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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7년 12월 29일(金)
다이어트·일회용품…‘일상의 삶’ 진정 가벼워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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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벼움의 시대 / 질 리포베츠키 지음,이재형 옮김 / 문예출판사

종교, 금욕생활·통제 외면받아
대중은 명상·즐거운 지혜 원해

예술, 창작-장난감 경계 붕괴
경박한 미학으로 급속한 변신

性생활·감정 ‘쿨’해졌지만
소비지상주의서 못 벗어나
이율배반적인 현실 밝혀내


‘풍선개’(Ballon Dog)라는 작품으로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미국의 현대미술가 제프 쿤스는 가벼움의 분위기를 예술에 불어넣는다. 창작품과 장난감의 경계를 무너뜨려 유치하고 가벼우며 무의미한, 유희적 예술을 창조한다. 그보다 앞서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이 만화, 메릴린 먼로 같은 스타, 통조림 등 소비 지향적인 가벼움의 이미지와 제품을 예술의 형태로 복제해 놓았지만, 쿤스는 헬륨가스를 넣어 부풀린 토끼나 강아지로 경박한 가벼움의 미학을 완성했다.

패션 디자이너 폴 푸아레는 1906년 코르셋을 없애고 엉덩이 부분이 줄어든 드레스를 내놓았다. 살찐 여성을 찬양하는 지배적인 취향과 반대되는 날씬하고 유동적인 여성의 몸이 찬양받기 시작했다. 1926년 짧고 곧은 검은색 원피스로 춤추고 일하며 운전하는 활동적인 여성의 새로운 실루엣을 창조한 샤넬은 “몸의 해방이라는 아름다움 말고 다른 아름다움은 없다”고 선언했다. 현대의 이동성과 활력, 행동의 이상을 옮겨놓은 미적 기준의 혁명이었다. 곧바로 동글동글한 여성 모델은 자취를 감췄다.

가벼움이 얘깃거리가 될까 싶지만, 가벼움과 무거움은 오랜 논란거리였다. ‘행복의 역설’ ‘사치의 문화’ 등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프랑스 철학자 질 리포베츠키는 이 책에서 ‘가벼움’이라는 주제로 인류학적·사회학적 접근법을 통해 우리 시대를 해석한다. 과거에 무거운 것은 존중할 만한 것이며 진지한 것, 부자 계급을 연상시켰고, 가벼움은 싸구려 상품이나 가치의 부재, 서민 계급과 연결됐다. 그러나 이런 세계는 더 이상 우리의 세계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가벼움은 예술 분야뿐 아니라 사물과 육체, 스포츠, 음식, 건축, 디자인 등 수많은 분야에서 하나의 가치와 이상, 절대적 필요성이 됐다는 것이다.

기술과 경제의 영역에서 오랫동안 무거운 설비에 우선권이 주어졌지만, 이제는 소형화·비물질화 등 가벼운 것이 지배한다. 20세기 중반만 해도 경제발전에서 석탄과 철강·화학산업, 공작기계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량소비자본주의의 출현은 가벼운 재화와 용역의 규모가 무거운 제품과 설비를 능가하게 했다. 서구의 가계소비는 이미 국민총생산의 60∼70%를 차지하며 ‘소비자본주의는 곧 산업화된 자본주의’라는 말이 나온다.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이 넘쳐난다. 탈물질화되고 유동적이며 신속한 금융자본주의의 탄생은 ‘가상 경제’라는 가벼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하이퍼모던한 가벼움의 사조는 인간의 정신과 몸, 감정, 관계까지 바꾸었다. 1970년대 말부터 서구에선 새로운 종교적 움직임이 나온다. 내세의 구원을 위한 엄격한 자기통제와 금욕적 생활을 요구하는 종교는 벗어던지고, 몇 시간으로 긴장을 완화해주는 명상이나 즉각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영적 수양, 가볍고 즐거운 지혜를 대중은 원한다. 가벼움은 몸에 날씬함에 대한 강박을 심었다.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이렇게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시간과 큰돈을 쓴 적이 인류사에 없었다. 설탕과 지방을 뺀 ‘가볍게 먹기’가 일반화됐다. 욕망을 제한하는 사회적 관습을 거부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방종한 가벼움은 그 이전에도 있었지만, 현대에 나온 쿨(cool)한 감정은 차원이 다르다. 전자가 우아함과 감정의 은폐를 통한 유혹의 계획이라면, ‘쿨’은 욕망의 자발성과 주체의 진실성을 통해 찾아진다. 영원히 견뎌내지 않아도 되는, 쓰고 버릴 수 있는 감정과 사랑은 ‘가벼운 동거’나 제3유형의 커플들을 낳았다.

자, 그래서 사람들은 가벼워졌는가? 저자는 가벼움에 대해 정치적·도덕적 찬양을 하거나, 그것을 미덕이나 악덕으로 구분하려 하지 않는다. 단지 그것을 인류학적 요구로, 사회조직 원리로, 미학적이며 기술적인 가치로 관찰하고 분석할 뿐이다. 그러나 가벼움의 혁명은 양날의 칼과도 같다는 걸 놓치지 않는다.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가벼움으로 인정되고 체험된 모든 것은 어느 순간 그 반대되는 것으로 변모한다는 걸 보여준다. 예컨대, 현대예술로 자리 잡은 ‘키치’는 경박하고 피상적인 방법으로 기분을 전환시킴으로써 하나의 반복적이고 천편일률적인 세계를 그려낸다. 그것은 존재의 밀도를 갖지 못하는 가짜 가벼움이며 현실 세계와 역사, 자아의 심오한 진실을 망각하게 만든다. 무의미와 지겨운 타성, 중압감으로 끝나는 가벼움은 참을 수 없다는 게 쿤데라의 관점이다.

‘가벼움의 시대’에 사람들은 끊임없는 변화와 일시적인 것에 오히려 지배를 당하고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싶은 욕구에 시달린다. 집단적 강제가 사라진 대신 고용과 계약이 불안정해지며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자리했다. 성생활이 자유롭고 가족에 얽매이지 않으며 감정이 ‘쿨’해졌지만, 사람들은 분리되고 이탈하여 사회적으로 부유 상태에 있는 원자들처럼 떠돈다. 탈제도화한 종교를 원해 요가와 명상을 찾지만, 그것은 패러다임의 변화라기보다는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집중도를 높여 능률을 높이려는 소비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소비지상주의는 새로운 ‘무거운 가벼움’을 가져왔다. 저자는 진정으로 가벼운 삶으로의 변화는 바로 내적 가벼움의 기술을 사용해 소비지상주의의 무거운 가벼움과 맞서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388쪽, 1만8000원.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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