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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이도운 논설위원 게재 일자 : 2018년 02월 02일(金)
‘민족끼리’는 해결책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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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운 논설위원

민족이나 친구도 敵 될 수 있어
운명 바꾸는 것은 이념과 체제
金 일가, 민족 거론 자격 없어

남과 북, 다른 時空間에 살고
北권력은 ‘김일성민족’ 주장
안보·경제, 한반도 밖서 결정


북한은 우리 민족이다. 북한도 우리를 같은 민족으로 생각한다. 그러니까, ‘우리 민족끼리’ 손잡고 잘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참 단순한 논리다. 쉽긴 하다. 그러나 현실은 논리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렵다. 문재인 정권은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와 남북 단일팀 구성을 우리 국민이 박수 치며 환영할 것으로 기대했다. 현실은 딴판이다. 왜 그럴까? ‘네’가 생각하는 민족과 ‘내’가 느끼는 민족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1994년 3월 16일 오전 10시, 북한 사람을 처음 만났다. 시베리아 한복판에서 만난 북한 공안요원 세 명. 그들은 벌목장을 취재하려는 나를 위협했고, 나는 러시아 경찰의 보호를 받았다. 다음 날 만난 벌목공들. 영하 20도에 양말도 없이 다 떨어진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공안요원도 벌목공도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었다. 심장이 차가워졌다. 당시 시베리아의 크고 작은 시장에서는 빨간 야채를 파는 둥근 얼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카레이스키 5세들. 소금에 절인 양배추에 고춧가루를 뿌려 김치라고 팔았다. 한국말은 못하지만 반갑게 웃어줬다. 핏줄이 뜨거워졌다. 민족은 적이 될 수도, 친구가 될 수도 있는 존재다.

나와 공안요원, 벌목공, 카레이스키의 운명을 누가 바꿔놓았을까. 이념과 체제다. 워싱턴 특파원 시절 미 국무부와 국방부의 한국 담당 부서를 방문할 때마다 보던 사진이 있다. 한반도의 밤을 찍은 위성 사진. 환한 한국과 깜깜한 북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선택한 대한민국은 G20으로 우뚝 섰고, 공산주의 세습 독재가 통치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최빈국·최악 인권국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두 체제에서 튕겨 나간 코리안들은 악착같이 살아남았다. 최근 국회의 개헌 논의 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훼손하려는 시도가 있다. 민족의 이름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민족을 입에 담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일가와 그 추종 세력이다. 김일성은 동족상잔의 6·25전쟁을 일으켰고, 김정일은 주민 수백만 명이 굶어 죽게 만들었으며, 김정은은 무자비한 형제·일가 숙청으로 전 세계의 혐오 대상이 됐다. 그들은 핵과 미사일로 ‘민족’은 물론 지구촌 전체를 협박하고 있다. 남과 북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외국인에게 코리안은 괴팍하고 위험한 악당이 되어버렸다. 원래 공산주의는 민족과 국가를 부정한다. 역사의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무산됐지만,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한 전 세계 공산화가 목표였다.

우리는 스스로를 ‘한(韓)민족’이라 부르지만, 북한 정권은 자기들을 ‘김일성 민족’이라고 칭한다. 김일성 민족은 한반도 북쪽에 갇혀 있다. 우리 ‘한민족’은 한반도 북쪽을 제외한 전 세계를 무대로 살아간다. 민족이란 인종·언어·역사·지역·문화 등을 공유하는 집단이다. 성인 남자 평균 키가 15㎝나 차이 나고,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은 용어도 통하지 않는다. 우리 헌법은 통일을 지향하지만, 국제법적으로 남과 북은 두 나라다. 두 나라의 국민은 다른 시공간에 살고 있다. 점점 더 달라져 간다. 공동체라는 연대의식은 퇴화됐다.

그렇다면, 남과 북 공동의 미래는 없는 것일까. ‘우리의 소원’을 합창하고, ‘우리 민족끼리’를 외치는 정서적, 명분론적 통일론에는 미래가 없다. 맹자(孟자)는 “왜 하필 이익을 말하는가. 오직 인의가 있을 뿐이다.(何必曰利 亦有仁義而已矣)”라고 일갈했다. 맹자 시절 얘기일 뿐이다. 21세기는 “나에게 어떤 이익이 있는가(What’s in it for me?)”를 묻는다. 2003년 7월 금강산에서 만난 북한 기자는 “곧 서울에 가니, 휴대전화를 사달라”고 부탁했다. 2014년 10월 20일, 워싱턴에서 리처드 루거 전 상원 외교위원장·도널드 맨줄로 전 하원 외교위 아태소위원장과 오찬을 함께 했는데, 대화 주제는 북한 희토류 개발이었다. 정구현 자유기업원 이사장은 “남북이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다면, 그것이 곧 통일”이라고 했다. 돈은 피보다 진하다.

평창에 오는 북한 선수들을 반겨줘야 한다. 현송월이 이끄는 북 예술단 공연에도 박수를 보내주자. 그래서 남과 북이 같은 민족이라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없다. ‘우리 민족끼리’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안보도, 경제도 한반도 안이 아니라 밖에서 결정된다. 민족은 해결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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