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ifty+ >癌의 고통도 세월의 무게도 벗고… 날다! 제 2인생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인천하나路클럽 회원들이 지난 20일 경기도 안산시 북망산 정상에 올라 패러글라이딩 장비를 앞에 두고 새해 첫 비행의 각오를 다지고 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

인천 패러글라이딩 ‘하늘路클럽’

두 번의 암수술 60대 金씨
“하늘 날때 두려움 극복 희열”

공수부대·클라이밍 출신들
“매번 바람 달라 새로운 도전”

亞게임 국가대표 도전하기도
“딸에게 자랑스러운 아빠 돼”

평균 56세 청춘같은 중년들
“캐노피 달면 새 인생 펼쳐져”

구름을 안고 창공을 나는 현대판 이카로스다. 깃털과 밀랍으로 만든 날개 대신 형형색색의 캐노피(얇은 천으로 만든 날개)를 활짝 펴고 창공을 누비는 패러글라이더. 이들은 신화 속 이카로스처럼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꿈을 이뤘다. 수백 m 산 정상에서 뛰어내리는 ‘두려움’보다 무한의 창공에서 느끼는 절대적 ‘해방감’이 더 크다는 이들 패러글라이더는 전국에서도 그 명성을 익히 알아주는 인천패러글라이딩협회 소속의 ‘하늘路클럽’ 회원들이다. 평균 나이 56세. 총무인 정우철(42) 씨를 제외한 회원 상당수가 인생 2막을 시작하는 50~60대다.

지난 20일 경기 안산시 북망산 정상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패러글라이더들이 하나둘 모였다. 어떻게 알았는지 분명 일기예보에는 미세먼지 ‘나쁨’ 수준이었는데 이들이 나타나자 하늘을 뿌옇게 덮고 있던 미세먼지가 거짓말처럼 가셨다.

“조금만 더 기다립시다. 곧 바람의 방향이 바뀔 것 같으니 각자의 장비들을 챙겨 보세요.”

클럽의 리더이면서 인천협회 회장을 겸하고 있는 김완제(62) 회장이 당장이라도 뛰어내릴 기세의 동료를 붙잡는다. 김 회장은 자신의 덩치만큼이나 커다란 패러글라이딩(패러) 장비를 메고 이날도 가장 먼저 정상에 도착해 있었다.

무동력의 패러를 즐기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높이의 활공장이 필요하다. 주변 장애물이 많지 않은 산 정상이나 구릉지가 패러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보니 보통 15~20㎏ 무게의 장비는 각자가 짊어지고 올라와야 한다. 활공장까지 힘겹게 올라와서도 바람의 방향과 세기가 비행에 적합할 때까지 1~2시간 기다리기 일쑤다.

“어제 부는 바람과 오늘 부는 바람이 다른데, 그 바람을 타야 하는 패러도 늘 새롭지 않을까요.” 김 회장은 패러의 매력을 ‘새로움에 대한 도전’이라고 했다. 15년 경력의 그도 패러는 늘 새롭다. 인라인스케이트로 전국 일주를 하고 산악자전거(MTB) 대회에도 출전했던 그는 패러가 자신과 같은 시니어들이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스포츠라고 권했다. 지난해 자신의 회갑연 때도 평소 가깝게 지내던 초등학교 동창생들을 불러 자신의 2인승 탠덤에 태웠다. 하늘에서만 맛볼 수 있는 황홀한 느낌을 친구들과 나누고 싶어서다.

회원 중에는 패러로 새로운 삶을 사는 이도 있다. 2번의 암 수술을 받고도 거뜬히 하늘을 나는 김문구(61) 씨다. 2004년 암 판정을 받고 위의 3분의 2를 잘라낸 그는 4년 뒤 또다시 췌장암에 걸려 수술을 받았다. 5년 생존율이 5%도 안 된다는 수술을 받고도 그는 버텼다. 죽음에 대한 공포로 정신과 치료까지 받아야 했던 그는 수술 흉터가 채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복대를 차고 비행을 했다. ‘어차피 죽을 목숨, 하고 싶은 것은 다 해 보겠다’는 심사였다.

김 씨는 “하늘을 다시 날았을 때는 마치 ‘천국의 문’에 다다른 것처럼 황홀했다”며 당시의 심경을 전했다. 췌장암 수술 후에도 그는 10년 넘게 남부럽지 않은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 “처음 패러를 배울 때는 무서워 땅에서 발도 떼지 못했어요. 두려움을 극복하고 나서야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었죠.” 그는 암도 두려움을 극복할 때만이 이겨낼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공수부대 출신의 강재일(62) 씨도 이들 클럽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패러 예찬론자 중 한 명이다. “군에서의 낙하산은 패러에 비하면 장난이죠. 전술 낙하는 적의 눈을 피해 그냥 빠르게 낙하하면 그만이지만 패러는 수시로 바뀌는 바람과 기류를 타고 비행을 해야 하거든요.” 이미 수천 번 하늘을 날아 봤지만 그 역시 패러는 늘 새로운 도전이다. 그는 남자로 태어나 꼭 해봐야 할 100가지가 있다면 그중 하나가 패러일 것이라고 했다. 폭 10~15m의 캐노피에 연결된 하네스(harness)에 몸을 싣고 구름 위에 떠 있다 보면 조물주가 만든 경이로운 세상을 혼자서 감상할 수 있는 특권도 누릴 수 있다. 그의 패러에 대한 예찬은 끝날 줄 몰랐다. 마치 군에 다녀온 남자들의 술자리 무용담처럼 그는 패러에 얽힌 추억을 실타래처럼 풀어냈다.

북망산 정상에서 30~40분 시간이 지나자 풍향계의 꼬리가 동쪽을 가리켰다. 맞바람인 서풍이다. 성격 급한 곽승권(60) 씨가 가장 먼저 바람에 부푼 캐노피를 활짝 펼쳤다. 그리고 순식간에 땅을 박차고 상공으로 치솟았다. 곽 씨는 이들과 자매 클럽인 경기 파주시 ‘동서남북클럽’ 소속이다. 하지만 동년배가 많은 하늘路클럽 비행에 자주 참여한다고 했다.

캐노피와 하네스를 연결하는 산줄은 수십 개가 된다. 줄이 꼬이지 않도록 비행 전 일일이 점검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몫이다. “장비는 직접 챙겨도 비행할 때는 동료들과 수시로 무전을 하며 바람의 방향과 기류 등을 챙기죠.” 곽 씨는 소속 클럽은 달라도 나이가 비슷한 동료들과 비행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이어 하늘路클럽의 대표선수 격인 박운용(53) 씨가 비행할 채비를 했다. 박 씨는 올해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대표로 출전할 계획이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패러가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돼 오는 4월 국가대표 선발전이 열린다. 박 씨는 올겨울 회사에 2주간의 휴가를 내고 자비로 대만에서 전지훈련까지 마쳤다. 주말마다 패러를 타는 ‘위클리 패러글라이더’는 전국에 1500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 중 100㎞ 이상 장거리 비행과 500원 동전 크기의 목표 지점에 정확히 내려앉을 수 있는 실력을 가진 아마추어 패러글라이더는 30~40명 안팎이다. 박 씨도 그중 한 명이다. “취미로 시작한 패러에 목표가 생겼네요. 국가대표가 되는 것도 좋겠지만 딸에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고 싶어요.” 그는 국가대표에 도전한 뒤 중학생인 딸과도 사이가 좋아졌다며 활짝 웃었다.

패러 2년 차 심현석(62) 씨는 경험으로 따지면 이들 클럽의 막내다. 지난해 정년 퇴임한 후 마땅한 취미가 없어 패러에 도전했다. 젊어서 빙벽 클라이밍을 즐겨 해온 터라 높은 곳에 대한 두려움은 남보다 덜했다. 선배 패러글라이더들이 서해를 배경으로 하늘을 울긋불긋 수놓을 즈음 심 씨도 자신의 캐노피를 활짝 폈다. 정상에 남아 있던 회원들은 숨죽여 그가 이륙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동료들의 응원 함성과 박수갈채를 받으며 이륙에 성공한 심 씨는 “발아래 펼쳐지는 멋진 풍광도 좋지만 내 힘으로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짜릿한 감동이다”고 말했다. 인생 2막의 시작점에서 새처럼 하늘을 날고 싶은 모든 이의 꿈을 그도 이룬 것이다.

안산=지건태 기자 jus216@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