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참사 한 달>휑한 분향소 지키는 건 ‘애절한 메모’ 뿐…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7일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희생자 29명의 영정과 위패가 놓인 제천체육관 합동분향소 화이트보드에 유족과 참배객들이 붙여놓은 안타까운 사연이 적힌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국민 무관심 속 유족 고통은 현재진행형

‘자꾸 깜빡하고 전화 할 뻔…’
말없는 희생자 사진 뒤덮은 글
생계지원·치료비 해결은 요원

‘자꾸 깜빡하고 전화 걸어야지 생각 들 때가 있어. 미안해요.’ ‘고3 수고 많았어, 하늘에서는 편하게 지내.’

17일 오전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참사 희생자 29명의 영정과 위패가 놓인 제천체육관 합동분향소 벽면은 가족과 친구들이 고인을 향해 적은 애절한 메시지와 참사 희생자들의 활짝 웃는 생전 사진들로 가득했다. 참사 초기 조문객들로 가득했던 합동분향소는 어느덧 사람들의 발길이 끊겨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시청 관계자 5명만이 조용하게 자리를 지키며 드물게 찾아오는 조문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지난해 12월 23일 합동분향소가 처음으로 운영되면서 시민들이 메시지를 적을 수 있도록 입구에 설치했던 게시판도 이제는 체육관 한쪽 구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엄마, 아직도 꿈같고 믿기는 싫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려고 노력 중이야. 자랑스러운 딸이 될게. 고마워’ ‘할머니, 할아버지 다음 생에서도 손자로서 더 잘할게요. 사랑해요’ 같은 벽면에 적힌 추모의 글만이 텅 빈 분향소에 남아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29명이 사망하고 40명이 부상한 대형 참사가 발생한 지도 한 달이 돼가지만 남겨진 이들에게 비극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피해 보상은 물론 유가족 생계지원, 부상자 치료비 등 참사 지원 대책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체육관에서 만난 한 유가족은 “사고 진상 규명이 아직도 이뤄지지 않아 보상 절차 논의는 시작도 못 했다”면서 “일부 네티즌이 유가족들을 향해 좋지 않은 말들을 하는 것을 알고 있어 인터넷 댓글은 되도록 보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여론의 관심도 점차 줄어들어 힘들지만, 문제점을 제대로 밝혀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는 게 남아 있는 우리가 해야 할 일 아니겠느냐”며 현장 사진들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사고 당시 부상자들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고충을 토로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은 “정부가 (부상자들 보상에)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며 지난 10일 자체적으로 부상자대책위원회를 꾸렸다. 대책위 대표 한을환(53) 씨는 “부상자들 대부분이 구조 과정에서 연기를 많이 흡입해 아직도 입원 치료를 받는 중”이라며 “참사 당시의 악몽이 떠올라 사흘 내내 잠들지 못하는 등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다”고 토로했다. 한 씨는 “건물주가 가입했던 보험사는 병원비에도 한참 미치지 못하는 돈만 주겠다고 하는데, 정부는 ‘지원 방안을 알아보겠다’는 말만 반복할 뿐 사실상 나 몰라라 뒷짐만 지고 있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제천 = 이희권 기자 leeheke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