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무리한 起訴와 ‘1심 여론裁判’ 바로잡은 이재용 2審

국정농단 사건의 본질이 ‘정경유착’이라고 봤던 특검 기소(起訴) 및 1심(審) 판결의 얼개는, 2심 재판부가 ‘전형적 정경유착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고 정반대로 판단하면서 완전히 깨졌다. 최순실 씨 등의 불법적 국정 개입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분노에 휘둘렸던 사법 판단이 이제야 냉철해졌다는 점에서 늦었지만 다행한 일이다. 중대한 형사사건임에도 직접적 증거는 거의 없는 상태에서 ‘묵시적 청탁’ ‘수동적 뇌물’ 등의 애매한 개념으로 처벌하는 것은 법정증거주의와 죄형 법정주의에 어긋난 ‘여론재판(裁判)’이란 견해가 법조계에 우세하기 때문이다.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는 5일 판결문에서 “이 사건은 박 전 대통령이 삼성그룹 경영진을 겁박하고 최순실 씨가 그릇된 모성애로 사익을 추구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1심 재판부는, 이재용 삼성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작업이 존재했고,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명시적(직접적)으로 청탁한 적은 없지만 ‘묵시적(默示的) 청탁’은 있었다는 특검 주장을 받아들였었다. 그런데 2심은 정반대 판단을 했다. 1심 논거대로라면 서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이심전심으로 금품을 주고받았다는 것인데 ‘합리적인 의심을 넘는 정도’로 유죄가 입증되지 못할 땐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는 형사법 원칙을 일탈했다는 지적도 받았다.

이에 따라 2심 재판부는 5개 주요 혐의 중 정유라 씨 승마지원 명목으로 36억 원 가량의 뇌물을 준 것만 유죄로 인정하고 핵심적인 혐의를 무죄로 판단,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해 353일 만에 석방했다. 아직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남아 있지만, 이번 항소심 결과는 형사재판에서 견지해야 할 철저한 증거주의와 합리적 법리(法理) 적용이었다는 평가를 할 만하다. 다만, 2심 재판부의 판단대로라면, 36억 원 부분도 뇌물로 보기 어렵다. 대통령의 막강한 권력 앞에서 현직 대통령의 지원 요구를 묵살할 수 없었다고 보는 게 상식이고 현실이다. 이 사건을 처음 수사한 검찰도 당초 미르·K스포츠 재단에 대한 기업의 지원을 강요에 의한 것으로 봤지만, 특검으로 넘어가면서 프레임이 바뀌었다.

상고심에서도 격렬한 법리 논쟁이 예상된다. ‘재판은 곧 정치’라는 코드 판사들이 설치는 상황이다. 대법원이 그런 분위기에 휘둘려 사법 오류를 저지르는 일이 없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