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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His Story 게재 일자 : 2018년 02월 07일(水)
“퇴근 못하고 있다 받은 ‘박종철 보고서’… 역사의 天運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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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1987’에서 배우 하정우가 연기한 ‘최 검사’의 실제 모델인 최환 변호사가 지난 2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 인근 공원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를 설명하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영화 ‘1987’ 실제모델 최환 변호사

“당시엔 변사 사건 발생해도
검사에 보고않고 의문사처리

‘학생이 쇼크사로 죽었으니
오늘밤에 火葬하도록 해달라’
경찰 요구에도 시신보존 명령

靑·안기부 등 외압 있었지만
사인 밝히려 부검 진두지휘”

“운동권 잡은 공안검사 비판
안보위협 상황이라 불가피

‘황장엽 망명정부 수반 만들자’
YS에 직언했다가 눈밖에 나
그때 美 못보낸게 지금도 恨

‘역사에 죄 짓지 말자’신조
6월항쟁·촛불집회 나가기도”


1987년, 대한민국 역사의 물길을 바꾼 동력은 수많은 양심의 실타래에서 나왔다. 스물두 살 대학생 박종철 씨의 죽음 앞에서 단 한 명이라도 ‘그날의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우리가 사는 이곳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 물꼬를 튼 양심은 최환(75·사법시험 6회) 변호사에게서 비롯됐다. 상명하복의 검사동일체 원칙이 서릿발처럼 살아 있던 군부 독재 시절, 최 변호사는 서울지검 공안부장검사였다. 그는 경찰로부터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변사 사건 발생보고서를 받았지만, 순순히 결재하기를 거부했다. 시신보존을 명한 뒤 부검을 이끌었다. 그때의 긴박했던 순간들을 기록한 영화 ‘1987’의 카피처럼, 그날 그의 선택은 세상을 바꿨다.

“그날 밤 제가 퇴근을 못하고 사무실에 남아 있던 건 역사의 천운(天運)이었습니다. 비록 박 군의 육신은 영혼을 잃은 채로 제게 찾아왔지만, 박종철이라는 이름 석 자에만은 ‘민주화 투쟁의 상징적인 영웅’의 영혼을 불어넣고 싶었습니다.”

지난 2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최환법률사무소에서 만난 최 변호사는 31년 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밝혀낸 당시를 격정적 어조로 설명했다. 그는 민주화 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다룬 영화 ‘1987’에서 배우 하정우가 열연한 ‘최 검사’의 실제 모델이다. 서울지검장 등 검찰 고위직을 역임한 그는 간판도 내걸지 않은 8평(약 26㎡) 남짓한 사무실에서 직원 한 명과 일하고 있다. 최 변호사의 방에는 30여 년 전 신문, 책 등 여러 자료가 어지러이 펼쳐져 있었다. 그는 “이르면 올해 안으로 자서전을 출간하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이에 영화가 먼저 개봉해버렸네요”라며 수줍게 웃었다.

최 변호사는 “1980년대는 경찰 고문으로 사망한 사람이 많았던 시기인데, 대부분 검사한테까지 변사체 발생 사실을 보고하지 않고 경찰 자체적으로 의문사로 처리하는 게 관행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그날은 뭔가 달랐다. 박종철 변사 소식을 처음 접한 ‘그날’이다. “박 군이 서울대생이기도 하고, (박 군의 시신을 대공수사단 취조실에서 처음 검안한) 오연상 당시 중앙대부속용산병원 내과전문의 등 보는 눈이 많았던 터라 경찰도 (어쩔 수 없이) 검찰로 보고서를 들고 왔던 것 같다”고 최 변호사는 당시를 떠올렸다.

1987년 1월 14일 당직 검사가 퇴근한 뒤인 오후 7시 40분쯤이었다. 치안본부 대공수사관 2명이 서울지검으로 찾아와 A4용지 2쪽짜리 변사 발생 보고서를 내밀었다. 그리고 “수사하던 중에 학생 한 명이 쇼크사로 죽었다. 유족들하고도 합의가 됐으니, 오늘 밤 안에 화장하도록 지휘해 달라”고 했다. 최 변호사는 “딴에는 마침 자신들과 많이 협업해온 공안통 검사, 그것도 공안부장이 사무실에 남아 있다고 하니 순조롭게 일이 풀릴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라고 상황을 해석했다. 최 변호사 생각은 달랐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적힌 보고서를 딱 읽는 순간 ‘고문이다’란 직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외로운 싸움이 시작됐다. 당장 당일 찾아온 수사관들이 사무실 안팎을 들락거리며 실시간으로 상부에 보고했다. 2시간 넘게 최 변호사를 붙들고 늘어졌다. 최 변호사는 “검찰총장, 검사장 등 검찰 윗선에서 압박 전화를 걸어왔다”면서 “끝내 결재를 거부하고 시신보존 명령을 내린 뒤 퇴근해서는 동생 집으로 피신했다. 정말 긴 밤이었다”고 회상했다. 이후 청와대나 장세동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장(현 국가정보원장)·강민창 당시 치안본부장(현 경찰청장) 등도 ‘각하의 관심 사안’이라며 외압을 넣었다. 이에 굴하지 않은 최 변호사는 박 군의 사인을 밝히는 부검까지 진두지휘했다. 영원히 은폐될 뻔한 ‘박종철 물고문 치사 사건’은 그렇게 세상에 알려졌다.

최 변호사가 당시 청와대와 권력의 온갖 압박을 물리치고 소신을 밀어붙일 수 있었던 힘은 그의 설명대로 “박종철 이름 석 자에 민주화의 영혼을 불어넣고자 했던 희망”에서 나왔다. 그는 “이전에도 김근태 고문 사건(1985년)·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1986년) 등 수많은 고문 사건을 전해 들으며, 국민 생명권 보호를 제1과제로 내세워야 하는 국가가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특히 인권 보호와 정의를 선서하던 검사 임관 당시를 떠올리며 ‘고문 추방’의 기회를 엿보던 차에 마침 박 군의 변사체를 접하게 됐다”고도 설명했다.

그는 무엇보다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박 군 부모의 마음을 생각하면 (시신보존 명령은) 절대 물러서서는 안 될 결정이었다”면서 “당시 저를 찾아왔던 수사관들에게도 ‘당신들도 아버지가 아니냐. 이래서는 안 된다’며 설득했었다”고 회상했다.

일각에서는 검사 생활 대부분을 공안사범 수사에 쏟은 최 변호사의 과거 행적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386세대’ 운동권 학생들을 잡아넣은 ‘주범’인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밝힌 ‘주역’으로만 치장됐다”는 지적이다. 최 변호사는 이에 대해 공안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사회불안 요소들을 관리·수사해야 하는 책임을 진 당사자가 공안검사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최 변호사는 “이는 특히 국가안보가 위협을 받는 당시 상황에서는 더욱 불가피한 업무였다”고 답했다.

최 변호사는 “제게 수사를 받았던 운동권 학생들에게도 늘 ‘현실 불만이 있으면 제도권 안에서 개혁하라’고 조언했다”고 말했다. 또 “저도 정치학도로서 필요할 때는 데모를 했고 데모가 끝난 후에는 사시 공부를 해서 검사가 돼 제 뜻을 펼치고 있다는 얘기를 들려주기도 했다”고도 했다. 최 변호사는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왔다.

그는 또 “제가 담당했던 학생들에게는 수사·구속·기소 등 절차마다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는 다 해줬고, 실제 나중에 대부분 풀려났다”고 떠올렸다. 1시간가량 인터뷰를 이어가던 최 변호사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한편에 보관돼 있던 팸플릿을 꺼내 보여줬다. “2014년쯤인가요. 예전에 제가 수사했던 운동권 학생 중 한 명이 제 사무실로 찾아와서는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등을 떨쳐내고 현실 정치를 펼치겠다’며 전향서 같은 걸 주고 갔습니다.” 그가 건넨 팸플릿에는 고려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이종철 청년지식인포럼 대표(현 바른정당 대변인)가 ‘통합진보당이 해산돼야 할 3가지 이유’를 설명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최 변호사는 “그 당시 제가 입버릇처럼 한 말이 ‘우격다짐과 완력을 동원해 아스팔트에 드러눕는 방법으로만 세상을 바꾸려 하지 말라’ ‘20년, 30년 후에 장차관이나 대통령이 돼서 세상을 바꿀 기회를 잡는 당신들의 모습을 그려 보라’는 거였는데, 이렇게 제 뜻을 알아준 친구도 많다”고 거듭 강조했다.

1987년 이후 최 변호사는 롤러코스터 삶을 살았다. 당시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촉발시켰던 일등공신이었던 그가 노태우 정권에서 겪게 되는 한동안의 시련은 예고된 셈이었다. 그해 말 맡았던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범’ 김현희 씨 사건과 관련, 최 변호사는 “12월에 열릴 13대 대선을 앞두고 노태우 당시 후보의 북풍 공작이라는 의혹이 일었지만, 부하 검사들과 끈질긴 노력 끝에 김 씨로부터 ‘김정일의 친필 지령을 받았고, 88 서울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함이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고 말했다. 그러나 새로 당선된 노태우 전 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최 변호사를 곱게 보지 않았다. 그는 “한 5년간 온갖 눈총을 받으며 대구지검·서울지검 남부지청 차장검사 등을 전전했다”고 회상했다.

이후 ‘백락일고(伯樂一顧·인재를 잘 알아보는 이)’처럼 그에게 뜻하지 않은 조력자가 찾아온 건 1990년대 들어서였다. 1993년 문민정부를 출범시킨 김영삼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서석재 전 총무처 장관 눈에 띈 게 계기였다. 최 변호사는 “김 전 대통령이 군부 유산을 확실히 뿌리 뽑는 ‘역사 바로 세우기’를 하고 싶은데 그 적임자를 고민하던 차에 서 전 장관이 저를 추천해줬다고 한다”면서 “제가 검찰 내에서 소신 있게 반기를 들어 박 군 고문치사 사실을 알렸다는 걸 좋게 봤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1995년 서울지검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그는 5·18특별수사본부장을 맡았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내란 및 뇌물수수 사건을 지휘해 구속기소했다. 최 변호사는 “그때까지만 해도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논리가 통용되던 시절이었는데, 제가 검사장으로서 처음으로 성공한 쿠데타를 단죄했다”고 강조했다.

이를 두고 그를 윤석열 현 서울중앙지검장과 비교하는 분석도 많다. 윤 지검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를 이끌어 정권의 눈 밖에 났다가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돼 이른바 ‘적폐 수사’를 진두지휘하는 모습과 겹쳐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최 변호사는 “윤 지검장이 전직 대통령들 수사를 외롭게 이끄는 모습에서 (1995년 당시의) 나를 떠올리곤 한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과 마냥 좋은 인연으로만 남은 것은 아니다. 최 변호사는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수사하며 드러난 통치자금 수천억 원의 행방을 끝까지 추적해 정치권에서 어떻게 나누어졌는지 밝혀내고 싶었지만, 이게 또 당시 정치권의 불쏘시개가 될까봐 그랬는지 ‘이쯤에서 그만하라’는 전언을 받았다”고 말했다. 통치자금 추적 시도 만류가 김 전 대통령 측의 1차 경고였다면, 두 번째 마찰은 북한 김정일의 가정교사였던 주체사상 1인자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망명 사건에서 비롯됐다. 황 전 비서는 1997년 4월 극비리 작전을 통해 대한민국 땅을 밟았다. 최 변호사는 “당시 저는 서 전 장관을 통해 김 전 대통령에게 ‘황장엽을 미국으로 보내 북한 망명정부 수반으로 만들면, 우리나라는 이제 더 이상 전쟁 걱정 없이 살게 된다’는 직언을 전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 변호사의 설명대로 “결국 이 같은 조언은 임기 말 남북회담 성사에 여념이 없던 김 전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린 꼴”이 됐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이 ‘투 코리아는 안 돼’라며 단박에 거절했다고 하더라”면서 “지금도 그때 황장엽을 바로 미국으로 보내지 못한 게 천추의 한으로 남는다”고 회상했다. 그는 “어찌 됐든 김 전 대통령은 저를 알아봐 준 분이었다”며 “올해 1월 처음으로 그분의 묘소를 찾아 참배하고 용서를 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 집권 이후에는 ‘호남 인맥에 밀려 검찰에서는 더 이상 커나갈 수 없겠구나’ 싶어 1999년 검사 옷을 벗었다고 한다. 최 변호사는 충북 영동 출신이다.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은 하지 않는다.’

검사 시절부터 현재까지 변하지 않는 최 변호사의 신조다. 그는 “1987년 민주화 항쟁 때는 공안부장검사로서 광장을 찾았고,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때는 일반 시민으로서 집회에 참여했다”면서 “30년의 세월을 뛰어넘었지만 1987년과 2017년 모두 국민의 분노가 원동력이 돼 각각 개헌과 민주화를, 그리고 헌정사상 첫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 냈다”고 평가했다. “검찰 후배들과 일반 국민 모두 ‘역사에 죄를 짓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한국은 더욱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입니다.” 최 변호사의 당부다.

김리안 기자 knr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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