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인사가 부른 禍… 속도 내던 발전社 수장 인선 ‘주춤’

서부발전 후보 수뢰 구속
산업부 인사담당도 함께

소수 실무진만 정보 공유
靑 낙하산 임명 제지 못해
“투명·전문성 시스템 절실”

공공기관장 인선을 둘러싸고 각종 비리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지만, 정부에서조차 대책 마련에 미적거리는 모습이다. 모든 병폐가 ‘낙하산’ 인사에서 비롯된 것을 정부 당국자들도 인식하고 있으나 청와대와 여권의 눈 밖에 나길 꺼려 대책 마련 자체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가 된 모양새다.

22일 정부 등에 따르면 가장 많은 공공기관을 거느린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한국전력공사와 한국수력원자력을 포함한 6개 발전사 사장 인선에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채용 및 개인 비리에 연루된 후보자들이 속출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는 지난주 5개 발전사(서부·중부·남부·남동·동서) 사장 후보를 각각 2명으로 압축해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후 서부발전 사장 후보였던 김모 본부장은 뇌물수수 혐의로 지난 19일 구속됐다. 개인 비리이긴 하지만 검찰 수사를 받는 인물을 공운위가 최종 후보 2명에 포함시켰다는 것 자체가 절차적 문제를 드러낸 것이란 지적이다.

서부발전의 사장 인선 비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전 정부에서 청와대의 낙점을 받은 정하황 전 사장을 위해 부당하게 임원추천위원회에 개입한 산업부 인사 담당 서기관과 국장이 검찰에 구속됐다. 정부 부처 가운데 공공기관을 가장 많이 거느린 산업부로선 터질 게 터졌다는 분위기다. 공공기관 수가 40개가 넘다 보니 이 같은 인사 문제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산업부 장·차관, 실무자 2명만이 인사과정에 포함돼 있어 ‘밀실인사’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공모를 통해 들어온 후보자를 기재부 공운위에서 심사를 통해 2배수로 압축하는 과정이 있지만, 요식행위에 불과한 상황이다. 이미 청와대가 점 찍어 놓은 인사를 기관장으로 만들기 위해 소수의 실무진과 거수기에 불과한 공운위가 ‘공조’하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앞선 정부에서 발생한 공공기관 직원 채용비리도 낙하산 인사들의 정치권에 대한 ‘보은(報恩)’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았다는 게 중론이다.

산업부를 비롯한 정부 각 부처 내부에선 절차적 투명성과 인물의 전문성을 담보할 수 있는 시스템의 개선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공염불에 불과해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산업부 관계자는 “청와대·여권이 제도 개선을 원하지 않는데 공무원이 아무리 제도 개선을 말한들 무슨 소용이냐”고 말했다. 일각에선 기관장 선임 이후 추진될 각 기관의 상임감사 자리를 둘러싼 정치권의 압력은 더욱 거셀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낙하산 인사를 보내지 않는 것이 가장 기본이겠지만, 현재 운영 중인 공운위가 실효성 있는 심사를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전했다.

박정민 기자 bohe00@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