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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현모의 세종이 펼친 ‘진짜 정치’ 게재 일자 : 2018년 01월 31일(水)
값싼 군량미를 백성들에 차별없이 팔고 싶은데… 세종의 해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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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제천화재, 밀양화재 등 후진국형 사고가 계속되고 있는데, 세종이라면 어떻게 하실까요?”

세종리더십을 강의하는 중에 어떤 분이 던진 질문이다. 잠시 생각 끝에 나는 1431년(세종 재위 13년) 3월에 있었던 실록의 사례를 말씀드렸다. 당시 승지의 보고를 보면, 정부는 화폐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군량미로 보관하고 있던 묵은쌀 3000석을 판매(和賣)했다. 쌀값이 시중 가격보다 훨씬 저렴했기 때문에 백성들이 앞다퉈 사 갔다. 절반이 팔린 상황에서 “힘 있는 자만 쌀을 구입하고 노약자는 종일 기다려도 한 되도 사지 못하고 돌아가곤 한다”는 민원이 제기됐다.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판매량 제한 없이 살 수 있게 하다 보니 관리들에게 연줄이 닿는 힘 있는 자(强有力者)들만 구매 기회를 얻는다는 것이었다.

세종은 여러 승지에게 “어떻게 하면 노약자도 쌀을 살 수 있게 하겠는지 의논해서 아뢰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승지 한 명은 “먼저 쌀을 사려는 사람들의 인원수와 금액을 조사한 다음에, 나머지 쌀 수량을 고루 나눠주자”고 제안했다(제안1). 담당부처로 하여금 판매 가능한 쌀(1500석)을 수요 인원수로 나누어서 일정 가격을 책정해 판매하자는 이 의견은 관리들의 농간 및 관의 힘이 너무 커지는 것을 우려한 세종에 의해 거절당했다.

“2개 장소로 나누어 미곡 40석을 판매하되 한 곳은 남자를, 다른 한 곳은 여자에게 판매하면 강자나 약자가 고루 받게 될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제안2). 이 의견은 성별에 따라 구매 장소를 애초에 다르게 한다는 점에서 관리의 개입 여지를 상대적으로 줄이고, 무엇보다 약자를 배려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또 다른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가난한 백성들은 힘 있는 자들과 달리, 부부 중 어느 한 사람은 자녀돌봄 등 집안일을 해야 한다. 따라서 양쪽에 줄을 설 수 있는 사람들에 비해 기회를 절반밖에 얻을 수 없었다. 제안2는 기회 접근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의도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  박현모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세종의 해법은 무엇인가? “남녀를 구별하지 말고, 다만 세 곳으로 나누어서 한 곳에 각기 미곡 40석을 가지고, 3∼4일 간격으로 하든가, 혹은 10여 일 간격으로 예고 없이 불의에 판매하게 하라”라는 게 세종의 결론이었다. 이 결론을 보면 세종은 우선 남녀를 구별하지 말게 해서 제안2의 문제점을 차단했다. 또한 장소와 판매량을 분산시키되, 예고 없이 판매하게 해서 정보의 독점 문제점을 해소하려 했다. 여기서 핵심이 되는 것은 ‘일정 간격으로 예고 없이 판매하라(不意和賣)’는 대목이다. 백성들의 학습효과를 높이려는 세종의 의도가 반영된 결론이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예고 없이 세 군데로 나뉘어 판매되는 곡식을 찾아 스스로 판단해 움직여야 했다. 그들은 여러 차례 판단하고 움직일 기회를 가졌는데 (1500석이니 최소 12번 이상 기회 발생) 이 과정에서 자기결정력을 높일 수 있었다.

백성들은 또한 화폐를 자주 이용하는 게 유리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화폐의 활용도를 높이려는(爲興用錢文) 정부의 처음 목표 역시 달성됐다. 이 해법은 정부에서 일괄 계산해 나눠주는 것에 비해 백성들에게 피곤한 방법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이 이 해법을 취한 것은 백성들에게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결국 지혜로워지는 길을 열어줄 것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학습이 결여된 사회’라는 데 있다. 중요한 정보와 결정권을 공무원과 정치인들이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은 그저 정부만 탓하고 욕하다가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스스로 생각하고 고쳐가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구경꾼’이기를 멈추고, 공무원과 정치인들을 부리는 ‘주인’의 자리에 설 때 예방적 재난대처 시스템도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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