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여년 國樂 창작과 연주… ‘가야금 名人’ 하늘로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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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창작음악의 1세대’ 황병기 선생 향년 82세

뇌졸중 치료 받고 폐렴 악화로
다양한 장르·예술가들과 교류
현대 국악의 영역 확장에 기여

우리 창작음악의 1세대로 꼽히는 ‘가야금 명인’ 황병기 선생이 31일 오전 3시 15분 쯤 82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유족 등에 따르면 그는 지난해 12월 뇌졸중 치료를 받은 후 합병증으로 폐렴을 앓다가 숨을 거뒀다.

1936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가야금 연주의 독보적 명인으로 60년이 넘게 국악 창작과 연주에 매진했다. 특히 다양한 장르와의 협업을 통해 현대 국악 영역을 넓히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6·25전쟁 중이던 1951년 중학생 시절에 가야금을 접한 후 국립국악원에서 가야금 정악과 산조 등을 배워 경기고 재학생 시절에는 전국 국악 콩쿠르에서 최우수상을 받을 정도로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1950년대에 국악과가 없었던 탓에 대학은 서울대 법학과에 진학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서울대에 국악과가 만들어져 학생들을 가르쳤고, 1974년부터 2001년까지 이화여대 음악대 한국음악과 교수로 재직했다. 1985년에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객원 교수로 강의했다. 대학에서 정년 퇴임한 후로는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아르코 한국창작음악제 추진위원장 등을 맡았고,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을 지냈다.

고인은 연주와 창작 활동도 활발하게 펼쳤다. 1964년 국립국악원의 첫 해외 공연이었던 일본 공연에서 가야금 독주자로 참여했고, 1986년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가야금 독주회를 열어 화제를 뿌렸다. 1990년 평양에서 열린 범민족통일음악회에 초청받아 가야금을 연주했는데, 이때 판문점을 통해 북한을 방문한 첫 한국인으로 기록됐다. 분단의 장벽을 가야금 소리로 뚫은 셈이다. 노년에도 연주 활동을 꾸준히 펼쳤고, 지난해 9월에는 가야금 인생 66주년, 창작 인생 55주년을 기념하는 가곡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대표작으로는 ‘침향무’ ‘비단길’ ‘춘설’ ‘밤의 소리’ 등이 있다. SBS드라마 ‘여인천하’(2001)에서 사용된 가야금 독주곡 ‘정난정’을 작곡하기도 했다.

특히 1975년 명동국립극장에서 초연된 대표작 ‘미궁’은 그의 작품 세계를 잘 드러낸다. 가야금을 첼로 활과 술대(거문고 연주막대) 등으로 두드리듯 연주하며 사람의 웃음소리와 울음소리를 표현하는가 하면 절규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삽입되기도 했다. 이 같은 파격 때문에 초연 당시 한 여성 관객이 무섭다며 소리 지르고 공연장 밖으로 뛰어나가는 해프닝도 있었다. 고인은 현대무용가 홍신자, 첼리스트 장한나, 작곡가 윤이상, 미디어아티스트 백남준 등 다양한 장르, 세대의 예술가들과 활발히 교류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부인은 역시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한말숙(87) 소설가이며 슬하에 2남 2녀를 두고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에 차려졌으며, 발인은 2월 2일, 장지는 용인천주교묘원이다.

인지현 기자 loveofal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