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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7년 12월 26일(火)
독배에 순응한 철학자, 절망하는 그의 제자…‘선한 영혼’은 불행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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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역사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의 ‘소크라테스의 죽음’. 우리가 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스스로 묻기’를 생각할 때 어김없이 떠오르는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순간을 담았다.

■ 문광훈의 미학 에세이 - ⑪ 다비드 그림 ‘소크라테스의 죽음’

부당한 죽음 받아들인다 해도
누명이 벗겨지는 것도 아닌데
왜 소크라테스는 안 피했나?

‘자기 자신의 모름을 아는 것’
사소한 차이지만 커다란 격차
그 엄청난 무게에 죽음도 수용

질문이 없음은 생각이 없는 것
역설적으로 정치적 성향 강해
당대 시민의 이러한 몰지각에
지혜·진리만 추구한 그의 뜻은
뛰어난 제자 플라톤으로 계승


우리는 삶을 삶답게 살고 있는가? 그래서 현재의 이 시간을 시행착오와 좌충우돌에도 불구하고 그런대로 보람되게 만들어갈 수 있는가? 아니, 그렇게 지금 만들어 가고 있는가? 이러한 물음은 너무도 오래된 것이라 케케묵어 보이기도 하지만 간단하진 않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그래서 삶의 철리(哲理)를 점차 깨우치면서 이제야 조금씩 철들어 가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쉰 살 나이를 지날 무렵 누구나 겪는 신체적·생물학적 퇴행에 따른 어떤 불가피한 순응의 표현인가? 어떤 것이든 삶이 그런대로 의미 있기 위해서 우리는 잠시 돌아볼 수 있어야 하고, 이렇게 돌아보면서 자기 삶이 지금 처한 곳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적어도 가끔은 점검해 봐야 한다. 일주일에 한 번, 아니면 일과 후 잠자리에 들기 전 10분 혹은 20분만이라도 자신만을 위한 시간은 꼭 필요해 보인다. 그것은 ‘스스로 묻기 위해서’다. 이럴 때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그는 소크라테스다. 자크-루이 다비드는 이 철학자의 마지막 순간 모습을 잘 보여준다.

# 다비드의 ‘소크라테스의 죽음’

다비드는 프랑스 고전주의의 대표적인 역사화가다. 그는 프랑스 혁명기의 확고한 공화주의자로 1792년에 국민의회의 대표였고, 루이 16세의 처형에 가담하기도 하였다. 그는 혁명가 로베스피에르와 장 폴 마라의 친구였다. ‘마라의 죽음’은 이 무렵 국민의회의 주문을 받아 그린 뛰어난 작품으로 죽은 마라를 혁명의 정치적 순교자로 격상시킨 것이었다. 그는 나폴레옹의 통치 기간에 황제를 찬양하는 그림을 많이 그렸지만, 나폴레옹의 실각과 더불어 그의 생애도 추락하기 시작한다. 이런 그가 남긴 중요한 작품의 하나가 ‘소크라테스의 죽음’(1787)이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묘사된 공간은 지하 감옥인지도 모른다. 그림의 정중앙에는 긴 나무 램프 하나가 수직으로 반듯하게 놓여 있다. 관람자의 시각에서 보면, 그 오른편으로 소크라테스가, 윗도리를 벗은 채, 관람자 쪽으로 얼굴을 보이면서 왼손을 들어 위를 가리키고 있다. 그의 오른쪽에는 대여섯 사람이 선 채로 그의 말을 듣거나 곧 닥칠 그의 죽음을 예감한 듯이 고통으로 얼굴을 감싸거나 손을 들어 울부짖고 있다. 이 무리는 아마도 소크라테스의 임종을 지킨 것으로 알려진 제자들 - 크리톤과 플라톤, 아폴로도로스일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들이켤 때 대성통곡했다는 제자가 아폴로도로스라고 하니, 아마도 그는 화면 오른편에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고개 숙인 청년일지도 모른다. 소크라테스의 앞에 앉아 그의 왼쪽 무릎을 만지고 있는 사람은 크리톤일 것이다. 그는 소크라테스와 같은 마을에서 태어난 죽마고우로 탈옥을 종용하기 위해 찾아왔다. 그러나 잘 알려져 있듯이 소크라테스는 이를 거절한다.

그림의 맨 왼편 입구 쪽에서 체념한 듯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는 사람은 제자 플라톤이다. 플라톤 너머로 나 있는 아치형 통로에는 또 한 명의 제자가 두 손을 벽에 뻗고 괴로워하며 서 있다. 이 통로의 맨 끝에는 세 사람이, 마치 조금 전에 방문을 끝낸 듯이, 위쪽 계단으로 올라가고 있다. 그런데 맨 뒷사람은 아직도 미련이 남은 듯이 이쪽을 쳐다보며 손을 흔들고 있다. 플라톤과 크리톤 사이에는 한 청년이 고개를 돌린 채로 소크라테스에게 잔을 건네고 있다. 잔에는 독약이 들어 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이 독배를 받으려고 오른손을 내뻗으면서 왼손으로는 하늘을 가리킨다. 나는 죽을 것이지만, 너희는 이 하늘을 보고 이 하늘을 생각하라. 나는 독약으로 세상을 떠나지만, 너희는 신과 영혼의 불멸을 믿으라…. 아마도 이렇게 그는 제자들에게 말하는지도 모른다.

아무런 이유 없이 고소를 당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부당한 죽음을 언도받았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모함을 비난하고 죽음을 거부할 것인가? 그래도 나는 죽어야 할 것이다. 만약 살게 된다면 그때까지 품어왔던 믿음을 취소하고 진리를 부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늘 그렇듯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선한 삶을 사는 데는 결심만으로 부족하다. 그것은 때때로 소크라테스가 보여주듯이, 생명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죽어간다고 해도 반드시 누명이 벗겨지는 것도 아니다. 소크라테스는 죽음뿐만 아니라 세상의 중상과 모략도 피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 ‘사소한’ 차이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널리 알려져 있듯이 ‘자기 자신을 아는’ 데 있다. 그것은 어쩌면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소크라테스적 진리는 세상이나 사물의 본질에 대해 아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아는 데 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자기 자신의 ‘모름을 아는’ 데 있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일 -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고, 아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아테네 당국은 소크라테스를 사형에 처한다. 그 이유는, 되풀이하건대, ‘사소한 차이’다. 하지만 이 작은 차이의 장애물을 손쉽게 넘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 사람은 사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스스로 대단한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자기가 모른다고 여기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나는 내가 모르는 것은 내가 알고 있다고 여기지도 않는다는 이 사소한 만큼만 그(모르면서 안다고 여기는 사람)보다 조금은 더 현명한 것으로 여겨지네.” 그러므로 이 작은 차이는 작은 게 아니다. 소크라테스는 바로 이 사소한 차이의 엄청난 무게 때문에 죽어간다.(‘소크라테스의 변론’·서광사 참조)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세상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신을 부정하지도 않았고, 청년들의 영혼을 오염시키지도 않았다. 그가 한 것은 단 한 가지 - ‘계속 묻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지속적인 물음은 묻지 않는 사람들의 시기를 야기한다. “계속해서 캐묻는(exetasis) 일로 인하여, 아테네인 여러분, 나에게 그렇게도 많은 적대심이 생겼습니다.”



# 뻔뻔함과 몰염치가 없어서

이런 소크라테스의 상황에 대해서는 플라톤의 초기 저작 4권 - ‘에우티프론’ ‘변론’ ‘크리톤’ ‘파이돈’에 잘 나타나 있다. 그래서 이 책들은 흔히 ‘소크라테스적 대화편’으로 불린다. 이 대화편에서 얘기되는 것은 많지만, 그것은 한마디로 ‘바르게 사는 일’에 관한 것이다. 바르게 사는 일은 “남을 방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최대한 선해지도록 스스로 노력하는 일”이다.(‘변론’, 39d)

현명한 자든 불경(不敬)한 자든, 이 둘은 변덕 많은 세상이 붙인 이름이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대체로 생각하지 않고, 따라서 묻지 않는다. 그들의 몰염치와 시기, 중상과 모략도 이 묻지 않음에서 온다. 묻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이 생각 없음의 타성은 아마도, 역설적으로, 고대 아테네 시민들의 강한 정치적 성향을 이루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는 당대 시민들의 과도한 정치의식과 이런 정치의식을 지탱하는 생각 없는 비(非)지성주의에 희생됐다고 할 수도 있다. 이런 대중적 몰지각에 대하여 소크라테스는 어떤 식으로든 항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변론 기간에 마음만 먹었다면,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재판관과 배심원들을 충분히 설득할 수 있었을 것이고, 만약 그랬다면 사형선고도 뒤집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이 부당한 판결에 저항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그 판결을 받아들인다. 그런 그에게 왜 할 말이 없었겠는가? 그때 그의 나이는 일흔 살이었다! 그 이유는 흥미롭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오히려 저의 무능력 때문에 저는 유죄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뻔뻔스러움과 몰염치가 부족해서이고, 여러분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려는 의지가 없어서입니다. 만약 제가 통곡하거나 탄식하거나 그 밖의 저답지 않은 것들을 행하거나 말했더라면… 그와 같은 것은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익숙하게 들은 것일 것입니다.”

결국 소크라테스가 죽은 것은 “뻔뻔스러움과 몰염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 믿는 것에 당당하고자 했고, 그 믿음에 투철하고자 했다. 그래서 자기의 믿음을 거스르거나 그 원칙에 어긋나는 데는 동의하지 않으려 했다. 그런 그가 세상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하여 그들의 비위를 맞추거나 아첨할 수는 없었다. 그는 자기 마음에 내키지 않는 일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통곡’이나 ‘탄식’은 그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에게는 “죽음을 피하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라, 비천함을 피하는 게 훨씬 더 어려웠기” 때문이다.(38d) 그가 두려워한 것은 죽음이 아니라 비천함이었다. 그러나 비천함 없이 우리는 살 수 있는가?



# 영혼을 돌보는 일

소크라테스는 삶에서 일체의 거짓을, 그것이 말에서건 행동에서건 올바르지 않은 것은 무엇이든지, 피하고자 했다. 그가 늘 의식한 것은 이 세상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신이었고, 재산이나 명성 같은 세속적인 가치보다는 지혜와 진리였다.

“아테네 여러분, 나는 여러분을 친구로서 반깁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보다는 신께 복종하렵니다. 제가 숨 쉬는 동안, 그리고 그것을 할 수 있는 동안, 저는 지혜를 찾는 일도, 제가 만나는 여러분께 충고하는 일도, 그래서 익숙한 연설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입증하는 일도 그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가장 위대하고 지혜와 힘으로 유명한 도시인 아테네 시민인 최상의 사람들이여, 당신들은 돈에 대해서는 그렇게 신경을 쓰고, 그렇듯이 명망과 명예를 그렇게 바라는 것에 대해서는 부끄러워하지 않으면서도, 통찰이나 진리에 대해서는, 그리고 당신의 영혼에 대해서는 그것이 최상이 되도록 돌보지 않습니까? 이 점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으렵니까?”(29d-e)

이 땅에 살면서 ‘통찰’이나 ‘진리’ 혹은 ‘영혼’에 대해 말하기란 오늘날에도, 마치 2500여 년 전처럼, 여전히 어렵게 여겨진다. 또 이런 가치들은 쉽게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그에 비해 ‘돈’이나 ‘명망’ 혹은 ‘명예’는 얼마나 위력을 발휘하는가? 그것은 인간 사이에서 세속적 힘으로 잘 입증된다. 그래서 모두가 앞을 다퉈 추구한다. 몰염치하고 뻔뻔하다면, 우리는 쉽게 성공할 것이다.

이에 반해 “영혼을 돌보는 일”과 관련되는 가치들은 얼마나 얻기 어려운가? 그리고 그 어려움에도 또 얼마나 쉽게 잊히고 마는가? 그러므로 소크라테스의 길은 중상과 시기와 험담을 수반한다. 진리의 길은 쉽게 오해와 불경을 초래한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은,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나오는 제자들의 다양한 반응이 보여주듯이, 낙담하고 체념하며 탄식하고 외면한다. 아마도 진리는 체념 없이 얻기 어려울 것이다. 선한 삶은 오직 탄식과 절망 속에서 잠시 혹은 아주 드물게 성취될지도 모른다. 진실 추구의 이 어려움은 이 그림의 배경 - 소크라테스 뒤로 밋밋한 회색 벽이 곳곳에 팬 채로, 그러나 견고한 성채처럼 자리하는 데서도 암시된다. 그것은 고전적 스토아주의에 이어져 있을 것이다.

그런 정신의 견인주의(堅忍主義)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혹독한 자기통제가 필요할 것이다. 소크라테스에게 그 훈련은 ‘다이몬’(daimonia)을 통해 이뤄졌다. 다이몬이란 영혼적인 것 혹은, 더 평이하게, 양심의 목소리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양심의 소리에 따라 그는 늘 자기를 검토하면서 재산이나 명망이 아니라 영혼을 돌보는 데 최선을 다했다. “자기 검토가 없는 삶은 전혀 살 만한 가치가 없다”고(38a) 그는 말하지 않았던가? 영혼이 선하다면, 죽어 있건 살아 있건, 어떤 나쁜 일도 없으리라고 그는 믿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이라는 그림에서 소크라테스 외에 그런 자기통제를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플라톤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크리톤이나 독배를 전하는 청년도 그런 인내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플라톤에게는 못 미치는 듯하다. 플라톤의 절망은, 무리로부터 동떨어진 채,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고개를 푹 숙인 모습에서 묻어나지만, 그럼에도 그의 슬픔은 두 손을 들어 올리거나 탄식하는 제자들의 슬픔과는 달라 보인다.

그는 격심한 절망 속에서도 자세를 흩트리지 않는다. 아마도 네 대화편은 플라톤의 이 같은 고결한 견인주의에서 생겨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결국 스승의 죽음을 먼지처럼 헛되이 날려 보낸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사건으로, 그래서 거듭 새겨야 할 역사의 성찰적 사례로 변용시킨 것이다. 그것은 ‘선한 영혼의 불우한 전통’이라 할 만하다. (문화일보 11월 28일자 25면 10 회 참조)

충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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