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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김종대의 동네 집 이야기 게재 일자 : 2017년 12월 27일(水)
재개발 폐업 목욕탕 복합 문화공간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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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목욕탕’에서 ‘문화공간’으로 변신한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행화탕’ 전경. 신창섭 기자 bluesky@

아현동 ‘행화탕’

1958년 개업 하루 100명 손님
찾는 사람 줄어 2011년 문닫아

아무도 눈길 안 준 시한부 건물
2016년‘문화프로젝트’로 부활

공연·문화마켓·전시·세미나…
편안한 분위기 예술적 영감 가득


‘행복 목욕탕’이라는 일본 영화에서는 말기 암 환자인 여주인공이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마감하기 전, 운영이 중단됐던 자신의 목욕탕을 다시 열어 흩어졌던 가족이 모일 수 있도록 노력하는 모습이 감동적으로 그려졌다. 주인공을 진짜 엄마라고 믿고 살아온 딸에게 매년 같은 날에 대게를 보내주는 친엄마를 만나게 해주고 집 나간 남편이 밖에서 낳아온 아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등 머릿속으로는 가능할지 모르나 행동으로 옮기기 어려운 일들을 용기 내어 실천해간다. 이 영화를 보면 여주인공의 자기희생적인 행동이 자신에게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현동에 있는 ‘행화탕’은 영화 속의 여주인공처럼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는 대중목욕탕이다. 1958년에 영업을 시작했다고 알려진 이곳은 목욕탕 굴뚝의 높이만큼이나 인기가 높았던 곳이었다. 목욕탕이 잘됐을 때는 하루에도 100여 명의 손님이 들었다고 한다. 요즘처럼 집집마다 목욕시설을 갖추고 있지 못했던 1960∼1970년대의 목욕탕이 문명인의 상징처럼 생각된 적도 있었는데 한 달에 몇 번 목욕탕에 가느냐 하는 것이 친구들 사이에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아파트의 보급과 주택에 몸을 씻을 수 있는 시설이 갖춰지고 대형 찜질방이 유행하면서 ‘행화탕’ 역시 찾는 사람이 줄어들어 결국 2011년에 문을 닫고야 말았다. 더구나 아현동 일대가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남겨진 건물마저 시한부의 처지가 되었다.

한동안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아 쓸쓸한 종말을 기다리던 ‘행화탕’이 2016년 초 젊은 기획자들을 만나면서 영화처럼 아름다운 마무리를 시작하게 됐다. 한시적이어서 더 밀도 있는 문화예술 활동이 가능했다는 기획자의 말처럼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화예술 활동들은 거침이 없다. 2016년 5월, ‘행화탕 프로젝트’ 개관식을 시작으로 다양한 공연이 줄을 잇고 있는데 매월 마지막 수요일에 열리는 ‘예술로 목욕하는 날’ 행사는 예술 공연, 문화마켓, 전시, 체험, 세미나로 빈틈없이 채워져 있다. 이곳의 문화 활동들은 서로 다른 분야,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함께하는 특징을 갖고 있는데 이들은 공간과 시간을 공유함으로써 ‘행화탕’이 사라진 이후에도 함께 기억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  60여 년 전에 지어진 행화탕은 이제 마을 주민들이 즐겨 찾는 사랑방으로,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추억의 공간으로, 각종 예술작품을 선보이는 전시장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사진 왼쪽부터) 신창섭 기자 bluesky@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한 ‘행화탕’은 그 나이만큼이나 낡았다. 힘들게 지붕을 받치고 있는 얼기설기한 지붕널은 겨울의 찬바람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지만 할머니 얼굴의 주름처럼 정겹다. 새로 깐 뜨끈한 바닥에 앉아 있으면 외갓집 아랫목에 앉아있는 것 같은 편안함을 느낀다.

목욕탕 내부를 장식했던 낡은 사각타일은 더 이상 모던할 수 없는 공연의 배경이 되고 사우나실과 작은 문으로 연결된 괴기한 분위기의 보일러실은 예술적 영감으로 가득 차 있다. 목욕탕 건물 외에도 지금은 전시장이 된 목욕탕 주인이 살던 2층 주택과 창고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예전의 아현동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도 목욕탕 굴뚝에 그려진 색 바랜 목욕탕 표시가 과거에 대한 향수를 강하게 불러일으키고 있다.

‘행화탕’은 언젠가는 철거될 운명이지만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는 방법을 선택했다. 비어 있던 공간에 문화가 들어오자 주민들도 다시 이곳을 찾기 시작했다. 주민들 삶의 한 부분이었던 ‘행화탕’은 과거이자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살구꽃인 행화는 동요 ‘고향의 봄’에도 등장할 만큼 눈부시게 아름다운 연분홍 꽃이다. ‘꽃은 지기 때문에 아름답다’던 어머니의 말씀처럼 꽃이 피면 지는 것이 순리지만 꽃이 지는 모습은 늘 애달프다. 그래서 ‘행화탕’도, 병석의 어머니도 좀 더 오랫동안 아름다운 시간을 함께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건축가·디자인연구소 이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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