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카페>선명한 색채·역동적 육체… 요동치는 삶의 드라마를 표현하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루벤스의 ‘레우키포스 딸들의 납치’는 색채의 선명함과 역동적 움직임, 육체적 관능의 생생함과 극적 구성을 잘 표출한 바로크 예술의 대표작이다. 자료사진

■ 문광훈의 미학 에세이 - ⑫ 바로크란 무엇인가

예술사를 구성하는 여러 사조 가운데 바로크(baroque) 예술은 내게 오랫동안 혼란스러움을 불러일으켰다. 바로크라는 개념도 여러 가지로 얽혀 있고, 이 시대의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것이 그림이든 연극이든 조각이든, 더없이 화려하고 역동적인 데다가 보는 것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상이나 판단의 일목요연한 기준을 잡기 어려웠다. 바로크 시대의 예술작품을 어떻게 최대한 간결하게 포착할 수 있을까? 아래 글은 그런 답변의 한 시도다.

‘레오키포스 딸들의 납치’ 등
관능과 역동의 루벤스 작품

경건함보다 감각의 기쁨 묘사
바로크 회화 특징 잘 나타내

# 생생함의 극적 구성-루벤스의 두 그림

바로크 예술의 의미를 생각할 때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루벤스(Rubens)의 두 그림-‘하마와 악어 사냥’(1616)과 ‘레우키포스 딸들의 납치’(1617)다. 두 그림에는 바로크 회화를 특징짓는 거의 모든 특징들, 이를테면 선명한 색채 대비와 육체의 움직임, 그리고 이 움직임으로 인한 구성의 긴장감이 다 들어 있지 않나 싶다.

우선 ‘하마와 악어 사냥’을 보자. 사냥이 일어나는 곳은 나일 강변의 둑이다. 이것은 화면 오른편 저 멀리 보이는 야자나무 한 그루에서 잘 확인된다. 하마나 악어는 17세기에 일반적으로 위험하고 성가신 동물로 간주됐고, 그래서 그것을 포획하거나 죽이는 것은 귀족들이 행해야 할 의무로 여겨지기도 했다. 화면의 정중앙에는 큼직한 하마 한 마리가 포효하고 있고, 그 발치에는 악어가 온몸을 비틀며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이 동물 밑에는 두 사람이 깔려 있다. 오른쪽 사람은 죽었는지 이미 쓰러져 있고, 왼쪽 사람은 넘어진 채 오른팔로 칼을 들어 하마한테 대들고 있다. 그 옆에 사냥개 역시, 쓰러진 이 사람을 도우려는 듯, 하마한테 달려든다. 두 사람 모두 윗옷을 벗은 것으로 보아 안내인이나 하인인지도 모른다.

그림의 아래위를 반으로 자르면 위쪽은 세 명의 남자가 아랍 복장을 한 채 말을 타고 하마에게 달려드는 기세다. 세 마리 말은 이 낯선 동물 앞에서 기겁한 듯 요동치고 말 등 위의 세 사냥꾼은 하마 쪽으로 창과 작두를 겨누고 있다. 살아 꿈틀대듯 정교하게 그려진 하마와 악어는 위키피디아 영어판이 소개하고 있듯이, “경험주의와 자연사에 대한 그 시대의 점증하는 관심을 반영한다.” 이 그림은 루벤스가 로마를 방문했을 때 본 것을 기초로 그려졌다고 전해진다. 화면을 채우는 그 어느 요소나-인물이든 동물이든, 몸짓이나 색채 아니면 구성이든-격렬하게 요동치는 삶의 투쟁적 드라마를 재현한다.

‘하마와 악어 사냥’에서 바로크적 역동성이 경험세계에서 재현되고 있다면, ‘레우키포스 딸들의 납치’에서 다뤄지는 모티브는 신화다. 이 그림은 제우스의 두 아들 카스토르(Castor)와 폴룩스(Pollux)가 레우키포스의 딸 힐라에이라(Hilaeira)와 포이베(Phoibe)를 납치하는 장면이다. 아마도 적갈색 말을 탄 왼쪽 사람이 카스토르이고, 오른쪽 회색얼룩말 앞에 선 사람이 동생 폴룩스일 것이다. 그러나 여자들 가운데 누가 힐라에이라고 누가 포이베인지 확실치 않다. 카스토르의 아내가 힐라에이라고, 폴룩스의 아내는 포이베니만큼, 카스토르의 손에 올려지는 여자가 힐라에이라일 것이다. 그리고 폴룩스가 어깨를 들어 올리는 여자는 포이베일 것이다. 카스토르는 힐라에이라의 허벅지를 움켜잡고, 힐라에이라는 왼손을 뻗으며 허공을 쳐다본다. 이 힐라에이라 밑에서 포이베는 뒤로 몸을 젖히면서 넘어지기 직전이고, 폴룩스는 허리를 굽혀 포이베의 오른쪽 겨드랑이를 잡고 있다. 각 인물의 움직임은 놀랍도록 다양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전체적으로 보면, 서로 어울리는 하나의 거대한 원 형태를 이룬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종합예술로서의 바로크 양식을 잘 보여주는 포초의 ‘예수회의 포교사업에 대한 알레고리’. 자료사진

소박한 통일성·절제된 균형
르네상스·고전주의와 차이

생생한 감정과 주관의 강조
낭만주의 사조와 더 가까워

# 루벤스-전 유럽적 흥행화가

아마도 바로크 그림 가운데 ‘하마와 악어 사냥’과 ‘레우키포스 딸들의 납치’만큼 색채의 선명함과 역동적 움직임, 육체적 관능의 생생함과 극적 구성이 잘 표출된 예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바로크 예술을 설명할 때면, 늘 이 두 그림을 앞세운다. 이런 화려한 색채와 역동적 구성은 그 자체로 삶의 생기와 활력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감각의 기쁨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바로크적 활기와 생생함은 루벤스가 그린 그림에 나타나기 이전에 그의 실제적 삶에서 이미 묻어난다. 그는 누구보다 널리 알려진 바로크의 대표적 화가일 뿐만 아니라, 유럽 각국을 여행하며 국제적으로 활동한 명망 있는 외교관이기도 하다. 그는 유럽이 30년 전쟁으로 황폐화되자 평화안을 입안했고, 여러 왕의 신임을 얻어 크고 작은 평화협상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1630년 스페인과 영국 사이의 조약이 그 예다. 그는 기존 그림을, 소재가 어떠하고 그 종류가 무엇이건, 초상화건 제단화건, 풍경화건 사냥화건, 삶의 생생한 경험과 결부시켰다. 현실을 경시하던 기존 회화의 경건성 대신 감각적·육체적 기쁨과 생활세계에 대한 예찬이 회화의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그는 신화적 소재를 담은 그림에서도 그 주인공을 자기가 알고 지내던 사람이나 아내의 모습으로 그려 넣었다.

루벤스의 그림이 유럽의 거의 모든 궁정으로부터 환대를 받고 각국의 고위층으로부터 후원을 받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의 대표적 후원자는 벨기에 안트베르펜(Antwerpen)의 시장이었다. 신화 속 요정이나 신적인 모습도 그에게 오면 감각적 기쁨과 관능의 풍요로움 그리고 지상적 생기를 띠었다. 회화의 색채와 움직임, 리듬과 구성은 루벤스가 미켈란젤로와 라파엘, 티치아노나 베로네세 그리고 카라바조로부터 익힌 것이다.

루벤스는 때 이른 나이에 성공했고 실제로도 아주 잘살았다. 유럽 각지에서 밀려드는 주문에 응하기 위해 그의 작업장에는 100여 명의 조수가 일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주문받은 일감을 일일이 그릴 수 없어서 장르나 세부에 따라 여러 제자나 동료에게 맡겼고 자신은 주로 감독을 했다. 그리고 작품이 완성되면 덧칠만 했다. 말하자면 각자 노동분업적으로 특화된 일을 수공업적 방식으로 처리해낸 셈이다. 이와 같은 일은 1600년대 현실에서 그리 드문 게 아니었다. 회화의 황금시기였던 1650년쯤 네덜란드에서 활동한 화가는 무려 700명에 이르렀고 이들은 매년 7만 점 이상의 그림을 생산했다고 한다.(위키피디아 독일어판 ‘바로크’ 참조) 이런 수공업적 체계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이처럼 엄청난 생산이 이뤄졌겠는가.


성 이냐시오 프레스코화 등
화려한 성당 벽화 작품 많아

反종교개혁 가톨릭 후원 받아
기보법 등 일정규칙 가지기도

# 역동성과 다채로움

그렇다면 바로크 예술을 한마디로 규정하면 어떻게 될까? 그것이 시기적으로 1600~1750년에 일어났던 것이니만큼 한두 특징만 가진 게 물론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크 예술은 ‘다채로운 역동성’으로 요약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화려하고 다채롭고 리듬 있고 역동적이다. 이런 점에서 그것은 통일성과 고요 혹은 단순소박미를 중시한 앞선 르네상스 시대와 그에 뒤따라오는 고전주의 시대가 중시한 균형이나 절제된 형식미와는 선명하게 대조된다. 그러니까 바로크의 예술작품은 마치 르네상스 시대가 고전주의 시대와 양식적으로 서로 통하듯이, 고전주의 이후의 낭만주의 작품들과 서로 통한다. 바로크에 표현·양식의 과잉이 있다면, 낭만주의에서는 감정·주관의 과잉이 있다고나 할까? 그리하여 예술사조도 시대에 따라 이름은 다르지만, 그 근본 경향은 되풀이되는 것이다.

먼저 바로크 예술은 반종교개혁 흐름 속에 만들어졌다. 1500년대 종교개혁이 일어난 후, 1600년대를 지나면서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에는 세속적 권력을 얻기 위한 치열한 싸움이 일어났다. 30년 전쟁 등 유럽의 참화는 그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이런 반종교개혁의 흐름 속에서 가톨릭 교회는 예술의 주된 후원자이자 주문자였다. 성직자들은 예술작품이야말로 일반 신도를 감정적으로 사로잡아 다시 가톨릭교도로 만드는 데 가장 적당한 매체라고 여겼다. 그리하여 가톨릭 지역은 어디서나 교회와 성당뿐만 아니라 궁전과 예배당을 건축하고 치장했다. 이 모두는 현세와 내세, 생활과 믿음을 하나로 결합시키려는 종교적 신심의 표현이었다.

바로크 예술의 성격은 그 시대가 정치적으로 절대주의 왕정체제였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절대화된 중앙집권적 통치 아래 왕들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해 나갔고, 이렇게 집중된 권력으로 부와 권위를 과시하려 했다. 유럽의 대규모 궁전이 건축된 것도 이 무렵이다. 베르사유 궁전은 그 좋은 예다. 실제로 베르사유 궁전은 이후 다른 곳에 지어진 수많은 궁전과 도시계획 그리고 기하학적 정원의 모델이 됐다. 곳곳의 지방 영주들도 마찬가지였다. 바로크 예술가가 수많은 성당이나 궁전의 건축과 장식에 동원된 것이나, 그래서 바로크 교회 건물이 가톨릭 국가에 흩어져 있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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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회화는 흔히 화려한 색채와 역동적 인물, 빛과 그림자의 극명한 대조로 특징지어진다. 그런데 이런 인물의 역동성이 화려한 색채 속에서, 그리고 뚜렷하게 대비되는 빛과 그림자를 가지면서 성당의 벽과 천장에 그려졌다면 어떻게 되는가? 이것은 회화가 건축에 포함된다는 뜻이다. 게다가 성당의 벽에는 무수한 조각품이 달려 있다. 이런 식으로 회화와 건축, 조각은 하나로 통일돼 나타난다. 바로크 예술은 하나의 종합예술인 것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포초(A. Pozzo)가 로마 성 이냐시오 성당의 천장에 그린 프레스코화 ‘예수회의 포교사업에 대한 알레고리’(1661~1694)다.

그림의 중심에는 신이 있고, 이 신이 성 이냐티우스에게 빛을 전하고, 이냐티우스는 이 빛을 땅으로 보낸다. 인물들은 허공에서 마치 아무런 중력도 없이 떠다니는 듯하다. 공간 속 인물은 살아 있는 듯 느껴짐에도 실제로는 붙잡기 어렵고 공간은 눈앞에 실재하면서도 우리가 실제로 걸어 다닐 수는 없다.

천장의 이 그림 공간은 신의 사랑을 담고 있다. 그것은, 인물과 천사의 우화적 몸짓 속에서, 마치 거대한 연극무대 혹은 끝없이 열려 있는 우주 공간에서처럼, 환상적 원근법 아래 재현된다. 이때 천사와 성자 그리고 신은 나란히 어울린다. 이 신적 어울림 속에서 세속적인 것과 신적인 것의 경계는 사라진다. 그림 공간은 세속과 천상, 경험과 비전 사이의 ‘중간세계’인 셈이다. 그림 공간의 이처럼 소용돌이치는 역동성은 아마도 원근법적 묘사의 장인적 제어 없이 불가능할 것이다.

바로크의 또 하나의 특징은 그것이 일정한 규칙과 규범에 의해 행해졌다는 사실이다. 예술작품을 만들거나 건축 혹은 도시설계 시에 일정한 규칙이나 ‘사용설명서’가 제시된 것이다. 이것은 문학이나 음악에서 잘 나타난다. 스페인에서 작성된 수백, 수천 편의 바로크 연극이나 독일의 오피츠(M. Opitz)가 작성했던 ‘규범시학(Regelpoetik)’이 그러했다. 젊은 시절의 낭만적 괴테가 이른바 ‘질풍노도운동’을 통해 반발한 것도 이 규범시학이었다. 음악에서의 ‘기보법(記譜法) 체계’도 그렇다. 그렇다고 즉흥적 표현이 배제된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바로크 예술활동은 전체적으로 보아, 이런 규범 아래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바로크 예술에서 일정한 규칙과 조화를 느끼는 것은, 그래서 ‘바로크적 고전주의’라는 말이 생겨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아마도 바로크 작품이 예술사에 남긴 가장 큰 기여점은 ‘생생함’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생생함은 이성에서 오기보다는 감각에서 온다. 감각은 정신이 아닌 육체의 산물이다. 그러면서 이 육체에는 정신이 스며 있다. 바로크가 예찬한 것은 감각의 생생함이고, 이 생생한 육체가 땅 위에서 누리는 살아 있는 세속적 기쁨이다. 바로크의 빛과 색채, 그 역동적 드라마는 모두 지상적 삶의 이 실감 있는 기쁨으로 귀결된다. 시시각각 일어나는 감각의 기쁨이 없다면, 삶이란 과연 무엇일 텐가?


(문화일보 11월 28일자 25면 11 회 참조) 충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