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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오승훈 경제산업부장 게재 일자 : 2018년 01월 31일(水)
혁신과 ‘적폐청산’ 혼용의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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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훈 경제산업부장

정부·대학 경험 金경제부총리
규제개혁 어려움 제대로 짚어
“당신 자식에게 創業 권하겠나”

역대 정부의 캠페인 모두 실패
정치적 오용 여지부터 없애고
사회 총력 발휘할 리더십 절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9일 대한상공회의소 초청 행사에서 인상 깊은 강연을 했다. ‘혁신, 경제를 바꾸는 힘’이 주제였다. 1588년 칼레해전에서 영국이 배와 대포를 개선해 ‘무적함대’ 스페인을 눌렀던 사례에서 새로운 기술을, 로마가 한니발을 이겼던 데서는 포용과 관용을 승리의 조건으로 들었다. ‘남이 하지 않던 방식’이 김 부총리가 주장하는 혁신의 요체였다. 거기서 스마트 팩토리, 자율 주행차, 드론, 지능형 로봇 등 ‘기술’만 나열했다면 그저 그런 이야기로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 그 뒤 얘기가 관심을 끌었다. “과학기술의 혁신, 산업의 혁신, 사람의 혁신이 필요한데 이것만으로도 안 된다. 제도와 인식 혁신까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혁신을 가로막는 교육(사람)과 제도(규제와 노동시장)의 문제를 솔직하게 짚었다. “우리 교육은 동질화된 인력을 길러내는 컨베이어벨트다” “총장을 2년 반 동안 하면서 대학을 바꿔보려 했는데 한계가 있더라” “규제가 만들어지면 이익을 보는 기득권층이 생긴다. 그래서 20년 동안 규제개혁을 했는데 안 됐다” “창업, 창업 하는데 당신 자식에게도 ‘그래, 잘 해봐라’ 하겠느냐.”

하루 뒤 문재인 대통령은 장·차관 워크숍에서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공직사회는 과거에 해왔던 방식을 바꾸는 것을 두려워한다”면서 “혁신의 주체가 되지 못하면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하라”고 작심 발언을 했다. 공직 사회에 경각심을 일깨우려는 뜻으로 보이는데, 정부 출범 이후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었던 혁신이 기대보다 더뎌지는 데 대한 답답한 심경이 읽힌다. 문 대통령의 정부 혁신, 김 부총리의 혁신 성장은 모두 노무현 정부에서도 국정 과제였다. 노 전 대통령은 혁신 관련 회의를 수십 번 열었고, 내용을 정리해 ‘비전 2030 보고서’(2006년)까지 펴냈다. 실무 책임자가 당시 기획예산처 전략기획관이었던 김 부총리였다.

그 시절 공직 사회의 혁신 캠페인도 있었다. 한 정부 기관이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중앙연구원을 비롯한 사학계 학자들을 모아 ‘선조에게서 배우는 혁신 리더십 사례 자료집’을 만들어 배포했다. 그들은 혁신을 이렇게 정의했다. “혁신은 혁명이나 봉기와 같이 종래의 것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타파한 후 새것을 만들자는 변혁적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변화를 부정하고 현재의 것을 존속시키자는 보수적인 것도 아니다. 혁신은 중도(中道)로 현존하는 제도와 틀을 유지하면서도, 그 운영방식을 바꾸어서 목표를 달성하자는 것이다.” 끝없이 바꾸고 뜯어고치는 악순환을 피하면서, “그 체제가 지향하고 있는 이념과 원래의 목표, 약속을 새롭게 되살리자는 것”이 혁신의 의미라는 것이다.

학자들은 이를 구현한 혁신 리더십의 주역으로 조선 시대 태종·세종·영조·정조 등 네 군주와 정도전·이이·유성룡·김육·최명길·채제공·정약용 등 일곱 관료를 꼽았다. 이 가운데 리더십 특징이 ‘비전가’로 분류된 정약용에 대한 평가는 지금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하급관리 부패가 만연한 조선 후기, 정약용은 문벌과 연고를 우선한 관리 선발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7개 항목의 인사고과 실시와 수령의 임기보장을 주장했다. 관료 시스템의 개혁을 제시한 것인데, 후학들은 “현실을 반영한 실천적이고 점진적인 개혁안과 구체적 방안을 제시했다”고 혁신가의 중요 덕목으로 의미를 부여했다. 제도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인사 탕평의 개혁정치를 추진한 영조, “백성의 삶을 즐겁게 하는 것이 정치의 목표”라며 임진왜란 후 피폐해진 민생과 국가재정의 복구를 위해 조세제도를 개혁한 김육에 대해서도 “현대의 리더십으로 평가해도 손색이 없다”고 평했다.

역대 정부마다 혁신이 화두가 아니었던 적이 없다. 성공했다고 평가받은 정부도 없다. 국민 설득에 실패했거나, 실천력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혁신 리더십은 변화에 소극적인 사회를 독려하면서, 새 기반을 다지고 사회 총력을 발휘하게 하는 힘이다. 문 대통령의 답답함과 김 부총리의 고민도 거기서 비롯되는 것일 게다. 혁신이 구호나 수사로 치부되는 순간, 해보나 마나다. 실체 있는 혁신이 되려면 먼저 경과를 냉철히 따져보는 게 순서다. 혁명이나 변혁을 혁신과 구분하지 않은 건 아닌지, 그걸 적폐청산과 같은 단어로 모호하게 포장한 건 아닌지, 혁신을 오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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