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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사회] His Story 게재 일자 : 2018년 01월 24일(水)
“美서 의사로 안정되게 살았으면 ‘한국 仁術’ 멋진 삶 없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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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탠리 토플 박사가 지난 18일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의료 봉사활동을 하지 않고 의사로서 안정된 삶을 살았으면 이런 멋진 인생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제1회‘석천나눔상’스탠리 토플 박사

“의료 열악하다는 말에 한국行
전기 없어 햇빛 의지해 수술
비용부족 낚싯줄을 봉합絲로
주위서‘깍쟁이’소리 많이 들어

인생에 많은 돈 필요하지 않아
믿음·행복·배려가 내 삶 지탱
단 한번도 봉사 후회한적 없어”


2000년대 초반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에 한국인 ‘슈바이처’ 이태석 신부가 있었다면, 40여 년 전 한국에는 스탠리 토플(86) 박사가 있었다. 전쟁의 폐허 속에 불치의 천형이라는 한센병이 유행하는 시절, 토플 박사는 27세 나이에 이름도 낯선 한국 땅에 와 한센병 치료와 퇴치, 한센병자의 재활과 사회 복귀를 도왔다. 토플 박사는 국내 최초의 한센병 민간병원 애양원(현 여수애양병원)에서 22년간 근무했다. 그는 1981년 한국 의료 봉사활동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 정형외과 의사로 일하다 다시 아프리카 케냐와 아프가니스탄, 코스타리카 등지에서 의료 활동과 재활병원 설립 등 봉사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토플 박사는 국적을 초월한 헌신과 인류애 실천을 인정받아 석천나눔재단(이사장 이종욱)이 주관하는 제1회 석천나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지난 19일 시상식에 앞서 18일 애양원에서 의료 봉사 활동을 같이 한 부인 아네 마리 토플(87) 여사와 그를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흰 머리에 큰 키, 마른 몸매의 노부부가 손을 맞잡고 느린 걸음으로 인터뷰 장소에 들어서며 웃음으로 인사를 할 때, 천진난만한 어린이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평생 사랑을 실천하는 봉사활동을 해 온 그는 지나온 인생을 ‘믿음’ ‘행복’ ‘배려’라는 세 단어로 표현했다.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을 받았고, 이를 실천하면서 행복했으며, 나눔으로써 함께 배려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그런 삶을 사는 힘은 어디서 나온 걸까.

―석천나눔상 첫 수상자가 되신 것을 축하드린다.

“며칠 전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상인지 배워가는 중이다. 상을 기대하지 않았고, 첫 수상자라는 것도 방금 알았다. 이번 수상이 사랑과 봉사가 널리 퍼지는데,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얼마 만의 한국 방문인가.

“2년 반 전에 한번 왔었다. 한국은 올 때마다 변하고, 훌륭하게 발전하며, 현대화하기 때문에 매우 놀란다. 우리 부부가 사는 곳은 주민이 5000명가량 되는 미국의 작은 마을이라 북적이고 바쁜 서울에 오면 정신이 없기는 하지만 느낌은 언제나 새롭다.”

―박사님에게 ‘봉사’와 ‘사랑’은 어떤 의미인가.

“나는 기독교인이다. 기독교인은 믿으면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봉사나 사랑도 신앙의 연장 선상이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건 실질적인 봉사나 헌신을 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다른 나라에 가서 인술을 펴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교류할 때 성취감을 느꼈다. 미국에서 정형외과 의사로서 안정된 삶을 살았다면 이런 멋진 인생은 없었을 거다.”

“청소년 시절 성경을 통해 일깨움을 받았고 성경을 읽으며 믿음을 실현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다양한 책을 읽고 기독교인을 만나면서 사람으로서 헌신하며 살면 존재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믿음이 있다 보니 그걸 표현하는 방법이 봉사와 헌신이었다.”

▲  스탠리 토플 박사와 부인 아네 마리 토플 여사가 서울 강남의 한 호텔 발코니에서 시내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네 마리 여사는 “기독교인으로서 의무라기보다 세상에서 예수의 기적을 목격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며 “신약성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다양한 질환을 앓는 환자를 치유한 이야기가 많은데 그런 환자들을 일으켜 세워서 독립적으로 살 수 있게 한 것에 영감을 받아 활동해 왔다”고 설명했다.

―부임 당시 애양원 상황은 어땠나.

“처음에는 애양원 상황이 어떤지 정확히 몰랐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처음 왔을 때 한센병 환자가 1200명 정도 있었고 환자들이 서로를 치료하고 있었다. 물론 정확한 치료법이 아니었다. 수도나 난방 시설도 없었다. 전기 시설이 없어 램프를 켜고 살아야 했고, 수술도 천장에 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에 의지해 겨우 할 정도였다. 모든 것이 힘들었지만 새로운 경험이었다.”

애양원 설립 100주년 기념 간행물 ‘구름기둥, 불기둥’에는 토플 박사가 비용을 아끼기 위해 2호 낚싯줄을 봉합사로 이용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변변한 수술 봉합사가 없었던 때에 고압 가열 멸균 소독을 해도 잘 견디는 낚싯줄은 훌륭한 봉합사였다. 하지만 봉합 흉터가 남는 문제점과 사회적 인식이 바뀌면서 낚싯줄 봉합사 사용은 중단됐다.

―열악한 환경에서 새로운 한센병 치료법을 도입했다고 하던데.

“한센병 환자의 피부 속에 있는 한센 바이러스를 검사하고, 피부조직을 떼어내 현미경으로 관찰하며 새로운 치료법을 찾았다. 디디에스(DDS), 람프렌(lamprene), 프로에치오나마이드(proethionamaide) 등 한센병 신약을 피부 검사 절차를 거쳐 양성 판정을 받은 환자에게 투여했고, 족부궤양에 대해 석고붕대를 활용한 새로운 치료법을 도입하기도 했다. 미국 장로교 병원에서 접이침대를 얻어 와 병실을 처음 마련해 병원에서 환자를 계속 치료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

―한센병과 소아마비 치료를 병행해 한센병에 대해 잘못 알려진 사회적 인식을 바꾸었다고 들었다.

“한센병 환자가 급감할 무렵, 한국에는 소아마비 치료가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애양원에서 한센병과 소아마비 치료를 병행했다. 미국에서 지원받은 소아마비 백신을 지역 사회에 보급하고, 소아마비를 앓아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재활 치료를 시작했다. 애양원에서 소아마비 수술을 시행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연간 2000명의 환자가 전국에서 찾아오기도 했다. 그때 한국에서 한 해 발생하는 소아마비 환자가 2000명 수준이었으니 얼마나 많은 환자가 찾아왔는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한센병과 소아마비를 같은 곳에서 치료하면서 한센병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바뀌게 된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토플 박사는 1961년 어린이 한센병 환자를 돕기 위해 방한한 노르웨이 출신 여의사를 만나 4개월 만에 결혼했다. 부인 아네 마리 토플 박사는 소아과 전문의였지만 이후 안과와 피부과 공부를 해 애양원에서 안과 질환과 피부과 질환 진료를 맡았다. 한센병 환자들은 바이러스로 인해 정신 질환과 안과 질환, 감각 소실, 약물 남용 등 다양한 복합 질환을 앓는 경우가 많다.

“할아버지께서 월드비전에 재정을 기부하는 기부자였다. 어느 날 월드비전 소식지를 본 할아버지가 내게 편지를 보내왔다. ‘노르웨이의 한 멋진 여성 의사가 한국의 고아들을 위한 병원을 설립하러 한국에 갈 예정인데 정말 아름다운 여성’이라고 소개했다. 할아버지가 중매를 선 거다. 1961년에 만나 넉 달 후 결혼했다. 양가 부모님은 결혼한 지 3년이 지난 후에야 뵙게 됐다.”

―의료 선교 국가로 한국을 선택한 이유가 있었나.

“한국이라는 나라와 한센병이라는 질병을 꼭 짚어 선택한 건 아니었다. 활동하던 선교원에서 한국의 한센병 환자를 지원했고, 한국에 충분한 의료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아 한센병 환자들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고 해서 오게 됐다. 당시는 의과 대학에서도 한센병에 대한 연구와 공부를 안 하던 시절이다. 결혼 2년 후 인도에 7개월 동안 머물면서 한센병에 대해 저명한 영국 의사로부터 다양한 치료 및 수술법을 배웠다.”

―의료 봉사 활동에 대한 회의가 일거나, 부나 명성에 대한 유혹을 느낀 적은 없었나.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고, 가끔 쉬고 싶다는 생각은 했다. 그럴 때는 가족들이랑 지리산 별장에 가거나 등산을 하면서 휴식을 취했다. 케냐에서도 킬리만자로산을 등산하면서 휴식을 취할 때가 많았다.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힘들거나 어려웠던 경험을 잊게끔 설계된 것 같다. 지금 돌아보면 모든 게 미화돼서 좋았던 기억밖에 없다. 물론 애양원에서 일할 때 일부 주민과 환자가 데모를 한다든지, 직원들이 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하는 등 몇 가지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지만 좋은 일들이 훨씬 많았다.”

―이번에도 애양원 방문 계획이 있나.

“한국에 오면 꼭 애양원을 방문한다. 그곳에는 아직도 봉사자와 환자 등 오랜 친구들이 많이 있다. 100세가 넘은 친구도 있다. 이번에 가서 친구를 만나고 교회도 갈 생각이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한센병 환자가 5만 명이었는데, 지금은 5000명으로 현저히 줄었다고 한다. 소임을 다한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적은 없었나.

“100만 달러가 생겨도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인생을 살면서 많은 돈이 필요한 것 같지 않다. 아버지가 사업가여서 어린 시절 부족함 없이 자랐고, 아프리카로 봉사활동을 떠나기 전에 미국에서 전문의 활동을 해서 아이들 키우는 데 큰 어려움도 없었다. 그렇지만 부모님들이 근검절약을 매우 강조하셔서 한국에서 깍쟁이 또는 구두쇠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애양원이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고, 약도 싸게 팔아야 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절약해야 했다.” 토플 박사는 ‘깍쟁이’ ‘구두쇠’라는 말을 한국말로 하면서 웃었다.

전남 여수 애양원 부근에는 토플 박사의 한국식 이름 ‘도성래’에서 딴 도성 마을이 있다. 애양원에서 한센병을 치료한 사람들이 재활을 위해 모여 사는 동네다. 도성래라는 이름은 토플 박사에게 한글을 가르쳐준 선생님이 지어준 이름이다. 토플을 ‘도’로, 스탠리를 성래로 바꾼 것이다. 성래의 한자는 ‘거룩할 성(聖)’과 ‘올 래(來)’로 ,‘거룩한 이가 왔다’는 의미다.

―의료 봉사활동을 천직(Beruf·베르푸)이라고 언제부터 생각하셨나.

“고교 졸업반일 때 천직이라는 걸 느꼈다. 어떻게 하면 인생을 성취감 있고, 존재 이유를 달성하며 살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때 의료 선교사로 살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아 의대 진학을 결정했다. 그 후 많은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이 길을 좀 더 견고히 가게 됐다.”

―그동안 살아온 인생을 단어로 표현한다면.

“3가지 단어로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믿음, 행복, 배려. 여기에 하나를 추가하면 감사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길을 따라온 것이 ‘믿음’이고, 우리 부부 두 사람의 봉사활동과 결혼생활을 돌아봤을 때 행복을 느끼며, 사람이 서로 사랑하며 산다는 것은 선물이자, 배려다.”

토플 박사 부부는 “우리도 가끔 싸운다”며 “20대의 사랑과 80대의 사랑이 다르듯이 80대의 사랑은 훨씬 깊다”고 말했다. 노부부는 “결혼은 믿음을 실천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4명의 딸을 두었는데, 그중 한 명은 의대에 진학해 북한 등에서 의료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인터뷰 = 유병권 전국부장 ybk@munhwa.com
사진=신창섭 기자 bluesky@munhwa.com
e-mail 유병권 기자 / 전국부 / 부장 유병권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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