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함,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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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지루함이 필요하다 / 마크 A. 호킨스 지음, 서지민 옮김, 박찬국 해제 / 틈새책방

교육철학자가 쓴 ‘지루함’에 대한 통찰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사례를 들거나 에둘러 말하면서 주장의 객관성을 애써 증명하지 않고, 정면으로 ‘지루함’을 붙들고서 ‘지루한 순간’이 갖고 있는 삶에서의 가치와 효용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은 거침없는 직설과 정공의 문장으로 가득하다. 가볍지 않은 철학적 주제를 얘기하고 있음에도 책은 작은 판형에다 분량도 147쪽에 불과한 건 그래서다.

‘지루함’이란 흔히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게 보통이다. 말초적인 오락거리가 넘쳐나고 스마트폰만 꺼내 들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세상에서 지루함은 낯선 감정이다. 더구나 보람찬 인생을 살기 위해 최대한 많은 계획으로 하루를 꽉 채워야 한다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한국사회에서 지루함은 때로 ‘나태한 삶’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는 지루함의 전혀 다른 측면을 본다. 그가 말하는 지루한 시간이란, 아무 할 일이 없이 심심해져서 침묵하고 자신의 내면을 기웃거리는 시간을 뜻한다. 적극적인 반응을 유도할 정도의 자극이 없어 주변 상황에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지루해할 때, 그제야 비로소 의미와 본질에 다가설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이런 저자의 생각은 급기야 종교적인 깨달음에까지 연결된다. 지루함을 공간적 감각으로 해독하면서 저자의 생각은 ‘모든 현상의 공허’로까지 이어진다. ‘텅 비어 있으되 충만하다’는 불교의 가르침과 맞닿은 얘기다.

저자는 줄곧 지루함에 집중하면서 층위가 다른 두 단계의 지루함에 대해서 설명하고, 지루함을 회피하려는 마음의 작동 기제, 지루함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 등에 대해 말한다. 지루함이란 불편한 감정이어서 누구나 피하고 싶어 하지만, 진정으로 충만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지루함을 곁에 두어야 한다고 저자는 권한다. 지루함이 밀려오는 시간을 의도적으로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1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는 한두 시간 동안 침묵 속에 그냥 앉아 있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권한다. 그 시간이야말로 진정으로 의미 있는 인생을 찾고 만들어나가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저자는 장담한다.

저자는 15년 전쯤 한국에서 2년간 거주하며 방과후 학교와 학원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이 있다. 한국에서는 방학인데도 학교에 나오는 학생과 일이 많아 사무실에서 자는 학원 간부를 봤다. 그에게 한국은 아무 일 없이 꿈꾸고 사색하는 시간을 갖는 게 불가능한 나라였다. 책머리에 그는 ‘지루함이 힘을 발휘하기에 가장 완벽한 곳이 바로 한국’이라고 적었다. 147쪽, 1만2800원.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