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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김효정의 에로틱 시네마 게재 일자 : 2018년 02월 06일(火)
몸이 원하는 관계와 마음이 원하는 관계… 다르지만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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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의 발견

지난 2002년 개봉한 영화 ‘생활의 발견’(사진)은 홍상수 감독의 네 번째 연출작이다. 오래된 작품이지만 다시 꺼내 보니 제목이 새롭다. 생활의 발견이라니…. 무색무취의 공기처럼 일상을 휘감고 있는 생활을 ‘발견’할 수 있는 걸까. 이 영화는 그렇게 생활을 발견하는 주인공 경수(김상경)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우리 모두의 그것이기도 하다.

연극배우 경수는 기다리던 배역에서 퇴짜를 맞고 영화사에서 뜯어낸 100만 원을 챙겨 춘천으로 떠난다. 그곳에 사는 선배를 통해 무용학원 강사 명숙(예지원)을 만나게 된 경수는 셋이 술을 마신 후 명숙과 잠자리를 갖는다. 선배가 짝사랑하는 여자지만 명숙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것이다. 한 번의 잠자리 후 명숙은 경수에게 집착하기 시작한다. 사랑한다는 말을 해 달라는 명숙을 경수는 단호하게 거절한다.

경수의 다음 에피소드는 부산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전개된다. 그는 옆자리에 앉은 선영(추상미)에게 반한다. 경수를 단박에 알아보고 그의 작품을 기억해 주는 이 여자가 별 볼 일 없는 배우에게는 구원이자 사랑인 것이다. 경수는 결국 선영의 고향인 경주에서 내려 무작정 선영을 찾아내는 데 성공한다. 선영은 유부녀지만 집요한 경수의 구애에 넘어가고, 둘은 역시 술자리 후 관계를 한다. 다음 날, 경수는 또다시 선영을 설득해 여관으로 향했지만 잠자리에는 실패한다. 집에서 돈을 좀 가지고 나오겠다던 선영은 경수를 밖에 세워놓고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경수는 며칠 만에 두 여자를 만나 두 종류의 관계를 갖는다. 첫 번째 관계는 몸이 원했고, 두 번째는 마음이 원했다. 표면적으로는 상반된 것 같지만 결국은 같은 본질을 공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술김에 자게 된 명숙은 경수를 배웅하고 몸도 마음도 주었지만 경수에게 외면당했고, 경수가 운명적 사랑이라고 착각했던 선영은 그를 외면했다. 남은 것도 빼앗긴 것도 없이 서로가 나눈 것은 공허한 섹스뿐이다.
▲  김효정 영화평론가


이렇든 저렇든 결국은 반복되는 ‘생활’이라는 것을 홍 감독은 섹스신을 통해 말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경수가 명숙, 선영과 나눈 각각의 섹스는 그의 사랑 유무와 상관없이 비슷하다. 각 에피소드에서 침대 위의 남녀는 체위도, 나누는 말도 별반 다르지 않다. 심지어 명숙과 선영은 머리끈을 풀어 침대 시트 위에 올려놓는 것까지 똑같다. 경수 또한 그의 위치, 대사 등 대부분이 과거에 했던 일상적 행위이고 앞으로 일어날 일의 예정된 ‘반복’인 것이다.

경수의 며칠, 혹은 그가 거친 몇 차례의 섹스를 통해 관객이 목도하는 것은 ‘인간의 생활’이고 우리 모두의 생활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지리멸렬한 일상에서 조우하는 존재들과 무언가 다른 비(非)일상적인 것을 꿈꾸지만 그들과 가는 장소도, 하는 일도 지극히 일상적인 생활의 한 부분을 만들어낸다.

영화에서 경수의 주변인들이 ‘인간’에 대해 끊임없이 언급하는 것도 이런 점과 맞닿아 있다. 경수가 서울에 있을 때 영화사에서 만난 선배는 “인간이 되기 힘들지만 괴물이 되진 말자”고 말하며 출연도 하지 않은 영화로 돈을 받아가는 경수에게 쏘아붙인다. 춘천 에피소드에서는 짝사랑하는 여자와 자서 미안하지만 화내지 말라는 경수에게 선배가 “사람에게서 사람 이상의 것을 요구하지 말라”는 말을 남긴다. 영화에서 재현되는 인간, 사람 혹은 생활은 궁극적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관통한다. ‘사람답다’라는 기준이 어찌 됐든 간에,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우리 모두는 괴물이 되고 그것이 사실상 우리 생활의 본질인 것이다. 경수가 돈과 여자를 위해 그랬듯 말이다. 생활을 발견해보면 그토록 치졸하고 유치한 순간들이 빼곡하다.

참으로 우울하고 지긋지긋한 영화지만 다시 찾는 것은 아마도 인정하기 싫은 기시감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지독하지만 그럼에도 필연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영화의 발견이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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