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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살며 생각하며 게재 일자 : 2017년 12월 29일(金)
반갑다 ‘문학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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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종 화가, 서울대 교수

문학의 날 제정 소식에 반갑지만
거꾸로 문학이 위축된 현실 실감

일본은 인터넷시대에도 문학 강세
브라질 축구하는 아이 많은 것처럼

문학이 살아나려면 저변 확대 중요
우리나라도 글쓰기 바람 불었으면


문화체육관광부가 ‘문학의 날’과 ‘문학 주간’을 제정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문학, 누군가에게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조용히 설레는 단어다. 어쩌면 한 세기쯤 뒤에는 아예 잊어져 죽은 말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만큼 위축되어 버린 단어다. 그 단어를 범국민적으로 되살리고 활기를 불어넣겠다니 반갑지 않을 수가 없다. 길고 오랜 문학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 단어가 유난히 육친스럽게 다가오기만 한다. 그래서 ‘문학의 날’을 제정한다는 소식이 눈이 번쩍 뜨이게 반가운 것이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면, 그토록 반갑게 다가온다는 것은 기실 문학의 시대가 위축되고 죽어 간다는 방증인 것만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오늘날의 십 대, 이십 대는 생뚱맞게 무슨 그런 날을 다 만든다는 거지,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 같은 사람에게는 문학을 빼어놓고 청춘을 되돌아보기 어렵다. 열병처럼 앓았던 그 문학. 비단 나뿐 아니라 나의 동년배와 그 윗세대 중에는 추억의 옛 가요를 더듬듯 아직도 자신만의 문학 앨범들을 고이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이가 많다. 국내외 시인·소설가들의 이름이며 계보, 그리고 멋들어진 글귀들을 줄줄 외우거나, 편지에 인용하곤 했다. 춥고 배고프던 시절, 문학은 양식이 되고 담요가 되어 정신을 배부르게 하고 따뜻하게 했던 그 무엇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문학이 밥 먹여주느냐는 식의 빈정거리는 말은 어느 면에서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밤이 이슥하도록 문학작품에 대한 담론을 나누며 육신의 허기마저 잊어버린 날이 많았으니까.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를 나누다가 희뿌옇게 동이 터올 때면 차오르던 그 정신적 희열감과 뿌듯함의 느낌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훗날 너나없이 문학을 전공하게 되지는 않았다. 뿔뿔이 흩어져 제각기 다른 길을 가게 되었지만, 유독 문학만은 젊은 날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지나가게 되었던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한국 문학의 ‘벨에포크’는 1970∼1980년대가 아니었는가 싶다. 그 시절 언젠가 ‘문학사상’의 초청으로 ‘25시’의 작가 콘스탄틴 게오르규가 서울에 온 적이 있었다. 그때 김포공항에는 수많은 문학인과 문학청년이 열광하며 그를 맞았고, 이 동방의 한 나라에서 그토록 열렬하게 자신을 환영해준 데 대해 그 루마니아 작가는 큰 감동을 받은 듯했다. 당시 그를 초청한 ‘문학사상’의 이어령 주간과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나란히 찍은 두 사람의 사진이 지금도 내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 있다. 어린 나이였지만 나는 그때 작가의 나라인 루마니아에 대해 신비와 동경 같은 것을 가지게 되었다.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와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 그리고 보리스 레오니도비치 파스테르나크의 러시아에 대해 가졌던 외경심 비슷한 것이었을 것이다.

문학의 힘은 바로 그런 것이다. 위대한 작가를 가진 나라 또한 덩달아 위대해 보이는 것이다. 그렇기에 평소 문학에 별 관심이 없던 사람들까지도 해마다 노벨문학상 발표에는 그토록 주목하는 것일 터이다.

언젠가 칠레를 여행하기 위하여 참고삼아 미리 본 영상에는 그 나라의 과거 군부독재와 정치적 불안정, 그리고 빈곤 등의 부정적인 내용이 많이 나오고 있었고, 실제로 가보니 경제 사정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내 머릿속으로는 그 나라가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조국이라는 압도적인 생각이 그 모든 부정적 선입견들을 지워내고도 남았다. 네루다는 내 젊은 날의 우상 중 한 사람이었던 까닭이다.

언젠가 도쿄(東京) 여행 중 메구로(目黑)에 있던 한 문학관에 가서 ‘이노우에 야스시(井上靖) 문학 주간’이라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내 문학소년 시절 그는 ‘일본의 헤밍웨이’로 다가왔다. 그만큼 섬세한 일본적 사소설(私小說)과는 다른 스케일을 가지고 있었고, 중국 간쑤(甘肅)성 둔황(敦煌)의 벽화에 대한 내 최초의 관심 또한 미술사를 통해서가 아닌 그의 소설을 통해서였던 것이다. 그때 그의 ‘문학 주간’을 만든 일본이 새삼 다르게 보였다.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나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 등의 작가가 이미 오래전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것도 어쩌면 그런 문학적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몇몇 유력한 문예지마저 허덕이며 빈사 상태에 이르고 있지만, 일본의 분게이?주(文藝春秋) 같은 오래된 잡지는 인터넷 시대에도 여전히 강세이다. 그뿐인가. 문학관만도 수백 개에 이르며, 현역 일본 문인 중에는 일본뿐 아니라 유럽과 미주에 걸쳐서까지 자기 팬을 거느리고 있는 작가도 많다.

축구 황제 펠레의 나라에 가서 놀란 것은 그 많은 축구장이었다. 그리고 골목이며 광장 할 것 없이 공을 차고 노는 아이들이었다. 저변의 확대는 그만큼 중요하다. ‘문학의 날’과 함께 언젠가부터 사라져버린 초·중·고교 백일장도 부활시켰으면 싶다. 동네마다 크고 작은 도서관들이 들어서고, 홀연히 자취를 감추어 버린 그 많던 서점도 하나둘 특화되어 다시 돌아오길 기대해 본다. 그리고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문학의 모세혈관을 살려내도록 정부의 손길이 미쳤으면 싶다. 그리고 거대 담론과 행사 위주보다도 절대 빈곤에 시달리는 문인들을 지원하고 문학지를 후원했으면 싶다. 이런 저변의 확대 그리고 열기 없이 철만 되면 노벨문학상 타령만 하는 일은 꼴사납기 그지없다. 어쨌든 ‘문학의 날’은 반갑다. 그날과 함께 책이 살아나고 글쓰기가 살아나고 독서 열풍이 불어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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