모두의 그늘진 정서 속에서 눈이 내리고, 샤갈의 그림이 어른거리고, 술잔이 흔들리고, 담배 연기가 피어오를 때….



“짓눌리고 비틀린 기억의 잔상들마저도 시간의 흐름과 함께 아득하게 밀려 나가고 오래지 않아 남겨진 우리 둘의 의식에는 드넓은 여백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세상에는 여전히 폭설이 내리고 비록 둘이지만 우리는 아직 ‘우리’로 잔존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하여 의식이 지워져 나가는 와중에도 우리는 마지막 안간힘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따금 여자 혼자 술을 마시는 소리, 공허롭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아주 먼 데서 오는 여음처럼 귓전으로 밀려들었다. 그가 보고 싶어요. 누가 그에게 전화를 걸어줄 수 없나요? 내가 그를 기다린다고…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에서 아직도 그를 기다리고 있다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잘게 부서져 남겨진 우리 둘의 등판 위로 눈가루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잠시 뒤 우리는 여자가 마지막 신음처럼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춥고 배고파. 그리고 남자와 자고 싶어….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일부)

소설가 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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