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카페>‘超국가’ 가상화폐 등장, 주조권 독점한 기존질서에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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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의 글로벌 경제 이야기 - (13) 超연결시대와 세계화

경제의 두 원칙 ‘교환·위계질서’
양극화 심해지며 포퓰리즘 확산

조직은 시장의 유용한 도구지만
엘리트집단에 대한 신뢰는 줄어

정보민주화로 탄생한 가상화폐
글로벌경제 더 진화할지 ‘관심’

# 1
인류학자 D. 그래버는 ‘부채 첫 5000년’에서 경제적 관계는 세 가지 도덕적 원칙에서 이뤄지며 이 원칙은 어느 인간사회나 마찬가지라고 보았다. 그는 세 원칙을 공산주의(Communism), 교환(Exchange) 그리고 위계질서(Hierarchy)라고 정의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공산주의는 사회주의가 아니며 공동체의 개념이다. 사실 이 세 원칙은 단순히 경제적 관계를 넘어서 인간사회를 특징짓는 속성이다. 가슴 뭉클한 사연은 거의 다 첫 번째 원칙에 해당한다. 일본 전철역에서 취객을 구하다 자신을 희생한 고 이수현 씨가 그렇다.

두 번째 원칙은 시장에서 일어나는 거래뿐 아니라 희소성의 원리를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의사결정을 할 때 시간을 절약하고 돈을 낭비하지 않고 부당한 손해를 보지 않으려 노력한다.

세 번째 원칙은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주 겪는 일이다. 사람을 사귈 때 명함을 교환하고, 언제 어느 학교를 졸업했는지 그리고 고향은 어딘지 확인한다. 그리고 얼굴을 익히고 나면 자연스럽게 수평적 또는 수직적 관계가 형성된다.

여기서 두 번째와 세 번째, 즉 교환과 위계질서는 경제학자들이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주제다. 이 둘을 시장과 기업으로 각각 나타낼 때 기업이 어떻게 시장과 공존할 수 있는지를 규명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필요할 때 언제든 시장에서 과장, 부장, 사장을 채용할 수 있다면 기업으로서는 굳이 장기고용계약의 필요성이 없는 것이다.

이들은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를 거래비용에서 찾고 있다. 상황이 불확실하고 복잡할 때 의사결정과정이 불분명하면 유용한 정보의 처리와 원활한 소통에 어려움이 따른다. 이때 기업이라는 위계질서를 가진 조직이 필요하다.

나아가 조직으로서 기업은 주인 대리인 문제를 쉽게 제어할 수 있다. 감시와 갈등해결 메커니즘이 더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뿐 아니라 위계질서 안에서 정보공유와 의사소통이 쉽게 이뤄진다. 요약하면 기업은 시장의 거래비용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지배구조인 것이다. 위계질서는 단지 기업만이 아닌 정부, 대학, 국제기구 등 지배구조를 가진 모든 형태의 조직체가 생겨나게 했다. 국가 주권과 국경을 초월한 자유로운 시장이 공존하는 글로벌경제는 그 진화의 산물이다.

# 2
1980년대 말 사회주의체제 붕괴, 아시아 금융위기에 뒤이은 공동통화 유로화 출범 그리고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등 일련의 과정을 거쳐 세계는 글로벌경제로 통합됐다. 그러나 세계화는 더 이상 진전을 보지 못하고 정체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1980년대 오늘의 글로벌경제를 만들어낸 두 주역이었던 영국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결정했고 미국은 자신이 주도했던 다자간무역협정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폐기했다. 정체된 세계화, 반세계화의 대두는 글로벌경제에 흠이 있으며 제대로 진화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한다.

세계화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는 것은 1995년 창립된 다자간 무역협정기구인 WTO가 단 한 번의 협상라운드도 완결하지 못한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대신 글로벌경제는 양자 간 무역협정을 대안으로 찾았다. 2015년 말 현재 약 420개에 이르는 지역 무역협정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세계화는 고소득국가와 저소득국가 간 경제적 격차를 줄이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동시에 한 나라 안에서 부익부 빈익빈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았으며 언제부턴가 불평등을 상징하는 단어가 됐다. 실제로 2016년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 유거브(YouGov) 여론조사는 세계화가 선(善)을 위한 힘이라고 응답한 영국·미국·프랑스 국민은 50%가 안 되는 부정적인 결과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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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자동화는 선진국의 생산직과 저임금 사무직 일자리를 앗아갔으며 정보통신기술(ICT)에 기반한 기술발전으로 양질의 일자리가 위협받게 됐다. 그 결과 대부분 선진국에서 중간소득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대신 저소득, 고소득 일자리는 늘어났다.

밀려난 다수의 분노는 엘리티즘에서 포퓰리즘으로 정치의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동력이 됐고 선진국 정치지도자들은 대중의 분노를 등에 업고 자유보다는 공정을, 세계화 대신 고립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추구하게 됐다.

인터넷에 대한 비관론은 반세계화의 또 다른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인터넷은 국가기밀과 개인정보를 해킹하고, 사이버 공격으로 네트워크를 파괴하고,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테러단체가 추종자를 모집하고 모의하는 통신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렇듯 남용, 오용되는 인터넷은 오히려 글로벌세계의 질서를 파괴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부정적 효과는 세계화의 핵심요소인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을 주도하는 인터넷을 규제해야 할 당위성을 제공했다. 중국의 방화장성(防火長城·인터넷 접속을 통제하는 방화벽과 만리장성의 합성어), EU의 구글, 페이스북이 구축한 웹 기반 플랫폼에 대한 규제가 그것이다. 국가 안보를 이유로 자유로운 정보의 흐름을 규제하는 움직임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 3
인터넷으로 연결된 네트워크 세계가 이룬 정보민주화는 위계질서를 취약하게 했으며 국가라 해서 예외는 아니다. 그렇다고 정보민주화가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하지도 않았다.

트위터 창업자 E. 윌리엄스는 작년 5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말하고 정보와 아이디어를 교환할 수 있게 될 때 저절로 이 세상은 더 나은 곳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틀렸다”고 고백했다.

윌리엄스는 가짜 또는 쓸모없는 콘텐츠에 짓눌린 세계를 벗어나고 선을 위한 힘이 되는 미디어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기 위해 2012년 온라인 출판 플랫폼인 미디엄(Medium)을 설립했다. 그러나 작년 초 그 회사 직원의 3분의 1을 해고한 것은 높은 이상을 현실에서 구현할 비즈니스 모델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가 행복을 느끼든 불행을 느끼든 이제 인터넷은 우리 삶의 일부가 됐다. 글로벌세계가 네트워크화된 것이다. 정보민주화는 궁극적으로 어떤 함의를 가지는 것일까. 역사학자 N. 퍼거슨은 초연결시대의 도래가 인간사회가 오랜 세월에 걸쳐 구축한 위계질서를 위험에 빠뜨린다고 경고했다.

퍼거슨은 모든 사람과 사물이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세상의 도래가 국가, 종교, 정당, 기업 등 위계질서가 만든 구조물을 쇠퇴시키고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통합이 아닌 분열, 비중개(非仲介)와 분권화가 초연결시대의 질서라는 것이다. 이제 네트워크는 비즈니스뿐 아니라 정치영역에서도 군림하게 됐지만 사람들은 당초 위계질서가 왜 생겨났는지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계질서는 거래비용을 통제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며 그 구조물은 인류 문명이 남긴 위대한 유산인 것이다. 재스민혁명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그러나 그 뒤에 벌어진 불행한 사태는 국가라는 위계질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새삼 일깨워줬다.

문제는 위계질서의 정점에 있는 엘리트들의 지대추구행위가 초연결시대에 들어서도 여전히 만연, 위계질서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게 된 상황에 놓인 것이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작년 ‘침묵을 깬 사람들(The Silence Breakers)’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이들이 촉발한 #미투(#MeToo) 운동은 네트워크화된 대중이 위계질서 안에서 안주하고 즐기는 엘리트의 민낯을 드러낸 상징적인 사건이다.

초연결시대에서 엘리트집단이 스스로 사회에 대한 책무를 다하지 않는 한 엘리티즘은 포퓰리즘으로 대체될 수밖에 없다. ‘헤게모니 이후’(1984) 저자 R. 코헤인은 포퓰리즘의 의미를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외세와 자기 잇속을 챙기는 엘리트들의 공모로 밀려난 “진짜” 사람들이 있다는 믿음’을 결정적인 특징으로 규정했다.

# 4
초연결시대 정보민주화의 믿음에서 창조된 초국가화폐는 주조권(鑄造權)을 독점한 국가라는 위계질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9년 전 처음 세상에 선보인 가상화폐는 현재 그 수가 1500개로 늘어났고 시장가치는 세계 1위 상장사 애플에 근접하고 있다. 일부 사람의 호기심을 끌었던 ICT 기술의 산물인 가상화폐는 이제 인터넷만 연결되면 세계 어디서나 거래 가능한 초국가화폐가 된 것이다.

법화(法貨)가 가치를 가지는 것이 정부의 신뢰에 기반을 두듯이 가상화폐는 네트워크 사용자들의 기술에 대한 신뢰에서 나온다. 지금도 이미 지불수단과 가치저장의 수단이라는 화폐의 핵심기능을 공유하고 있는 마당에 앞으로 가상화폐가 법화와 경합을 벌이는 것은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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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언제든 자신의 수입 이상으로 지출할 수 있는 권능을 가지며 이 권능은 국가가 독점해 온 주조권에서 나온다. 이 독점적 지위는 국가가 돈을 찍어 빚을 청산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으며 그 결과 물가가 상승했다. 물가가 오르는 것은 통화공급증가율이 경제성장률보다 더 높기 때문이다.

그림은 1800년부터 현재까지 영국의 물가지수를 보여준다. 물가는 금본위제도가 안정적으로 유지됐던 1914년 이후 오르다가 1960년대에 급격히 상승했다. 물가는 오르지만 하고 내리는 법이 없다. 왜 물가는 오르기만 하는 것일까. 그것은 해마다 국가가 쓸 돈은 늘어나지만 빌린 빚을 세금을 거두어 모두 갚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국가에 주조권이 없을 때 그 나라 경제에 미치게 될 영향은 공통화폐를 사용하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위기 당시 남유럽 국가에서 그 예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정부가 세금을 더 많이 걷고 지출을 더 많이 줄이는 것 외 재정개혁의 대안이 없을 때 이들 나라 국민은 저성장에 따른 실업, 증세, 복지 축소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만약 자국 통화가 있었더라면 돈을 찍어 재정개혁의 고통을 줄이고 환율절하를 유도해 경제 회복은 더 빨랐을 것이다.

법화가 금(金)이 아니듯 가상화폐도 마찬가지다. 가상화폐에서 내재적 가치를 찾기는 어렵다. 대신 그 가치는 사용자의 편이, 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규제를 회피함으로써 얻는 규제차익과 같은 인위적 가치다. 초국가화폐의 등장은 국가경제를 책임지는 엘리트의 지대추구행위에 대한 경고다. 자본이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규제하는 나라에서 가상화폐가 유용한 규제회피 수단이 될 때 잘못된 정책에 내리는 시장의 형벌은 더 가혹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초연결시대의 도래로 글로벌경제의 두 축이 흔들리는 조짐이 일어나고 있다. 한편으로는 반세계화 그리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권력이 도전을 받게 된 것이다. 글로벌경제가 올바르게 진화할 수 있을지 여부는 초연결시대의 주역인 보통사람들의 집단지성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는지에 달린 문제다.

(문화일보 1월 10일자 28면 12회 참조)
성균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