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국가주도주의’라는 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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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민 정치부 선임기자

대한민국 헌법을 다시 펼쳐봤다. 9장 119조 1항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언제부터 우리는 그 뒤에 나오는 ‘국가는…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119조 2항, 이른바 경제민주화 조항에 더 익숙해져 있지만 실은 1항이 중심, 2항은 보조다. 경제의 장(章)인 헌법 9장 전체를 관통하는 대한민국 경제 질서는 ‘시장의 자유가 기본이고 국가의 개입은 보조’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국가의 시장 개입은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혹은 ‘다른 수단이나 방법이 없는 경우’에 한하여 허용될 뿐이며, 국가는 자유시장경제를 위해 복속(服屬)해야 한다는 것을 법률가와 학자들은 국가 보충성의 원칙이라 부른다.

규제·인허가·검사·감독·제재라는 관치(官治)의 칼을 들고 국가가 사사건건 민간을 감시하고 시장을 통제하려 하는 건 국가 보충성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다. 기획재정부 장관 출신인 박재완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시장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그 어떤 국가의 간섭도 적폐”다. 탈중앙 블록체인 기반의 가상화폐 문제를 중앙정부가 통제하겠다며 나선 것이나 ‘거래소 폐지’ 운운하다 결국 문제를 키운 게 대표적 사례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가격체계를 뒤흔든 정부가 반발에 부닥치자 최저임금 지급 규정을 위반한 사업주 명단을 공개하겠다고 한 건 국가주의가 언제든 공포주의로 바뀔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하나금융지주 김정태 회장 3연임을 저지하려는 금융 당국의 개입은 관치의 아비투스(Habitus)가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지를 드러낸다. 금융 당국은 하나금융의 ‘박근혜 정부 창조경제 1호 기업 특혜 대출 의혹’에 대한 검사를 진행 중이라는 이유를 들어 김 회장 연임 시도에 몇 차례나 제동을 걸었지만, 하나금융은 이를 거부했다. 김 회장의 행태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금융 당국의 수장들이 직접 나서 민간 영역에 국가주의의 칼을 들이대려는 시도 자체가 폐습이다. 하나금융 건은 서슬 퍼런 정권 초기에 습성화한 관치 시도가 민간의 반격으로 저지당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첫 사례로 기록될 수도 있다. 선례는 전범(典範)이 되고 후속 사례들을 낳는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시장과 민간 영역에서 국가의 부당한 개입을 거부하는 사건들이 등장할 것이고 이는 국가주의의 몰락을 재촉할 수도 있다고 예측한다.

국가주의는 ‘천 년의 레짐’이다. 중앙 조정(朝廷)이 미숙한 백성을 대신해 모든 걸 간섭하고 만들어주고 채워 넣어야 나라 경영이 되던 시절의 습속(習俗)이 왕조시대 국가 운영 원리로 자리 잡았고 식민지배 시기를 거치면서 강화돼 해방 후 오늘날까지 전승됐다.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교수는 “국가주도주의의 망상과 미몽이 계속되면 시장의 자율성은 죽고 공동체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제 국가가 시장을 지배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 관이 민간을 통제해야 한다는 마성(魔性)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헌법 119조 1항을 통해 우리는 시장의 자유와 민간의 창의는 흔들릴 수 없는 제1의 경제 원리임을 확인해야 한다. 그래야 시장이 살아나고 경제가 회복하고 대한민국이 건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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