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웹 | 지면보기 PDF | 기사 상세 찾기 | 2018.10.22 월요일
전광판
Hot Click
오피니언
[오피니언] 포럼 게재 일자 : 2018년 01월 12일(金)
‘초등 한자 300字’ 폐기 결정은 잘못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우찬제 서강대 교수·국어국문학 문학비평가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희랍어로 읽어주는 호머의 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를 들으며 잠들었다고 한다. 물론 어린 톨스토이는 희랍어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조부가 읽어주는 서사시의 리듬을 통해 문학적 감성과 상상력을 키울 수 있었다고 전한다. 인생사 다 그렇지만 특히 교육에 왕도는 없다. 다만, 어떤 형태든 양질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좋고, 그런 학습 환경을 조성하는 게 좋다.

교육부가 최근 ‘초등교과서 한자표기 기준’(2016.12.30)을 폐기했다고 한다. 2014년부터 2년간 정책 연구와 의견 수렴을 거쳐 마련한 이 기준은, 초등학교 5, 6학년 교과서에 300자 수준의 한자를 여백에 음과 뜻을 함께 표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당시에도 사교육 유발 논란이 있었지만 우려할 정도가 아니라고 했었는데, 이번에는 “현재 초등 교과서에 표기된 한자(총 22자)보다 더 많은 한자가 표기될 경우 관련 사교육이 유발될 가능성이 있다는 현장의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는 이유로 방향을 전격 선회했다. 관련 “찬반 단체 면담과 광화문1번가, 국민신문고 등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결과라는 것이다. 실질과 절차 양면에서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무엇보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 표기를 늘리거나 유지하는 것의 교육적 효과, 즉 교육의 실질 문제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게 문제다. 한국어 어휘에서 한자어가 약 70% 정도를 차지하며, 대학 수준 전공 용어의 약 90%가 한자어임을 상기해 보자. 한자에 대한 이해 없이 한국어 읽기 능력 내지 문해력(文解力)을 제고하기란 연목구어(緣木求魚)에 가까운 일이 아니겠는가. 세상의 변화에 대응해 신조어를 만들 때에도 한자 이해 능력은 매우 요긴한 상징 자산이다.

언젠가부터 우리 학생들의 수학능력이 점점 더 떨어진다는 우려가 많은데, 그것은 비단 영어나 수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으로 한국어 읽기 능력과 관련되는 문제다. 거기엔 한자 이해 능력이 긴밀하게 관여돼 있다. 한국어 환경에서 한자는 지식의 영역 이전에 도구에 가깝다. 한자라는 의사소통의 도구가 취약하면 한국인의 문해력은 물론 창의적 상상력을 심화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그러므로 수준별·단계별로 한자에 대한 접촉 기회를 사려 깊게 제공하는 것은 교육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사교육 유발 우려도 그렇다. 학생들의 학습 부담과 교육 효과를 헤아려 해당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공교육에서 가르치는 것이 먼저다. 정말 필요한데 가르치지 않는다면 외려 사교육을 부추기는 형국이 될 수 있다. 그러면 사교육을 받기 어려운 지역이나 계층의 많은 학생, 또는 톨스토이 같은 가정학습 환경을 갖추지 못한 학생들은 어디서 어떻게 배울 것인가. 공교육 과정에서 가르치지 않는다면 교육 격차가 더 심화할 수 있음도 경계할 일이다. 만약 교육 과정에 편입되면 사교육이 우려된다는 논리를 더 밀고 나가면, 역설적으로 공교육의 존립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음도 숙고해야 한다.

절차 문제도 아쉽다. 의견 수렴을 했다지만 초등학교 현장과 학부모들은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린다. 교육만큼 미래에 영향을 주는 영역도 많지 않을 터이므로, 더 진중하게 토론하고 신중하게 합의를 이끌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학교를 살려야 나라가 살아난다. 학교다운 학교가 나라다운 나라를 이끈다. 초등 한자 교육도 학교를 살리는 작은 반석이 될 수 있다.
[ 많이 본 기사 ]
▶ 1800만원 내고 지웠는데… ‘여교사 性관계 영상’ 재유포
▶ 빗나간 욕망이 부른 참극…옛날에도 지금과 같더라
▶ ‘빅뱅’ 승리 열애설 유혜원 누구?
▶ 150억 넘는 자산가인데 국민연금 한푼도 안낸다
▶ 경주서 새마을금고 강도 돈 쓸어담아 가…2명 부상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구독신청:02-3701-5555 / 모바일 웹 : m.munhwa.com ]
[AD]
topnew_title
topnews_photo 상시 유출 영상數만 10만건 삭제대행업체가 퍼뜨리기도20대 여교사 A 씨는 전 남자 친구와 함께 한 성관계 영상이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
mark빗나간 욕망이 부른 참극…옛날에도 지금과 같더라
mark경주서 새마을금고 강도 돈 쓸어담아 가…2명 부상
150억 넘는 자산가인데 국민연금 한푼도 안낸다
출산한 아기 여행용 가방에 넣어 방치한 10대 집행..
‘고용세습’ 비판 커지자… 公文 보내 입단속 나선 교..
line
special news 경찰, 구하라 전 남친 협박·상해 등 혐의로 구속영..
경찰이 가수 구하라(27) 씨의 전 남자친구 최종범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서울 강남경찰서는 22..

line
경주 새마을금고 강도 3시간여만에 검거…약물 복..
대형쇼핑몰 옥상서 떨어진 돌멩이에 5살 아이 머리..
헝클어지는 文대통령의 ‘평화체제 토대 年內구축’ ..
photo_news
최홍만, 중국 스님 파이터와 ‘심판 없이’ 주먹대..
photo_news
‘백종원의 골목식당’ 인천 중구 2억 협찬비…경..
line
[정준모의 미술동네 설설]
illust
사망 이틀前 구상 완료, 1년뒤 설치 완성…4色 품은 ‘빛의 성전..
[인터넷 유머]
mark남자와 여자의 생각 mark지혜로운 말 한마디
topnew_title
number 현직 경찰관, 모텔서 즉석만남 여성 몰카 찍..
서울 강서구 40대 女 피살사건…“전 남편이..
운전기사 특채·4일만에 초고속 임용…서울시..
배우 유재명, 12살 연하 여자친구와 결혼
“최강 ‘다저스 왕국’ 비결은 인재 알아본 선구..
hot_photo
신예지, ‘레이디 유니버스’ 2위 입..
hot_photo
제55회 대종상 영화제 사회 맡은..
hot_photo
‘빅뱅’ 승리 열애설 유혜원 누구?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사업안내 | 이용안내 | 구독안내 | 독자참여 | 회원서비스 | 고충처리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책임자:최중홍) | Site Map
제호 : 문화일보 | 주소 : 서울시 중구 새문안로 22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아01697 | 등록일자 : 2011년 7월 15일 | 발행·편집인 : 이병규 | 발행연월일 : 1997년 1월 1일
Copyright ⓒ 문화일보. All Rights Reserved. ☎ 02) 3701-5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