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ifty+ >지금 연주할 곡은 ‘내 나이 묻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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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 넘기며 ‘제2의 인생’사는 은빛세대

창원 색소폰 동호회 ‘더죤소리’의 50~70대

‘도레미’도 몰랐던 60代 회원
2년 새 100곡 연주 실력파로

은퇴후 처음 색소폰 잡은 가장
딸 결혼식서 가곡 연주 큰기쁨

실력 소문나면서 초청 공연도
“음악 알고나니 사는게 즐거워”

지난달 15일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자산동주민센터 무료급식소는 흥겨운 음악으로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다. 신나는 트로트에 연주곡까지 구성진 음악이 계속 흘러나오자 노년의 관객들은 어깨를 들썩이며 박수로 장단을 맞췄다. 머리가 희끗한 색소폰 연주자들은 관객의 호응에 흥이 나는지 더욱 신나게 연주했다.

이날 연주회는 공직생활을 하며 20년 가까이 급식소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정년 퇴임하는 한 자원봉사자를 위해 만들어진 자리였다.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초청된 단체는 창원의 색소폰 동호회 ‘더죤소리’. 50~70대로 구성된 동호회원들은 ‘짧은’ 입문 기간에도 수준급 연주를 하며 점심시간에 앞서 급식소를 가득 채운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공연을 마치고 창원시 마산합포구 서성동 연습공간에서 만난 노년의 더죤소리 동호회원들의 얼굴에는 활력이 넘쳤다.

“음악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죠. 악보도 볼 줄 몰랐으니까요. 3년 전 색소폰을 구입해 배우게 됐는데 사는 게 즐겁고 다른 사람들에게 신나는 음악을 들려줄 수 있어 너무 즐거워요.” 회원 박기봉(64) 씨는 “젊었을 때 노래만 부를지 알았지 ‘도레미’도 몰랐는데 계속 연습하다 보니 생각보다 쉽게 색소폰을 불 수 있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씨는 2015년 6월쯤 색소폰을 배워보라는 친구의 권유에 시간을 쪼개 열심히 연습, 2년 5개월 만에 100곡을 연주할 수 있는 실력파 연주자로 성장했다. 함안에 사는 그는 점심때는 아내가 하는 식당 일을 도와주고 오후에 더죤소리 음악실에서 하루 2시간씩 맹연습을 한다. 박 씨는 “은퇴하면 캠핑카를 구입해 전국을 누비려고 했는데 캠핑카보다 악기를 배우기를 잘했다”며 “색소폰을 불게 되니 연주해 달라고 불러주는 곳도 많아 즐겁게 공연을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박 씨는 “집에서도 색소폰을 불 수 있어 스스로 즐겁고, 경로당 등에서 다른 사람들의 흥도 돋워주니 나이 들어 이만큼 좋은 취미는 없는 것 같다”며 “색소폰을 배운 후 앓고 있던 우울증도 사라졌다”고 덧붙였다.

옆에 있던 김정기(71) 씨도 “평소 음악하는 것을 동경해 왔지만 젊었을 때는 먹고살기 바빴다”며 “은퇴하고 나니 이제라도 악기 하나는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색소폰을 불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색소폰은 나만 즐거운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도 즐겁게 한다”며 “내 연주로 관객들의 어깨가 들썩이고 노래를 흥얼거리는 모습을 보면 덩달아 신이 난다”고 말했다. 김 씨는 월남전 참전 군인으로 1974년 제대 후 식료품 도매업 등을 하며 청춘을 바쳐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하지만 일상에 찌든 스트레스를 풀어야겠다는 생각에 2004년 색소폰을 잡았다. 김 씨는 “두 옥타브만 열심히 연습하면 색소폰을 불 수 있어 생각보다 배우기 쉬웠다”고 말했다. 김 씨는 색소폰을 배워 딸 결혼식 때 연주한 적이 있는데 그때가 가장 뿌듯했다고 했다. 김 씨는 “딸이 서울로 시집을 갔는데 고향 마산을 생각하고 아버지를 그리워할 만한 노래로 가곡 ‘가고파’를 골라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며 “지금까지 색소폰을 연주한 것 중에서 딸 결혼식장에서 한 연주가 가장 큰 성공이고 기쁨이었다”고 말했다.

이봉운(69) 씨는 환갑 때 한평생 일한 자신에게 주기 위한 선물로 ‘거금’을 들여 색소폰을 구입했다. 하지만 배울 용기가 나지 않아 집에 10년 가까이 진열해두고 있다가 지난해부터 더죤소리 멤버로 참여해 열심히 배우고 있다. 이 씨는 “그냥 색소폰을 배우고 싶어 샀는데 악보를 볼 줄 모르는 데다 생업에 바빠 배울 엄두를 못 냈다”며 “지난해부터 더 늦으면 안 되겠다 싶어 동호회에 나와 색소폰을 불기 시작했는데 실력이 금세 느는 것 같아 하루하루가 즐겁다”고 말했다.

이들이 모여 있는 더죤소리는 10여 명의 회원이 색소폰을 배우고 연주하는 사랑방으로 2013년 김보규(58) 원장이 문을 열었다. 김 원장은 어릴 때부터 색소폰 연주를 동경해 50대에 독학으로 색소폰을 배워 주변인들에게 실력을 전파하고 있다. 김 원장은 서비스업·유통업 등을 하며 여유가 생기면 색소폰을 불고 싶은 게 소원이었다. 그는 “동호회 회원들이 대부분 60대 이상 나이 드신 분들이고 악보를 볼 줄 모르는 분들이라 서로 가르쳐 주면서 실력을 쌓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더죤소리는 실력이 소문나면서 지역축제 등에 초청돼 연주를 다니고 있고, 경로당이나 무료급식소에서 매달 1회 이상 연주 봉사를 하고 있다.

도쿄로 재즈유학 떠나는 72세 최충경 경남스틸 회장

나이 들어서 무슨 재즈유학?
어려서부터 음악 활동했지만
45세에 창업하면서 경영몰두

틈틈이 피아노·트럼펫 배워
20년 前 오케스트라 창단도

“매출 3000억 기업 키웠으니
일선 물러나 마음껏 음악할것”

올해 일흔두 살인 최충경 경남스틸 회장은 이달 중순 도쿄(東京)행 비행기에 오른다. 그가 꼭 하고 싶은 재즈 피아노를 배우기 위해서다. 최 회장은 도쿄에 머물며 유명 재즈학원에서 피아노 실력을 쌓을 계획이다. 이미 머물 집도 마련해 놨다.

최 회장은 1990년 창원국가산업단지에 설립한 철강 원자재 가공 및 납품회사인 경남스틸을 연 매출 3000억 원의 탄탄한 중견기업으로 키웠다. 이젠 자신이 경영 전면에 나서지 않아도 될 만큼 큰아들 최석우(44) 부사장이 경영에 뛰어난 수완을 보이고 있다. 칠순을 넘긴 최 회장이 재즈 유학을 결심한 중요한 배경이다. 게다가 지난해 12월 8년간 맡아온 창원상공회의소 회장에서 물러나며 지역사회와 함께해 온 무거운 짐도 내려놓았다. 그는 이번 기회에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음악을 원 없이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1997년 8월 여름휴가 때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서머스쿨 클래식 최고연주자 과정(DIPLOM)을 수료했을 정도로 음악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

“‘나이 들어 무슨 재즈 유학이냐’고 하는 분도 있는데 일흔이 되면 일선에서 은퇴하려 했어요. 아직 좀 힘이 남아 좀 빠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지만, 상공회의소 회장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경남지역회의 부의장도 임기가 다해 더 늦기 전에 저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져보려고 결정했어요.”

지난 3일 경남스틸 회장실에서 만난 최 회장은 “어렸을 때부터 음악과 인연이 깊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대구 경북중학교에 다닐 때 악대부에서 클라리넷과 피콜로 주자로 활동했다. 하지만 삼성전자 영업부에서 젊음을 불태우고 45세에 회사를 창업하면서 악기를 가까이할 수 없었다. 그래도 서울에 있는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시간을 활용해 틈틈이 클라리넷, 피아노, 트럼펫, 재즈 색소폰 등을 배웠다. 점차 회사가 안정을 찾자 그는 51세 때인 1996년 경남실버재즈오케스트라 창단 주역으로 참여하며 단장으로, 색소폰 연주자로 무대에 올랐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흰머리가 될 때까지 음악 곁에서 살아가길 원하는 마음으로 모여 만든 경남실버재즈오케스트라단은 4년 뒤 경남재즈오케스트라단으로 발전했다.

나이가 들면서 예술에 대한 그의 사랑도 점차 커져 경남스틸은 매년 영업이익의 10%를 지역사회에 내놓으며 경남 문화·예술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경남스틸은 경남메세나협회를 통해 경남재즈오케스트라에 매년 1000만 원을 후원하고 있고 경남오페라단, 합포문화동인회, 동서화랑, 경남여류문학회 등도 지원하고 있다. 회사 창립 후 지금까지 각종 후원과 기부금으로 내놓은 돈만 30억 원이 넘는다. “재즈를 가르쳐 준 음악가들과 교류하면서 자연스럽게 독주회·발표회 등에 도움을 주게 됐어요. 처음에는 팸플릿 제작 등을 지원하는 작은 후원에서 시작했는데 해마다 지원하다 보니 금액이 늘어나게 됐어요.”

그는 2012년 창원공단 근로자들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경남스틸 본사 건물 5층(436㎡) 전체를 자신의 아호를 딴 ‘송원갤러리’로 만들어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3층 회의실도 지역 작가 작품 300여 점을 구매해 보관하고 있다. “사실 지역작가들이 전시회를 열려면 비용부담이 큽니다. 이 점 때문에 전시회 공간 제공, 팸플릿 제작·홍보·리셉션을 도와줘요. 지역 예술가들이 작품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후원하고 공단 근로자들에게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이곳에서 터전을 이룬 지역 기업가의 사회적 의무라고 생각해요.”

최 회장은 67세 때인 2012년에는 요리학원에 등록해 양식요리기능사 자격증에 도전하기도 했다. 요리학원에서 6개월 요리 강습 코스를 수료하고 필기시험을 가볍게 통과했다. 그러나 실기는 생각보다 어려워 6번이나 고배를 마셨다. 최 회장은 “100세 시대에 요리와 악기 최소 두 가지는 배워야 한다”며 “여유가 있으면 비정부기구(NGO)에서 활동하는 것도 좋다”고 조언했다. 최 회장은 “특히 악기는 평생 즐길 수 있는 취미인데 예전에는 ‘딴따라’로 비하했지만, 지금은 악기를 연주하면 부러워하는 친구들이 많은 시대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사교댄스나 서예, 야생화 사진촬영 등의 활동도 은퇴 후 삶에서 좋은 동반자가 될 것”이라며 “즐거운 노년을 위해 준비하고 도전하면 나이를 잊게 된다”고 말했다.

창원 = 박영수 기자 buntl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