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앞 점령한 ‘일수 명함’…어릴적부터 ‘세뇌’ 부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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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아이돌 사진 삽입
단속돼도 범칙금 5만원 뿐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을 둔 학부모 윤모(39) 씨는 최근 아들이 일수 광고 명함을 집에 가져다 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윤 씨는 “아들에게 물어보니 ‘돈을 빌려주겠다는 광고인 건 아는데, 명함에 그려진 아이돌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수라 집에 가져왔다’고 대답해 얼른 버리라고 했다”며 “초등학생마저 일수 광고 명함을 들고 다니는 모습을 보니 소름이 끼쳤다”고 말했다.

유흥가 골목을 중심으로 뿌려지던 일수 전단이 이제는 초·중학교 앞까지 번졌다. 지난 26일 서울 마포구와 서대문구 일대 초교 4곳의 교문 앞과 학교 담벼락 곳곳에는 방학 중임에도 불구하고 일수 명함 수십 장이 여기저기 뿌려져 있었다. 인근 학원가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학생들이 눈길을 끄는 일수 명함을 주워 구경하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29일로 다수 초교가 개학함에 따라, 일수 명함 살포는 더욱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초교 주변에 뿌려지는 일수 전단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져 있거나 인기 아이돌 사진이 삽입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어렸을 때부터 일수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일종의 세뇌를 하려는 ‘꼼수’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한 일수 업체 관계자는 “주웠다가 다시 버리더라도 일단 ‘급할 때 돈 빌려줄 곳이 있다’는 것만 알게 만들어 놓으면 나중에라도 찾을 일이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심지홍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가 2015년 3677명을 대상으로 ‘불법 사금융 이용행태’를 조사한 결과, 전단 및 명함 광고(29.8%)를 보고 처음 대출을 시작했다는 사람이 가장 많았다는 통계도 있다.

단속의 어려움과 가벼운 처벌이 ‘일수 광고 천국’을 만들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수 광고는 대부분 대포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전단이나 명함을 살포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전단에 적혀 있는 휴대전화 번호마저 대포폰인 경우가 많아 경찰과 지방자치단체도 단속에 애를 먹고 있는 실정이다. 명함을 살포하는 현장을 운 좋게 적발해도 경범죄 처벌법 위반에 따라 범칙금 5만 원 부과가 고작이다. 일수 명함 살포를 막을 수 없다면 적어도 학교 주변에서 배포를 못 하게 하거나 호감을 느낄 만한 내용의 삽입을 금지하는 등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국장은 “무분별한 대출은 개인의 삶을 통째로 망가트릴 수 있다”며 “친숙한 이미지의 일수 광고에 지속적으로 노출된다면 아이들이 무분별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희권 기자 leeheke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