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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북리뷰 게재 일자 : 2018년 01월 19일(金)
130년전 시대의 편견, 온몸으로 넘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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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 기자가 드문 시절 정신병원에 잠입 취재해 탐사보도의 새 장을 열고, 세계 일주로 시대의 아이콘이 된 열혈 기자 넬리 블라이의 생전 모습. 자료사진

- 넬리 블라이 세트 / 넬리 블라이 지음, 오수원·김정민 옮김 / 모던아카이브

한시대의 아이콘 넬리 블라이
여기자로서 성취·일대기 담아

■ ‘세상을 바꾼 10일’
환자 학대 악명 높은 정신병원
10일간 잠입취재… 실태 폭로

■ ‘세상을 바꾼 72일’
‘80일간 세계 일주’보다 빠른
72일 최단기간의 세계 일주기


1885년 1월 미국 ‘피츠버그 디스패치’에 ‘여자아이가 무슨 쓸모가 있나(What Girls Are Good For)’라는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 ‘차분한 논평가’라는 필명의 보수적인 칼럼니스트가 쓴 것으로 전형적인 성차별 내용을 담고 있었다. 여자는 육아와 집안일에 집중해야 하니 직장에 나가지 않는 것이 좋다, 여자의 본분은 남자를 돕는 것이니 남자와 경쟁하지 말라는 요지였다. “중국을 비롯해 역사가 오래된 일부 국가에서는 여자아이를 죽이거나 노예로 판다. 쓸모가 없어서다. 우리도 언젠가 그럴 날이 올지 누가 알겠느냐?”라는 극단적인 여성 혐오 발언까지 담고 있었다.

평소 ‘피츠버그 디스패치’를 즐겨 읽던 스물한 살의 엘리자베스 제인 코크런(1864~1922)은 격분했다. 그는 ‘외로운 고아 소녀’라는 가명으로 신문사에 반박문을 보냈다. 그 뒤 신문에는 ‘외로운 고아 소녀’라는 가명으로 글을 쓴 이를 찾는 공지문이 실렸다. 코크런이 직접 신문사로 찾아가자, 조지 매든 편집장은 예상치 못한 제안을 했다. 당신의 글이 아주 독특하니, 칼럼을 써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요청이었다. 일주인 뒤, 여성에게 일할 기회를 폭넓게 제공해야 한다는 코크런의 첫 칼럼이 신문에 실렸다. 그때부터 그녀는 ‘넬리 블라이’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했다. 여자 기자는 필명을 쓰던 당시 관례에 따라, 매든 편집장이 붙여준 이름이었다. 한국 독자들에게는 다소 낯설지만, 미국에선 한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여기자 넬리 블라이가 드라마틱하게 등장하는 순간이다.

이번에 나온 넬리 블라이 세트는 두 권으로 구성돼 있다. 환자 학대로 악명 높은 정신병원에 10일간 잠입 취재한 뒤 끔찍한 실태를 폭로한 잠입 취재기 ‘넬리 블라이의 세상을 바꾼 10일(Ten Days in a Mad-House)’과 72일 6시간 11분 14초라는 최단 기간에 세계 일주에 성공한 세계 일주기인 ‘넬리 블라이의 세상을 바꾼 72일(Around the World in 72days)’이다. 130여 년 전, 여성 참정권조차 없던 시절, 놀라운 시도가 아닐 수 없다.

‘넬리 블라이의 세상을 바꾼 10일’은 탐사 보도의 전범이 된 저자의 정신병원 잠입 취재기와 차별과 편견에 맞서며 시대의 아이콘이 된 저자의 일대기가 수록돼 있다. ‘넬리 블라이의 세상을 바꾼 72일’은 정신병원 탐사 보도로 신문왕 퓰리처가 운영하는 ‘뉴욕 월드’의 정식 기자가 된 그녀가 흥미로운 기삿거리를 고민하다 기획한 아이템이다. 바로 쥘 베른의 소설 ‘80일간의 세계 일주’ 속 주인공 필리어스 포그보다 더 빨리 세계 일주를 완주하는 기획이었다. 하지만 회사는 여자라서 보호가 필요하다며 남자를 보내겠다고 나왔고, 이에 대한 넬리 블라이의 답은 이랬다. “남자를 보내 보세요. 그럼 같은 날 다른 신문사 대표로 출발해 그 남자를 이기고 말 테니.” 결국 그는 세계 일주에 나섰고 성공했다.

여자 기자는 주로 패션이나 요리 같은 기사를 쓰던 시절에 이룬 그의 성취는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그의 이름을 딴 상품과 호텔이 생겨날 정도로 가장 유명한 기자를 넘어, 시대의 아이콘이 됐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50세에 동부전선의 유일한 종군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던 그녀의 취재기 두 편은 자신을 얽어매는 시대의 한계를 온몸으로 넘어서려 했고, 또 넘어선 한 위대한 인간의 이야기로 읽힌다. 오늘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숱한 넬리 블라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우는데, 그는 역사 속의 인물로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생생하게 우리에게 이런 말을 전한다. “말도 안 돼요. 진심으로 원한다면 할 수 있어요. 문제는, 당신이 그걸 원하느냐는 거죠.…나는 항상 올바른 방향으로 제대로 힘을 쏟으면 불가능한 일이 없다고 생각해요”(‘세상을 바꾼 72일’, 19쪽). ‘세상을 바꾼 10일’ 208쪽, 1만3000원. ‘세상을 바꾼 72일’ 304쪽, 1만4000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mail 최현미 기자 / 문화부 / 부장 최현미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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