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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이용식 논설주간 게재 일자 : 2018년 01월 29일(月)
‘말로만 보수’에게 告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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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식 논설주간

정치환경 변화 예상보다 빨라
英·美·獨 오랜 보수정당처럼
역경을 ‘위장된 축복’ 만들 수도

文 진보정책이 보수결집 도와
私黨化 막고 대통합 지향해야
책임·헌신의 풀뿌리 보수 중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의미가 있다. 보수주의 철학의 출발점이다. 인간 사회의 제도와 관습, 조직 등은 오랜 기간 관계자들의 노력과 지혜의 집적물이다. 따라서 결함이 나타나도 문제점만 수리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그렇다고 구체제에 집착하는 것은 아니다. 대의를 위해 필요하면 정반대 선택도 불사한다. 특정 가치를 일관되게 추구하는 진보에 비해 진폭이 훨씬 크다. 이 때문에 보수주의는 이념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200년 역사의 최장수 정당인 영국 보수당은 불리한 줄 알면서도 선거권 확대에 앞장섰고, 지지층 이탈을 감수하며 곡물법 폐지와 노동시간 제한 등을 단행했다. 미국 공화당은 160여 년 전 최대 기득권이었던 노예제에 대한 반대에 뿌리를 두고 있다. 현대 복지제도의 근간인 사회보험을 도입한 사람은 1880년대 프로이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였다. 현재 대표적 보수 지도자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다. 목사의 딸로 태어나 평생 보수주의자로 살고 있지만 과감한 난민 수용, 금융기관 보수 제한, 낙태 합법화, 무상보육, 탈원전 등 진보적 정책까지 받아들여 ‘메르키아벨리’로 불릴 정도다.

헌정 70년, 아직 한국에 진정한 보수정당은 없다. 자유당, 민주공화당, 민주정의당, 민주자유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모두 권력자에 따라 생멸한 기득권 정당이었다. 그나마 초기엔 나라를 세우고 지키고 한강의 기적을 이끌었다는 자부심이라도 있었지만, 1990년대 이후엔 ‘웰빙당’으로 전락했다. 그 결과 국민 신뢰를 잃고 지리멸렬한 상황에 처했다. 자유한국당으로 신장개업했지만 보수층 신뢰 회복조차 역부족이다.

그런데, 예상보다 빨리 외부 환경은 우호적으로 바뀌고 있다. 우선, 보수와 진보의 단층선이 분명해졌다. 문재인 정권의 무리한 적폐청산에다 탈원전, 비정규직 0, 최저임금 등을 놓고 국민 입장이 딱 갈렸다. 대북 유화정책은 ‘평양올림픽’ 논란까지 낳았다. 국민이 유불리를 체감하는 의제들이어서 ‘사람’이 아니라 ‘정책’을 보고 정당을 선택하는 경향이 커질 것이다. 탄핵 사태로 초토화된 보수 입장에선 고무적이다. 여기에다, 보수성향 국민이 행동하기 시작했다. 태극기 집회는 보수주의 운동의 전환점이다. 2030 신세대와 4050 운동권세대의 이념 성향이 분리된 것도 긍정적 요인이다.

객관적 조건이 나아져도 주체적 조건이 준비되지 않으면 기회는 흘러가고 만다. 보수 정치 회생을 위해 당장 필요한 일들이 있다. 첫째, 이념 중심의 정당을 만드는 게 먼저다. 확고한 ‘오너십’이 없는 지금이 기회다. 당 신뢰가 밑바닥인 상황에서 또 특정인 중심의 사당(私黨) 행태를 보이면 6월 지방선거 결과는 뻔하다. 알량한 당권도 선거 직후, 어쩌면 선거 이전에 날아갈 것이다. 둘째, 국가를 올바르게 이끌 대안을 제시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셋째, 보수 대통합을 지향해야 한다. 미국 공화당은 남부와 북부, 도시와 농촌 등 이해관계가 크게 달라 내각제라면 3개로 쪼개질 것이란 말이 있다. 그러나 대통령제에서 분열은 곧 패배이기 때문에 자유 투표를 허용하면서도 뭉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풀뿌리 보수’ 운동과 각성이다. 소수의 행동가가 사재를 털다시피 하며 보수 이념을 전파하고 젊은 보수를 키우고 있지만, 절대다수의 ‘자칭 보수’는 말뿐이다. 끼리끼리 술 마시며 문 정부를 비난하고, 일행 중에 정치인이나 언론인이 있다면 ‘너희들이 잘하라’고 소리친다. 세상에 대한 관심도 끊겠다는 ‘은둔형 보수’도 적지 않다. 많은 부자와 기업인들은 자신의 노력과 공(功)만 앞세우고, 그 토대인 국가와 사회에 감사할 줄 모른다. 골프장이나 헬스클럽을 찾고 해외여행을 즐기면서도 보수 정치인에게 ‘세액 공제받는 10만 원’ 후원도 않는다. 월 1만5000원인 신문 구독도 않으면서 언론에 불평만 쏟아낸다.

영국사에 정통한 박지향 서울대 교수는 보수당 성공 요인으로 5가지를 제시했다. 어떤 경우에도 분열하지 않는 결집력, 이데올로기가 없는 것으로 비칠 정도의 변화 대처 능력, 우수한 국가 경영 능력, 국민 전체를 아우르는 애국 정당, 대중 조직과 적극적 선전이 그것이다. 보수 몰락으로 대한민국에 위기가 닥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지금의 역경을 ‘위장된 축복’으로 만들 궁리를 해야 한다. 시간, 재능, 돈 무엇이든 할애해 책임·헌신·품격 등 보수의 덕목을 실천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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