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마차(일자리)를 말(성장) 앞에 둘 수 없다’는 親盧 경제학자의 苦言

국내 경제학자들이 1년에 한 번 총출동하는 ‘경제학 공동 학술대회’가 1일 열렸다. 이번 ‘2018 대회’에서는 정부 비판에 신중한 경제학자들은 물론 노무현 정부 참여 인사들까지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에 우려를 쏟아냈다. 발언에 나선 대다수의 학자는 성장이 빠진 일자리 정책, 생산성 고민 없는 선심정책, 규제 위주의 반(反)시장 정책은 본말(本末)도, 선후(先後)도 뒤집은 것이라는 취지로 비판을 쏟아냈다. 방향과 방법 모두 잘못이거나, 방향은 그렇다 치더라도 적어도 방법엔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 많았는데, 목소리를 높였다가 스스로 사과하는 진풍경까지 벌어졌다.

조장옥 서강대 명예교수가 주제발표에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재판(再版)을 경고한 것은 총론 격이다. 그는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이 자본 생산성을 갉아먹을 수 있는데도 1990년대 일본처럼 무분별하게 시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2년 이후 제조업 생산성이 빠르게 하락 중인데 노동투입량까지 줄면 장기 침체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특히, “모든 경제문제를 정부의 시장 개입과 규제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안이한 인식이 문제”라며 ‘경제 적폐’라는 표현까지 동원했다.

경제학계 원로인 표학길 서울대 명예교수는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이 나라 안 분배에만 치중하느라 자본 축적과 창출을 등한시하면 중장기 성장 제고에 치명적”이라고 우려했다. 미국 등 주요 나라는 총자본 축적을 위해 법인세와 소비세를 인하하고 있는데 한국만 동떨어진 정책을 펴고 있다는 비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법인세 최고세율을 35%에서 21%로 내리는 파격 감세를 단행한 후 기업의 투자·고용이 이어지고, 글로벌 자본도 미국행 대열에 속속 합류하는 중이다.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사실상 분배정책은 성장엔진을 꺼뜨리거나 해외로 떠밀 뿐이다.

이런 모순을 가장 명쾌하게 지적한 이가 노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다. 그는 “일자리라는 마차는 경제성장이라는 말이 끄는 결과이기 때문에 마차를 말 앞에 둘 수 없다”고 했다. 민간 기업이 일자리를 만든다는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를 외면하고 세금을 퍼붓는 정책에 대한 친노(親盧) 학자의 고언(苦言)이다. 최저임금 인상을 위해 3조 원 기금을 지원하는 데 대해선 “틀렸다”고 직설법을 동원했다. 문 대통령이 의장인 ‘국민경제자문회의’의 거시경제분과 의장인 주상영 건국대 교수도 급속한 최저임금 1만 원이 가져올 충격을 걱정했다.

정부 경제정책을 두고 주류 경제학자들이 성향을 떠나 한목소리로 비판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정책 수립은 전문적 경제 관료에 맡겨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주요 정책들이 주무 장관보다 청와대 참모진 손에 좌지우지되면서 김동연 경제부총리마저 여러 차례 말을 바꾸는 지경에 이르렀다. 경제논리보다 정치·사회 논리에 휘둘린 정책은 시장의 역풍을 부른다. 말과 마차 이전에 마부(馬夫)의 문제다. 이념적 도그마에 빠져 반(反)시장 정책을 남발해온 문 정부는 이제라도 경제학계 경고를 새겨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