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카페>‘60년 현대史’ 지켜본 쌍둥이 건물… 이젠 광장과 어울리지 않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사진 왼쪽)과 미국대사관(오른쪽). 1960년 2월 자유당 시절에 건립이 시작된 두 건물은 4·19혁명을 거쳐 5·16군사정변 후인 1961년 9월에 준공됐다. 안창모 제공

■ 안창모의 도시 건축으로 보는 서울 - ⑫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美대사관

美대사관 산하 원조기관 ‘유솜’
건물 2채 지어 나눠쓰자고 제안
5·16 직후인 1961년 9월 준공

집권한 군부가 왼쪽 건물 차지
각종 청사로 이용하다 박물관化
외부와는 단절된 공간의 아쉬움

오른쪽, 1968년 美대사관으로
곧 우리 품으로 돌아오겠지만
깨어있는 시민들의 공간 돼야

‘광화문광장’은 촛불 집회를 거치며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될 듯하다. 조선의 중심이자 상징적 공간이었던 이곳은 지난 600여 년 동안 광장이 아닌 거리였다. 임진왜란 이후 300년 가까이 경복궁이 페허였지만, 육조거리가 건재했던 덕분에 이곳은 역사도시 서울의 상징적 위상을 유지했고, 지금도 수도 서울의 상징적 입지를 갖고 있다. 이런 ‘광화문광장’은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던 공간으로 2009년 8월 1일 조성됐다. 그러나 광화문광장은 건축가들이 서울에서 최악의 건축으로 손꼽는 곳이다. 독자들은 의아해할 것이다. 왜 많은 사람이 찾는 서울의 중심인 ‘광화문광장’을 건축가들이 ‘최악의 건축’이라고 하는지….

2011년 한 일간지에서 건축가와 교수 등 전문가 30명(23명 응답)을 대상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건축’과 ‘최악의 건축’에 관한 조사를 했다. 이때 광화문광장이 10표로 최악의 건축 1위에 선정되었다. 왜 건축가들은 일반인과 다른 선택을 했을까? 이유는 명확하다. ‘광화문광장이 주변의 도시적 맥락과 역사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청계천을 품에 안고 4개의 산으로 둘러싸인 서울’은 평지에서 길과 광장으로 엮인 유럽의 도시와는 근본적으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막연히 선진국 도시를 동경하며 서양의 광장을 역사적 맥락 없이 육조거리 한복판에 광장이라는 이름으로 심어놓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잔디 광장으로.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유솜빌딩 초기안.

그 광장의 최전선에 높이를 달리하는 공공건물들이 대조적인 경관을 형성하며 마주하고 있다. 기능만 보면 육조거리의 기능을 잇고 있지만, 모습은 전혀 다르다. 그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이 폭 100m가 넘는 도로를 앞에 두고 단정한 모습으로 나란히 서 있는 두 건물이다. 전면의 폭과 높이가 똑같은데 외관은 다른 모습으로 서 있다. 처음에는 쌍둥이처럼 같은 모습으로 지어졌지만, 지금은 매우 대조적인 모습의 건물이 되었다.

오른쪽 건물은 지어졌을 당시의 모습 그대로지만, 왼쪽 건물은 현대적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안창모 사진 참조) 대한민국역사박물관으로. 변하지 않은 건물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미국대사관이다. 두 건물은 세종로 건물 중 ‘고종황제 즉위 40년 친경기념비전’을 빼고는 가장 오래된 건축으로 6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한국 현대사의 목격자이기도 하다.

1961년에 준공된 두 건물은 공사 중에 5·16군사정변을 목격했고, 완공된 후 현 역사박물관은 정변에 성공한 군부의 ‘국가재건최고회의’로 사용됐으며 제3공화국이 출범한 직후에는 경제기획원과 재무부 청사 역할을 했다. 1985년 과천 정부제2청사가 완공되면서 경제기획원이 과천으로 옮겨간 후에는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가 사용하다가 2012년 말부터 역사박물관이 됐다. 또 다른 건물인 미 대사관 건물은 준공 직후 원조기관인 주한미국경제협조처(유솜·USOM·US Operations Mission to Korea)가 사용하다가 1968년부터 미국대사관이 됐다.

두 건물은 함께 지어진 후 사이좋게 한국과 미국 정부가 나눠 쓰고 있지만, 존재 방식은 전혀 다르다. 현 역사박물관은 용도뿐 아니라 디자인도 현대적으로 바뀌었지만, 동시에 건물을 감싸고 있던 담장이 사라졌고, 출입을 방해하는 어떤 장애물도 없다. 그러나 미 대사관은 다르다. 예전 담장이 그대로임은 물론이고 육중한 2중 철제문과 철조망 그리고 탱크도 막을 수 있을 것 같은 바리케이드로 보호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곳곳에는 많은 감시 카메라가 있다. 처음에는 일란성 쌍둥이로 지어진 건물이 어찌 이리 다른 모습을 갖게 되었을까?

우선 두 건물이 어떻게 지어졌는지 살펴보자. 시작은 ‘유솜(USOM)’이었다. 1959년 한국에 대한 원조권한이 유엔군사령관에서 미국대사로 이양되면서 유솜이 만들어졌다. 유솜은 우리말로 ‘주한미국경제협조처’다. 유솜은 원조자금의 운영방법을 규정한 한국정부와 통일사령부 간 경제조정에 관한 협정(마이어협정, 1952년 5월 24일)에서 규정한 역할을 수행했는데, 가장 중요한 특징은 원조 집행기관이 군에서 민(미 대사관)으로 이관되었다는 점이다. 미 대사관 산하에 있었던 유솜은 한국경제를 좌우했던 원조의 권부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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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청사가 없던 유솜이 한국정부에서 대지를 제공하면 자신들의 비용으로 건물을 2채 지어 한 채씩 나눠쓰자고 제안했다. 미국의 설계 회사(King Associates, Inc.와 Pacific Architects & Engineers, Inc.)에 의한 원 설계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저층부를 가진 주 건물이 있고, 다른 한 건물은 세종로에 직각으로 세워질 계획이었다. 그러나 경위를 알 수 없는 과정을 통해 현재처럼 같은 규모, 같은 모습으로 지어졌다. 디자인은 당시 보편적인 관공서 건물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다만 선진적인 건축기법에 의해 기준층 천장고가 3.15m로 일반 사무소 건축에 비해 낮아졌고, 수평이 강조된 입면구성으로 8층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높아 보이지 않는다. 당시 유솜 청사 현장은 국내 건축학과 학생들이 미국 건축술을 견학할 수 있는 현장이기도 했다.

1960년 2월 자유당 시절에 시작된 공사는 4·19혁명을 거쳐 5·16정변 후인 1961년 9월에 준공되었다. 이때 한국정부 몫의 건물 용도가 5·16정변으로 집권한 군부의 국가재건최고회의였다. 준공식에서 박정희 의장은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격으로, 새 술이 아니라면 새로 마련된 새 부대에 들어앉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고 한다. 이 논리는 정변으로 집권한 후 군정을 실시했던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이 건물을 점유하는 근거였던 듯하다.

원조기관은 미 대사관 산하의 유솜이었다. 원조기관이 사용하던 건물을 미 대사관이 사용하게 된 것은 1968년이었다. 1960년대 경제개발의 성과가 나타나면서 원조기관의 역할이 점차 줄어들었고, 공간에 여유가 생기자 미 대사관이 빈 자리를 차지했다. 원조기관이 미 대사관 산하기관이므로 자신들이 이 건물을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나, 62년 협정에 따라 한국정부 소유인 유솜빌딩을 미국대사관이 사용한 것은 두고두고 논란이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경제기획원이 제3공화국 출범과 함께 왜 유솜청사 옆에 자리잡았는지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이유는 명료하다. 전후 복구기는 물론, 1960년대까지 한국경제는 미국 원조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기에 원조를 총괄하는 유솜과의 긴밀한 협조가 한국경제의 관건이었다. 제1, 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성과를 거두면서 유솜의 역할이 축소되었지만, 1968년 유솜의 빈 자리에 미국대사관이 자리하면서 경제를 대신한 미국의 정치적 영향력은 지속적으로 유지되었다. 무상원조는 1971년에 끝났다.

한편, 전후 복구기에 가장 선진적인 건축현장이었던 이 건물 건축 공사에 참여했던 회사들은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공사의 주계약자는 미국의 빈넬사(Vinnel Corporation)였지만, 한국업체로 신성공업㈜과 한양건설㈜이 참여했었다. 빈넬사는 1931년 설립된 미국회사로 건설업으로 시작해서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을 거치며 성장했고, 1970년대 이후 군사훈련이나 무기체계 운영 관련으로 업역을 확장해 지금은 군보안 서비스나 용병을 공급하는 회사가 되었다.

한편 하청을 맡았던 신성공업은 1960년대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며 세운상가 내 신성상가를 지었고 1980년대 해외로도 진출했으며, 한양건설 역시 군 관련 공사를 통해 성장하며 1980년대 대표적인 주택건설업체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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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 건물이 지난 60여 년 동안 같은 곳에서 같은 역사를 목격했지만, 흥미롭게도 역사박물관과 미국대사관의 현재 존재 방식은 너무나 대조적이다. 건물을 사용하는 주체의 차이 때문일까? 머지않은 시간 안에 미국대사관이 용산으로 옮겨가고, 현 미 대사관 건물이 우리에게 돌아오면(소유주는 외교통상부) 역사박물관처럼 바뀔까? 역사박물관은 과연 바람직한 해법일까?

문화체육관광부가 행정복합도시로 이전한 자리에 박물관이 들어서면서 육조거리의 역사성을 품에 안은 듯했지만, 장소와 호흡하지 않은 박물관은 스스로 도시와의 관계를 막아버렸다. 박물관은 4면이 유리로 뒤덮인 건물이지만 놀랍게도 실내에서는 육조거리를 조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전시장 부분은 외부와 철저하게 차단돼 있고, 사무공간조차도 외부로 향한 시선이 철저하게 통제돼 있다. 외부에서 자신이 어떻게 보일 것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신경을 쓴 건물이지만, 자신이 도시와 어떻게 호흡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건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물관은 우리 품에 돌아올 미 대사관의 롤 모델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답일까?

여기서 잠시 존재조차 인지되지 않았던 부조(浮彫)를 살펴보자. 최고회의 건물과 유솜 건물로 완성된 두 건물에는 각각 부조가 설치되었다. 1961년 전국 공모를 통해 젊은 조각가 김영중의 안이 당선됐다. 최고회의 건물에 설치된 조각의 주제는 ‘생산’이었고, 유솜빌딩에 설치된 조각의 주제는 ‘평화건설’이었다. 김광명 숭실대 교수에 따르면, 조각가 김영중은 시대를 거스르거나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일을 거부했지만, 시대의 흐름이나 시대정신을 담고 있는 주제를 택해 작업했다고 한다. 두 건물에 설치된 작업 ‘생산’과 ‘평화건설’은 김영중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우리의 삶이 재건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유솜은 ‘평화를 건설하는 사람들’이었고, 최고회의 건물에 조각된, ‘새벽을 알리는 닭, 불로초를 입에 문 학, 평화를 전달하는 비둘기, 일을 준비하는 말, 곡물을 수확하고 있는 농부’로 구성된 ‘생산’은 전쟁을 극복하고 우리가 헤쳐나가야 할 현실과 놓치지 말아야 할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시대상황을 반영하면서도 시대의 도구나 수단이 되지 아니하고 삶의 역동성을 미적 정서로 드러내고자 했던 김영중의 조각은 권력자의 도구가 아닌 깨어있는 시민과 함께했던 광화문광장과 함께할 역사박물관 그리고 우리 품에 돌아올 미 대사관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우리의 답을 요구한다. (문화일보 2018년 1월 3일자 28면 11 회 참조)

안창모 경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