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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8년 01월 26일(金)
조선 시대 양반부부 낮엔 대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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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시대 양반 부부의 대화 원칙은 ‘묵언의 윤리’였다. 낮에는 서로 대화를 나누는 법이 없어 가족조차 부부가 대화하는 장면을 보기 힘들었다. 사진은 조선 시대 양반 계급 부부의 모습. 자료사진

- 조선 시대 백성들의 커뮤니케이션 / 채백 지음 / 컬처룩

묵언의 윤리따라 손님처럼 존중
남편 ‘낭군’‘상공’으로 부르고
아내는 姓氏·부인으로 호칭
신분 달라도 부모는 자식 하대

조선말·개화기 소설 17편통해
민중 私的·公的 소통방식 파악


역사에는 항상 힘이 작용한다. 문자를 읽고 쓸 줄 아는 이가 드물었던 시대에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 쉬웠다. 권력을 쥔 자들은 기어이 ‘용비어천의 노래’를 남기고 싶어 했다. 패자는 그나마 승자의 상대로나마 역사에 남을 수 있었지만, 일반 민중은 한 줄 기록마저 남기기 어려웠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 또는 ‘역사 없는 사람들’(로버트 냅)이었다. 각종 유물이나 단편적 기록을 통해 짐작할 뿐, 우리는 그들이 어떻게 살아갔는지 좀처럼 실감하기 어렵다.

‘조선 시대 백성들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채백 부산대 교수는 이러한 미지의 갈증을 풀어준다. 이 책은 조선 시대 후기와 개화기에 출판된 소설 작품을 분석해서, 조선 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 삶을 이야기하고 일상을 나누었는가를 보여준다. 이 책이 분석 대상으로 삼은 작품은 조선 후기의 ‘소현성록’ ‘배비장전’ ‘홍길동전’ ‘숙향전’ ‘춘향전’ ‘심청전’ 등 8편과 개화기의 ‘혈의 누’ ‘빈상성’ ‘추월색’ ‘재봉춘’ 등 9편이다. 소설의 특성상, 대화나 편지 등을 통해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람들 간의 직간접적 소통 방법이 담길 수밖에 없으며, 이를 분석하면 민중들이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주변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하면서 필요한 정보를 얻고 세상 돌아가는 일을 알게 되었는지”를, 즉 조선 시대 사람들의 사적, 공적 소통방식을 파악할 수 있다.

“석씨가 참정이 처음으로 낮에 말하는 것을 듣고 시험하는가 싶어 더욱 부끄러워하며 감히 한마디도 못하고 진퇴양난 하여 머뭇거리는 태도가 진실로 더욱 애원하는 듯하고 예쁘기도 하여 심신을 녹게 하였다.”

현대인의 눈으로 볼 때, ‘소현성록’의 이 장면은 상당히 충격적이다. 소현성과 석씨는 서로 부부다. 참정은 소현성을 말한다. 경치를 즐기던 그가 우연히 부인을 만나 자리를 권하는데, 석씨는 낮에 남편이 말하는 걸 처음 들었기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한다. 머쓱해진 소현성은 하는 수 없이 자리를 파하는 쪽을 택한다.

저자에 따르면 조선 시대 양반 부부는 ‘묵언의 윤리’를 좇아 살았다. 낮에는 서로 대화를 나누는 법이 없었으며 ‘공경하는 손님’처럼 서로 존중하면서 살았다. 가족들조차 부부가 대화하는 장면을 보기가 힘들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 서로 경어를 썼으나, 가부장제 질서를 반영한 듯 높임 정도가 서로 달랐다. 아내는 남편에게 존경법, 겸양법, 공손법 등 세 가지 경어법을 써서 깍듯이 높였으나, 남편은 아내에게 하오체의 예사높임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부인은 남편을 직책이나 ‘낭군’ ‘상공’으로 부르고, 남편은 아내를 ‘부인’으로 부르고, 제3자에게는 ‘석씨’ ‘이씨’ 등 성씨로 호칭했다. 일부다처의 상황에서 구분할 필요를 반영한 것이다.

‘묵언의 윤리’에 따라 부모 자식 사이 또는 형제자매 사이의 대화도 활발하지 않았다. 대화를 규정하는 가장 큰 변수는 ‘혈연의 상하관계’였다. 자식은 부모(장인 장모)에게 깍듯한 경어를 썼으며, 부모는 자식에게 평어로 이야기했다. ‘춘향전’에서 퇴기인 월매가 양반집 사위 이몽룡에게 말을 낮춘 걸 보면 그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형제간에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나이를 기준으로, 손위는 손아래에게 하대하고, 반대의 경우에는 경어를 썼다. 동료 사이엔 나이와 상관없이 서로 형님 또는 형이라 칭하면서 상호 존대를 다했다. 모르는 사이에는 신분 또는 나이에 따른 차이가 반영되지만 첫 만남에서는 상호 존대하는 경우가 많았으되, 행색이나 옷차림 등이 영향을 미쳤다.

책은 개화 이후 서구의 영향을 받아 도입된 신문, 잡지, 우편, 전보 등 새로운 미디어들이 영향력을 늘려가면서 사람들의 일상을 바꾸어놓는 과정도 흥미롭게 보여준다. 오늘날에도 그 과정은 진행 중이다. 우리는 더 평등하고 더 자유로운 세상, 누구나 의사를 표현하고 자기 운명을 결정하는 ‘시끄러운’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 책은 어찌 보면 그 불가역성을 알려주는 것도 같다. 348쪽, 2만 원.

장은수 출판평론가·순천향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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