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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김효정의 에로틱 시네마 게재 일자 : 2018년 01월 16일(火)
비밀을 지키려는 여자… 비밀을 지켜주려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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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리더:책 읽어 주는 남자

■ 더 리더:책 읽어 주는 남자

‘더 리더:책 읽어 주는 남자’(사진)는 어린 시절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 한나(케이트 윈즐릿)가 나치 집권하에 유대인을 살상하는 데 가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갈등하는 변호사 마이클(레이프 파인스)의 이야기를 다뤘다. 적지 않은 법정 신과 한나의 죄를 가려내는 과정이 묵직한 법정드라마를 보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궁극적으로 잊지 못할 사랑 그리고 연인에 관한 이야기다.

전쟁이 끝난 1958년 독일 베를린. 성홍열에 걸린 소년 마이클(데이비드 크로스)은 길에서 정신을 잃는다. 집으로 향하고 있던 30대 후반의 한나는 마이클을 부축해 응급처치를 한 후 그의 집에 데려다준다. 마이클은 그렇게 꼬박 석 달을 앓아눕는다. 병석에서도 그는 전염병으로 잠식당한 자신의 더러운 몸을 닦아주던 여자의 손이, 그의 근심 가득한 눈이 마음에 밟힌다. 침대를 떠날 수 있을 만큼의 기력을 회복한 어느 날, 마이클은 꽃다발을 들고 한나의 아파트로 간다. 이젠 괜찮은지 묻는 한나. 그리고 스타킹을 올려 신는 한나의 다리에 마이클은 또 한 번 정신을 잃고, 또 다른 열병이 시작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망자(亡者)들의 한 맺힌 저주와 병균만 남은 이곳에서 그래도 남자와 여자는 사랑에 빠진다.

영화의 현재 시점, 즉 재판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성인이 된 마이클의 회상으로 채워져 있다. 정확히 말하면, 한나와 사랑을 나눴던 추억이다. 한나의 다리를 잊지 못해 다시 아파트로 갔던 마이클은, 그리고 그의 속내를 알았던 한나는 곧 서로를 알몸으로 마주한다. 한나는 마이클을 리드하지만 경험이 없던 마이클은 벗은 한나 앞에서 짐승과도 같다. 한나의 육신과 체액을 더 물고 삼키지 못해 안달이 난다. 그런 마이클에게 한나는 호흡을, 페이스를, 몸의 위치를 조심스럽게 천천히 가르친다. 학교의 종이 치자마자 ‘어른의 쾌락’을 맛보기 위해 마이클은 한나의 공간으로 달려간다.
▲  영화평론가 김효정


서로의 만남이 지속되던 어느 날, 마이클은 학교에서 배운 책 한 권을 한나에게 읽어 준다. 이 순간부터 한나는 마이클과의 섹스보다 그가 책을 읽어 주는 시간을 더 기다리게 된다. 욕조에서도 침대에서도 사랑을 나누는 동안, 그리고 후에도 그들은 책과 함께한다. 소년은 책을 읽고, 여자는 신음한다. 소년의 젊은 육체에, 문학이 뿜어내는 엑스터시에 여자는 온 몸을 던진다.

열병처럼 시작된 사랑은 열병이 낫듯 끝난다. 수년의 시간이 흘러 법대생이 된 마이클은 참관하게 된 나치 전범 재판에서 과거에 사랑했던 여인과 재회한다. 청년 마이클은 피고석에 초라하게 앉아 있는 한나의 모습과 담담하게 자신의 죄를 고하는 목소리를 경멸하면서도 애틋했던 사랑을, 아름다웠던 여자의 몸을 그리워한다.

연출자인 스티븐 달드리는 연극과 뮤지컬 연출로 이름을 알린 감독이다. 필모그래피의 과반수가 연극과 뮤지컬이기에 ‘더 리더:책 읽어 주는 남자’와 전작 ‘빌리 엘리어트’ 등은 영화적 스펙터클과 연극적 공간이 만들어내는 감정의 예민함이 공존한다. ‘더 리더:책 읽어 주는 남자’에서도 이런 감독의 이력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예를 들면, 한나와 마이클의 만남은 대부분 한나의 아파트, 즉 밀폐된 공간에서 일어난다. 이 작은 공간에서 불붙는 섹스나 의견 충돌 등은 오롯이 배우들의 감정적 동력과 시선, 대사로만 전달된다. 한나의 작은 아파트는 마이클의 출현 이후로 다이내믹한 성적에너지가 그득하지만, 동시에 소년의 성장이 두려운 여자의 우울하고 처연함이 혼재한 곳이기도 하다.

자신의 생일을 알아주지 않는 한나가 섭섭한 마이클은 한나와 거친 말싸움을 한다. 사실은 파티를 열어주겠다는 또래 친구들에게 가고 싶은 것이다. 마이클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한나는 목욕을 시켜준다. 좁아터진 욕실 구석에서 정성껏 거품을 내고 마이클의 몸 구석구석을 닦아내는 한나의 손길을 카메라는 집요하게 따라가며 여자가 본능적으로 감지하는 이별의 순간을 그린다.

이 영화는 너무 많은 이미지들이 생각나서 괴로운 영화다. 남녀의 아픈 사랑과 결말 자체 보다, 한나가 마이클과의 이별을 준비하며 마지막으로 나누는 정사 신이 특히 그러하다. 탄성인지 울음인지 모를 한나의 흐느낌으로 가득한 이 시퀀스가 처연함으로, 아련함으로, 그럼에도 꿈꿔 보고 싶은 설렘으로 한참을 넋 놓게 만든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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