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자메뉴판 있어도… 안내 안하는 식당 태반

시각장애인 음식 주문 낭패
“주인·점원이 먼저 배려해야”

서울 강남구 개포동 소재 한 사회적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시각장애인 김모(여·29) 씨는 지난달 25일 점심을 먹기 위해 비장애인 동료들과 점자메뉴판을 갖추고 있다고 알려진 식당에 갔다. 하지만 점원은 일반메뉴판만 줬을 뿐, 점자메뉴판에 대해서는 안내조차 해주지 않았다. 김 씨가 점자메뉴판이 있지 않냐고 물어보자 점원은 그제야 시각장애인용 메뉴판을 가져다줬다.

김 씨는 5일 “나는 점자메뉴판이 준비돼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갔으니까 메뉴판을 달라고 해서 주문할 수 있었지만, 사전 정보가 없는 시각장애인이었다면 음식 주문에서부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며 “식당 측에서 먼저 적극적으로 점자메뉴판이 필요한지 물어보고 안내해준다면 시각장애인의 선택 폭이 훨씬 넓어질 수 있다”고 아쉬워했다.

점자메뉴판을 갖춘 식당 자체가 드물다. 그나마 점자메뉴판이 마련돼 있는 음식점에서조차 이용하기 어렵다면 시각장애인들에게 큰 손해일 수밖에 없다. 점원에게 메뉴를 읽어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미안한데, 매번 이 음식은 얼마냐고 물어볼 수는 없기에 값을 모르고 주문했다가 예상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지불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시각장애인들은 점자메뉴판이 없는 식당에 가게 되면 비장애인 동료나 점원에게 메뉴를 하나하나 읽어달라고 부탁해야만 한다. 메뉴 종류가 다양할 경우 앞에 읽어줬던 내용을 잊어버릴 때가 많지만, 다시 물어보기가 미안해서 그냥 기억나는 몇 개의 메뉴 중에 고르는 일이 잦다. 게다가 점원이 메뉴를 읽어줄 때는 보통 음식 이름만 말해주지, 가격까지 읽어주진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김효식 하상복지관 관장은 식당 주인들을 만나 개별적으로 점자메뉴판의 중요성을 설득하고 있다. 김 관장은 “식당이 시각장애인들을 차별하려거나 메뉴판을 의도적으로 숨기려는 게 아니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라며 “필요하냐고 묻는 게 실례가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점자메뉴판은 시각장애인에게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지혜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점자메뉴판 보급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도 알려줘야 효율적”이라며 “장애인식개선센터를 지역 밀착형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확충하거나 지역복지관을 통해 캠페인 등을 벌이는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작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명진 기자 jinieyo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