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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8년 01월 09일(火)
선비정신과 신명… 느림·빠름의 조화가 ‘韓國美 D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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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화가였던 이인문(1745~1821)의 송하관폭도(松下觀瀑圖). 자연과의 합일을 통해 고급스러운 ‘느림의 미학’을 추구했던 조선시대 사대부층의 미학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호암미술관 제공

■ 전준엽이 만난 한국의 美感 - ① 상극의 아름다움

中은 인공호수 파고 山 쌓아
日은 정원·분재로 풍경 재현
우린 人爲 아닌 ‘자연 속으로’

우리 전통음악은 ‘굵은 곡선’
넓고 깊은 여운과 선의 번짐
中·日 음악에선 찾기 힘들어

자연이 주인이 된 담양 소쇄원
계곡흐름 맞춰 집짓고 담둘러

변화무쌍 자연 겪어온 한국인
감정을 역동적 에너지로 발산
사물놀이·民畵 등 ‘예술’승화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중국 문명을 달로 비유하고 주변 국가를 달그림자 속의 문명으로 보았다. 희미한 달그림자 속에는 한국도 있다. ‘문명의 충돌’로 유명한 새뮤얼 헌팅턴은 한 술 더 뜬다. 그는 1990년대 이후 세계를 서구,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이슬람, 중화, 힌두, 정교, 불교, 일본 문명권으로 나누고 우리나라는 중화 문명 속에 집어넣었다. 문화적으로 우리에게 많은 신세를 져 온 일본을 동양 문명의 한 축으로 인정하면서. 동양에서 중국 문명의 숨결은 넓고도 진한 것이 사실이다. 우리 문화 속에 깊숙이 배어 있는 것도 분명하다. 다양한 종교가 번성하고 있지만 유교가 생활 정서 바탕에 깔려 있으니까. 그렇지만 그 속에서 우려낸 미감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이들이 과연 우리 미감을 제대로 알았을까. 그 미감으로 자라온 우리 고유 성격의 문명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고려청자나 조선백자만이라도 눈여겨보았다면 이렇게 다루지는 못했을 게다.

전통음악을 들어보면 차이는 확연하게 드러난다. 중국이나 일본의 전통음악은 느낌에서 크게 차이를 느낄 수 없다. 울림의 깊이가 얕고 감각적인 면에서 비슷하다. 이에 비해 우리 전통음악은 울림의 진폭이 넓고도 깊다. 소리의 떨림이 여운을 만들어 마음 깊숙이 파고든다.

중국과 일본 음악이 직선에 가깝다면 우리 음악은 굵은 곡선이다. 여기에 선의 번짐까지 스며 있다. 소리가 마음속으로 번져 들어가기 때문에 감정의 울림이 그만큼 크다. ‘농현((弄絃)’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악기 덕분이다. 농현 기법은 소리의 여운이 물결 같은 파동을 만들어 감정을 자극한다. 우리의 범종이나 징 소리의 넓고도 긴 여운도 농현의 떨림과 흡사하다. 이처럼 풍부한 여운을 주는 소리를 중국이나 일본의 전통악기에서는 찾기가 어렵다.

▲  사물놀이 공연. 자유로운 정서를 바탕으로 서민들이 만들어낸 ‘빠름의 미학’을 대표한다. 한국인의 역동적 기질을 보여준다.

우리 음악에서 왜 이런 소리가 나왔을까. 자연을 닮으려 했던 생각에서 비롯됐다. 자연스러움에서 나온 미감이다. 꾸미지 않고 내버려 두면서 흐름에 맡기는 여유로운 마음이 한 차원 높은 미감을 창출해낸 것이다.

여러 요소를 고루 지닌 우리의 자연은 눈 씻고 잘만 보면 어디나 명당이라 칭할 정도로 아름답다. 그래서 가급적 자연을 있는 그대로 두고 그 속에 깃들여 살기를 원했다. 바로 여기서 ‘자연스러움’이 곧 아름다움이라는 생각이 자라난 셈이다. 우리의 자연스러움의 미감은 이렇게 해서 생겨났다. 서양학자들이 같은 문화권이라고 우기는 중국이나 일본과 다른 미감을 갖게 된 것도 자연을 바라보는 태도가 다르기에 생겨난 결과다.

중국은 자연의 거대한 힘과 맞서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볼품없는 앞의 산이 그 뒤에 숨어 있는 산세의 절경을 가로막고 섰다면 중국인들은 어떻게 할까. 앞산을 없애버린다. 자연을 인간에게 맞게 개조하고야 만다. 자연을 언제든지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 있다는 태도다.

베이징(北京) 여행의 필수 관광 코스에 들어 있는 ‘이화원’이라는 곳이 있다. 서태후의 여름 별장으로 알려진 이곳은 명, 청 시대 황족의 정원이었다. 평지에 거대한 호수와 산을 만들었는데, 대략 400년 전의 일이다.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이곳에 조성된 쿤밍(昆明)호는 크기로도 세계에서 손꼽히고 있다. 인공호수로 믿기 어려울 정도다. 호수 조성 공사에서 나온 흙으로 산까지 만들었는데, 그게 ‘만수산’이다. 이처럼 중국인들은 인간 맞춤형 자연을 만들어 내기까지 한다.

일본은 어떤가. 중국처럼 자연을 인간에게 맞추려는 태도는 같지만 방법에서 차이를 보인다.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풍경을 미니어처로 만들어 자신의 집 안에 들인다. 아기자기한 일본 정원도 그렇고, 자연의 일부인 나무를 축소한 분재 역시 일본인의 자연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우리는 어땠을까. 중국과 일본인들과는 반대 관점이다. 자연을 그대로 두고 그 속으로 들어가려는 태도다. 자연에 인간을 맞추는 것이다. 인간도 자연을 이루는 요소 중 하나로 보았기 때문이다. 워낙 아름다운 자연을 가졌기에 가능한 생각이지 않았을까.

▲  전남 담양의 소쇄원. 계곡의 흐름에 맞춰 집을 짓고 담장을 둘렀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따르려 했던 선조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전남 담양에는 ‘소쇄원’이라는 전통 정원이 있다. 조선 중종 때 개혁정치를 주도했던 조광조를 따르던 선비 양산보가 낙향해 만든 정원이다. 일반인들이 알기 쉽게 하려고 전통 정원이라 부르지만 정확한 이름은 ‘별서 원림’이다. 선비가 세속을 떠나 자연을 벗하며 기거하려고 지은 일종의 별장이다.

이곳에 가면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따르려 했던 선조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계곡의 흐름에 맞춰 집을 짓고 담장을 둘렀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길을 틀지 않고 그 위에 징검다리처럼 담장을 둘렀다. 집 안마당으로 산골 물길 한 자락이 흘러들어 왔다가 나간다. 사람이 아니라 자연이 주인이라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으로 숙성된 것이 ‘느림의 미학’이다. 우리 정서의 한 축을 맡고 있는 고급스러운 아름다움이다. 느림의 미학은 조선 왕조를 이끌어온 선비정신에서 잘 드러난다. 나아갈 때와 물러설 지점을 알고 기다리는 지혜. 감성의 유연성과 냉철한 이성의 조화. 자연의 이치를 따라 삶을 꾸렸고,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낸 선비정신은 예술과 정치가 크게 다르지 않아야 한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었다. 이런 믿음이 지조를 낳았고, 종종 현실 정치의 벽에 부딪혀 목숨을 내놓기도 했다. 조선시대 많은 사화는 이런 신념과 현실의 충돌에서 비롯됐다.

참선비는 대부분 뛰어난 문인이었고, 서예가였으며 그림과 음악에도 능했다. 자기 생각을 빼어난 문장(詩)에 담아 명필(書)의 솜씨로 남겼고, 이런 유려한 세계를 갈고 닦기 위해 아름다움을 그리거나(畵) 노래했다.

선비의 악기로 알려진 거문고는 느림의 미학에 잘 어울린다. 농현 효과가 두드러지기 때문에 그렇다. 가야금과 더불어 우리 전통악기를 대표하는 거문고는 역사도 깊다. 오동나무나 밤나무로 만든 울림통이 있고, 명주실로 된 여섯 현으로 이뤄진다. 술대라는 것으로 뜯어서 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가 깊고 울림이 오래 간다.

중국 진나라에서 들어온 칠현금을 고구려 왕산악이 개조해 우리 악기로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소리를 듣고 검은 학이 날아들어 춤을 추었다는 전설에서 ‘거문고’라는 이름이 나왔다. 그러나 1932년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에서 발굴된 고구려 고분 벽화에 거문고 형태의 악기가 그려져 있어 진나라 이전에 이미 고구려에 거문고가 있었고, ‘고구려 금’이라 칭했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음이 변해 거문고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설이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선비들이 자연에서 추출한 정신성을 ‘느림의 미학’으로 갈고 닦았다면, 서민들은 자유로운 정서를 바탕으로 ‘빠름의 미학’을 만들어냈다. 생활과 맞물려 나왔기에 그만큼 생동감이 짙다. 그게 21세기 한국 문화의 새로운 특질로 주목받는 ‘다이너미즘(역동설)’이다.

전통문화 속에서는 ‘신명’이라 칭하는데, 한국인의 역동적인 기질을 보여주는 아름다움의 하나다. 느림의 미학 맞은편에 있는 이런 아름다움이 어떻게 우리 정서 한 축을 차지하게 됐을까. 이 역시 선조들이 자연에서 찾아내 발효시킨 긍정적인 에너지다.

땅덩이는 그리 크지 않지만 우리는 버라이어티한 자연조건을 갖고 있다. 기후도 극에서 극으로 치닫는다. 열대 못지않은 습하고 더운 기운과 사막의 건조함을 닮은 따가운 가뭄이 연출하는 긴 여름이 있는가 하면, 북극의 찬 기운과 시베리아의 매서운 바람이 휩쓰는 혹독한 추위의 겨울도 있다.

극한의 자연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살아온 우리 민족은 감정의 기복이 그만큼 심하다. 그런 탓에 예술적 감수성이 발달했다. 이런 정서가 여러 가지 상황을 재빠르게 수습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냈다. 압축된 경제 성장을 가능케 한 역동적 에너지로 발산된 것은 긍정적인 면이고, 조급증, 냄비 근성과 같은 부정적 측면도 낳았다.

빠름의 미학이 낳은 예술의 역동성은 우리의 대표적 문화상품으로 떠오른 ‘사물놀이’와 강렬한 표현성을 보여준 ‘민화’에서 잘 드러난다. 사물놀이는 한국인의 역동적 기질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것이다. 사물과 놀이가 합쳐져 생긴 말인데, 1978년 민속학자 심우성이 당시 풍물 굿의 현대화 작업으로 이뤄진 무대 공연을 보고 붙인 이름이다. 사물은 원래 불교 의식에 쓰이는 법고(북), 운판(구름 모양의 청동관으로 된 악기), 목어(물고기 모양의 나무로 된 악기), 범종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것이 풍물 굿에서 북, 꽹과리, 장구, 징으로 연주되면서 사물놀이로 탄생했다.

사물놀이는 강한 리듬과 엄청난 소리의 파괴력을 가지고 있어 감정을 끌어올리고 마침내는 밖으로 쏟아내는 데 제격이다. 말 그대로 감정을 폭발시켜버린다. 듣는 이들을 신명으로 몰아넣고 춤추게 한다. 마치 우리 전통 무속에서 음악을 통해 무당의 신기를 이끌어내는 것과 같은 강한 중독성을 가지고 있다. 크기도 보잘것없고 많지도 않은 악기로 연출해내는 엄청난 음악의 힘이다. 한국인이 만든 ‘빠름의 미학’이 보여주는 마법과도 같은 세계다.

감정의 파괴력은 서민들의 자유정신을 담아낸 민화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난다. 불평등한 사회 제도에 대한 통쾌한 발언과 일상생활 속에 깃든 전통신앙의 주술적 정서가 결합해 나타난 자유분방한 그림이 바로 민화다. 그래서 민화에는 풍자와 기복적 정서가 버무려져 있다. 이를 과장된 형태와 강한 색채로 담아내고 있다. 그만큼 표현력이 강하다.

우리의 미감은 이처럼 상극의 조화를 통해 독자적 세계를 일궈 왔다. 이는 음양의 어울림으로 자연의 이치를 분석해온 동양사상과도 맥이 닿아 있다.

전준엽 화가·미술저술가

‘한국의 미감(美感)’을 새롭게 연재하는 화가 겸 미술 저술가 전준엽(65) 씨는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 세계를 유화물감으로 표현해 국내외 비평가와 컬렉터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작가다. 중앙대 예술대에서 회화를 전공한 전 씨는 맑고 정갈한 토속적 정서를 통해 한국적 미감의 표현 방법을 모색해 왔다. 1986년 첫 개인전을 가진 이래 현재까지 서울, 도쿄(東京), 로스앤젤레스, 뮌헨, 홍콩, 뉴욕 등에서의 개인전을 비롯, 300회 이상 기획전에 참가했다. 성곡미술관 설립 멤버로 9년간 학예연구실장으로도 활동했으며, 작품 활동 외에 미술에 대한 글쓰기도 계속하고 있다. 저서로는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나는 누구인가’ ‘익숙한 화가의 낯선 그림 읽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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