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위안부 보고서와 四面楚歌 한국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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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성신여대 교수 국제정치학

외교의 달인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외교 협상은 한 나라가 ‘절대적 만족’을 추구한다면 타결될 수 없고, 두 나라가 협상 결과에 대해 불만족스럽지만, 그것이 균형을 이룰 때 타협점을 찾을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문제는 그 ‘균형’이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박근혜 정부가 체결한 한·일 일본군위안부 합의는 양국이 ‘불만족의 균형점’을 찾으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이 합의 체결 이후 국내에서는 끊임없이 비판이 제기돼 왔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는 굴욕적인 위안부 협상 무효화와 재협상 추진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선거 이후 합의안 검토 태스크포스(TF)가 구성돼 협상 과정뿐만 아니라 ‘최종적·불가역적 해결’과 같은 논란이 된 문구 삽입 과정의 문제점들을 지적하는 보고서를 27일 내놓았다. 이 보고서는 과거 합의가 ‘피해자 중심적 접근’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피해자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함과 동시에 외교 협상에서 ‘민주적 절차’가 더욱 중시돼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 TF의 보고서 결론을 받아들여 정부의 입장을 정리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하지만 이 보고서는 어디까지나 권고사항일 뿐이다. 시민단체가 협상에 직접 나설 수는 없는 게 현실이다. 문 정부는 이와 관련한 입장을 재정리해 일본과 협상에 나서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떠안게 됐다.

정부의 선택지는 기존 협정 파기, 재협상, 기존 합의안 유지 등 세 가지다. 대선에서 외교 사안을 국내정치적 목적을 위해 정략적으로 이용해온 문 정부의 ‘외교 포퓰리즘’ 때문에 기존 합의안 유지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일본에서는 문 정부 출범 이후 정부가 나서서 시민단체를 설득해 이 사안이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보고서에 한·일 간에 ‘비공개’로 분류된 내용마저 공개됨으로써 양국 간 신뢰에는 커다란 금이 가고 말았다.

보고서가 나온 후 일본은 재협상 불가라는 반응을 즉시 내놨다. 위안부 같은 반인륜적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한 일본 측의 주장에 커다란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동시에, 상대방이 있는 외교 사안을 마치 ‘외교 적폐’를 처리하듯 하는 문 정부의 책임 또한 가볍지 않다. 문 정부는 국내정치와 국제정치는 ‘정치 양식(政治樣式)’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망각하고 있다. 국내에서 적폐 청산하듯이 외교적 합의들이 그렇게 간단하게 처리될 수 있는 게 아님을 차제에 깨달아야 한다.

이번 보고서는 한국 외교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외교부는 합의의 논란이 되는 부분과 관련해 정부 내 협의 과정에서 ‘조연’임을 주장하고 모든 책임을 청와대로 떠넘기고 있다. 엘리트 집단을 자처하는 외교부가 이런 식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국민을 크게 실망케 한다. 외교·안보 관련 사안은 일단 결정되고 나면 청와대와 외교부의 입장을 불문하고 정부의 입장이 된다. 이번 보고서는 국익의 관점이 아니라, 외교부에 면죄부를 주기 위한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문 정부 외교는 미국과 멀어지고, 중국에 굴욕당하고, 일본으로부터 배척받고, 북한으로부터 협박당하는 사면초가(四面楚歌) 상태다. 국가는 영속적이고, 정부는 5년마다 바뀐다. 5년짜리 정부가 국가의 이름으로 합의한 외교적 사안들을 국내정치적 목적을 위해 아무런 대안 없이 적폐 청산하듯이 밀어붙여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