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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8년 01월 03일(水)
3층 탑만 남은 아관파천 현장… 120년만에 ‘高宗의 길’로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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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여 년 전 러시아공사관(언덕 위 건물)과 정동 풍경. 러시아공사관 오른쪽 아래 한옥이 미국공사관이다. 오른쪽 사진은 구 러시아공사관의 현재 모습.
▲  러시아공사관으로 가는 길. 오른쪽 사진은 현재 복원된 왕의 길 일부인 ‘아관에 이르는 길’.

■ 안창모의 도시 건축으로 보는 서울 - ⑪ 옛 러시아공사관

서울 조망 ‘언덕 위 하얀 집’
당시 정동서 가장 좋은 입지
조선 - 러시아 우호관계 상징

6·25 직후 건물 파괴·방치
주변 판자촌·방송사 들어서
현재 인근엔 공원·고층빌딩

덕수궁∼러 공사관∼경희궁
당시 ‘왕의 길’ 재현 작업 등
최근 대한제국 재평가 시도


2017년, 대한제국 출범 120년!

지난 10여 년 동안 대한제국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많아졌고, 높은 사회적 관심을 배경으로 근대 한국의 심장부인 덕수궁과 정동에는 많은 물리적인 변화가 있었다. 외세침탈의 상징으로 오해받았던 ‘석조전’이 대한제국의 첫 정전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대한제국역사관’으로 재탄생했고, 자동차에 막혀 쳐다만 보았던 환구단을 횡단보도를 건너 직접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시민들은 대한제국이 투명인간 취급을 받던 나라가 아니며, 고종이 망국의 원흉인 양 설명되던 역사교육이 일제가 심어놓은 식민사관의 핵심이었음을 알고 있다. 깨어있는 시민의 힘으로 미국대사관이 지어지면 영원히 미국 땅이 될 뻔했던 선원전(선왕의 어진을 모신 건물로 정궁의 상징적 건물) 터를 되찾을 수 있었고, 현 서울광장의 중심까지 경운궁(현 덕수궁) 영역이었음도 알고 있다. 여기에 더해 역사적 진실을 담고 있는 대한제국이 잉태된 현장인 러시아공사관으로 안내하는 길이 문화재청에 의해 지난 연말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 근대사에서 사라졌던 대한제국의 존재가 뚜렷해질수록 중요해지는 장소가 있다. 옛 러시아공사관 터다. 지금은 3층 높이의 하얀 탑만 남아 있지만, 구러시아공사관은 100여 년 전 외교타운으로 자리 잡았던 정동에서 언덕 위 하얀 집으로 우뚝 솟은 건물이었다. 구 러시아 공사관 터가 중요한 것은 이곳이 대한제국의 출발점이면서 동시에 우리 근대사 왜곡의 시작점인 아관파천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아관파천(俄館播遷)만큼 많은 온 국민이 편차 없이 동일한 내용으로 기억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은 드물 것이다. 우리는 ‘일국의 왕이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남의 나라 공사관에 몸을 의탁한 치욕의 사건’으로 배웠다. 내용의 핵심은 나라를 망국으로 이끈 중심에 고종의 무능함이었고, 아관파천은 무능하고 비겁한 고종의 모습을 국민에게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진실일까?

아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역사적 프레임을 만들었을까? 이 프레임으로 인해 가장 덕을 본 사람 또는 나라일 것이다. 이 프레임은 나라가 망한 것이 이완용으로 대표되는 친일파나 제국 건설의 야욕을 불태우던 일본 때문이라는 사실을 덮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비겁하고 무능한 군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완용은 일본에 보호를 요청했고 일본은 선의로 조선을 보호하겠다고 나섰다는 식민사관의 출발점이 일제가 정의해 놓은 아관파천이었던 것이다.

아관파천은 당시 국내 정세를 일거에 바꿔놓았다. 조선의 국모를 시해하면서 조선 정부를 겁박하던 일본은 힘을 잃었고, 러시아는 일본과의 대결구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러시아는 일찍이 조선에 관심이 많았다. 러시아공사관의 입지와 규모를 보자. 정동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가장 넓게 터를 잡고 대사관을 지었지만, 그것도 모자라서 3층 높이의 탑을 세웠다. 왜 그랬을까? 대사관은 기본적으로 정치적 건축이다. 자국이 얼마나 문화적·경제적·군사적으로 힘이 있음을 과시하는 건축임과 동시에 상대국에 얼마나 우호적인지를 드러내는 것이 대사관 건축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러시아의 조선에 대한 관심은 단연 압권이었다고 할 수 있다.

러시아에 비견할 수 있는 나라가 있을까? 영국이다. 1885년 영국이 거문도 점령사건을 일으킨 것도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러시아를 견제할 수 있는 조선의 전략적 가치에 주목한 영국은 대사관에 많은 투자를 했다. 영국 대사관의 입지와 규모가 러시아 못지않은 이유다. 그런 영국에 고마운 나라가 일본이었을 것이다. 대륙으로 진출하려던 일본에 남하하는 러시아는 직접적인 위협이었으니, 영국과 일본은 이해가 같았다. 더욱이 일본은 영국을 근대화의 모델로 삼을 정도로 영국을 좋아했다.

이러한 당시 정치적 상황에서 고종의 아관파천은 러시아에 기회였다. 러시아는 아관파천을 계기로 일본에 대한 우위를 점하게 되었고, 조선은 친일파를 숙청하고 대한제국을 출범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대한제국의 국권이 피탈 당하면서 아관파천의 진실은 철저하게 왜곡되었다. 1945년 해방되었지만, 사회주의 국가가 된 러시아는 6·25전쟁을 겪으며 우리와 적이 되었고, 전쟁 중 파괴된 러시아공사관 건물은 방치되고, 주변은 판자촌이 되었다.

1960년대 이후 방송국과 체육관이 들어섰고, 법조회관도 지어질 뻔했다. 그 사이에 알렌의 스케치에 남아 있던 ‘왕의 길(king’s road)’은 미국대사관의 영역에 포함됐고,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진 길은 역사에서도 지워졌다. 무허가 판잣집으로 가득했던 러시아공사관 터가 정비된 것은 1977년이었다. 무허가 판자촌이 철거돼 공원이 만들어졌고, 러시아공사관의 탑과 터는 국가사적이 됐지만, 이미 아관파천은 고종을 몹쓸 임금으로 만든 후였다.

왜곡된 역사는 공원 정비과정에서 발견된 지하시설의 통로가 마치 겁에 질린 고종이 일본의 눈을 피해 경운궁과 오갔던 비밀통로였던 것처럼 잘못 보도되기도 했다. 비밀통로 발견 기사는 고종을 비겁한 왕으로 왜곡한 일제의 식민사관이 매우 잘 작동되었음을 보여준다. 잘못된 고종의 비밀통로 설은 낭설임이 밝혀져 이제 안내판에서 사라졌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이 학교에서 배웠던 비겁하고 무능한 왕 고종이 비밀통로를 통해 러시아공사관과 덕수궁을 오갔다는 유언비어를 사실로 믿고 있다.

정동이 외교타운 역할을 하고 있었을 당시의 정동 모습을 살펴보자(왼쪽 위 사진). 인왕산을 배경으로 우뚝 솟아있는 건물이 러시아공사관이다. 오른쪽 아래의 한옥이 미국공사관의 모습이며, 왼편 아래의 한옥은 당시 선교사들의 주택이다. 사진 중앙의 아래에 있는 벽돌로 지은 건물이 위치한 곳이 현 정동극장이다. 사진에서 확인되듯 러시아공사관의 위치는 정동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점하고 있었다. 지금은 정동 주변이 재개발사업으로 고층건물로 둘러싸여 러시아공사관 언덕이 높다는 생각을 전혀 할 수 없지만, 당시는 서울 중심에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현재 유일한 러시아공사관의 흔적인 탑의 아랫부분이 움푹 꺼진 것은 1970년대 초 불법건축 상태였던 법조회관이 철거되면서 지형이 바뀐 것이다. 1987년 오늘의 정동근린공원이 조성되었는데, 이때 근린공원이 조성된 것은 88서울올림픽과 관련이 있다. 88올림픽 참가가 확실시되는 소련선수단이 이곳을 방문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실제 88서울올림픽 때 소련영사단 중 일부가 서울 도착 후 정동으로 직행하여 공사관 터를 둘러보고 자신들의 옛 재산을 잊지 않고 있음을 과시했다고 한다. 서울 올림픽은 체육행사였지만 러시아와 얽힌 역사를 풀어가는 또 다른 계기였던 셈이다.

러시아공사관 터가 다시 조명을 받은 것은 러시아와 국교를 다시 맺은 1990년 이후다. 동서냉전이 한창이던 시절 적성국 러시아는 서울의 러시아공사관에 대한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했지만, 1990년 국교를 다시 맺은 이후 당시 러시아대사관은 ‘정동15번지 일대의 구공사관 터는 지난 1886년 당시 러시아 정부가 매입한 뒤 10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한 번도 소유권을 포기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우리 근현대사의 격변기에 만신창이가 되고, 일부는 고층 건물군에 점유되고, 일부는 우리의 문화재가 된 상황에서 국교가 재개된 러시아에 구러시아공사관 터를 돌려줘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대안은 마침 강동으로 이사 간 배재학당 터였다. 정부는 옛 공사관 터와 옛 배재학당 부지를 상호 교환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러시아는 1948년 남과 북이 각각 단독정부를 구성하면서 잃어버렸던 자신의 재산권을 한·러 국교 정상화를 통해 회복했다. 그렇다면 러시아는 한·러 간 얽힌 역사를 풀고 재산권도 회복했는데, 우리는 러시아공사관에 얽힌 역사를 풀고 왜곡된 역사를 정상화했을까? 안타깝게도 아직이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70년이 훌쩍 넘었고, 러시아와 국교를 재개한 지 4반세기가 지났지만 일제가 왜곡시켜 놓은 우리의 근대사는 아직도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무능하고 비겁한 군주 고종! 존재감 없는 대한제국! 지난 10여 년에 걸친 대한제국에 대한 학계의 연구와 시민의 각성으로 많은 부분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지만, 아직 많이 모자란다.

지난겨울, 대한제국이 출범한 지 120년이 되는 2017년의 마지막 주말에 대한제국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사업이 또 하나 마무리되었다. ‘고종의 길(King’s Road)’ 복원사업이다. ‘고종의 길’은 국모가 시해된 을미사변 이듬해인 1896년 2월 11일에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길 때 비밀리에 이동한 길로 추정되는 길로 알려졌었다. 이 길의 이름은 대한제국기 미국공사관에서 제작된 지도에 ‘왕의 길(King’s Road)’로 표시된 데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이 길은 러시아공사관과 덕수궁을 연결하는 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왕의 길’의 종착점은 러시아공사관이 아니라 경희궁이었기 때문이다.

러시아공사관은 고종의 길의 목적지가 아닌 중간지점이었다. 1897년 대한제국 선포 후 나라는 빠르게 안정화되었지만 정상적으로 국가를 경영하기에는 덕수궁의 궁역이 너무 작았다. 국빈 방문 시 관병식 등의 행사를 위한 공간이 없었고, 경복궁 앞에 위치한 육조관아는 격변기의 국정운영을 담당하기에는 덕수궁과 너무 멀었다. 그래서 용도가 없어진 경희궁을 덕수궁의 보조공간으로 사용하고, 독일영사관 터를 매입해 의정부청사를 건설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경희궁과 덕수궁을 연결하는 길이 ‘고종의 길’이다. 고종의 길은 황제가 궁궐 밖 행차 시 번거로움과 민생에 끼치는 폐를 최소화하기 위한 해법이었다.

‘고종의 길’을 ‘아관파천’과 밀착시켜 해석하는 것은 대한제국의 역사가 여전히 식민사관의 프레임에 구속돼 있음을 보여준다. ‘고종의 길’에 대한 바른 이해는 덕수궁과 정동에 갇힌 고종과 대한제국의 역사를 식민사관의 프레임에서 구해내는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이다. 정유년 마지막 주말에 정비된 고종의 길이 무술년 새해에는 우리를 역사의 현장이 담고 있는 역사의 진실로 안내해줄 것을 기대한다. (문화일보 2017년 11월 29일자 26면 10 회 참조)

안창모 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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