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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현모의 세종이 펼친 ‘진짜 정치’ 게재 일자 : 2018년 02월 07일(水)
‘信賞必罰’ 원칙 하나로 국가紀綱 바로 세운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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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초반부, 즉 임진왜란 직전이 지금과 어쩌면 이렇게 비슷할까?

요즘 ‘선조실록’을 되읽으면서 반복적으로 드는 생각이다. 세곡(稅穀) 운반선 만드는 장인들이 돈을 빼돌려 허술한 배를 만들어서 파손되는 일이 반복되고, 나랏일을 게을리하고 침묵하는 것을 능사로 여기는 풍토가 관리들 사이에 만연했다. 현직 관리가 승진을 청탁하기 위해 조정 재상까지 망라해 뇌물을 돌린 목록을 보관하다 발각되기도 했다.

율곡 이이의 말처럼, 건국한 지 200여 년 지나다 보니 인심이 쇠퇴하고 온갖 제도가 물러진 “중엽의 쇠퇴기” 상황이 당시 조선의 모습이었다. “뛰어난 의사는 그 환자가 수척한지 뚱뚱한지를 보기보다 그 맥을 짚어 병이 있는가를 살피며, 천하를 경영하는 자는 천하가 안정되었나 위태로운가를 보지 않고 그 기강이 잡혀 있는지 여부를 먼저 보는데” 당시 조선은 기강이 곪아 터진 나라라는 게 율곡의 진단이었다.

국가기강의 문란은 곧바로 민생 도탄으로 이어졌다. 율곡이 지적한 기강 문란의 증상은 구체적으로 위아래 사람들이 서로 믿는 실상이 없는 것이 그 첫째요, 관리들이 일을 책임지려는 실상이 없는 것이 둘째요, 어전회의에서 성취하려는 어떤 실상도 나오지 않는 것이 셋째요, 어진 인재를 거둬 쓰는 실상이 없는 것이 넷째요, 자연재해를 당해서도 대응하는 실상이 없는 것이 다섯째요, 여러 정책 중에 백성 구제의 실상이 없는 것이 여섯째요, 사람들의 마음속에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실상이 없는 게 일곱째 증상이었다.

나는 율곡의 이 지적을 읽으면서 흡사 오늘날 우리나라를 그대로 파헤치는 듯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율곡은 거듭해서 ‘실상이 없는 것’ 즉 무실(無實)이 가장 문제라고 강조했다. 사람들은 “입으로는 매번 기강 세우는 것을 떠들면서도 마치 고질병에 걸린 사람이 쓴 약을 목구멍으로 넘기지 않는 것”처럼, 현상 유지에 급급하고 근본적인 개혁을 감행하지 않았다. 그러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라를 뒤집고 새로 세우지 않을 바에야 기강 세우는 일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기강 하면 공직자 기강이나 특별 감찰을 떠올리는 게 요즘 세태지만 기강이란 말에는 훨씬 깊은 뜻이 들어 있다. 그물의 작은 코를 꿰어 오므렸다 폈다 하는 기다란 세로줄인 강(綱)과, 그 세로줄의 윗부분을 빙 둘러 연결시킨 굵은 줄인 기(紀)가 비유하듯이, 기강은 국가를 지탱시키는 근간이다.
▲  박현모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기강 세우는 일은 어려워 보이지만 사실은 쉽다. 상 주고 벌 내리는 일 하나만 제대로 해도 막힌 혈맥이 뚫리듯 나랏일이 돌아가기 시작한다는 게 율곡의 생각이었다. 신상필벌이 기강 세우기의 출발점이며 엄격함 없는 조직 통솔은 불가능하다는 얘기였다. 율곡에 따르면 세종대왕의 정치가 참으로 볼 만했는데, 그때에는 잘한 사람을 포상하고 잘못한 자를 벌 주는 기강이 분명한 시대였다.

실제로 세종시대만큼 상벌이 분명한 때도 없었다. ‘최윤덕 정승 임명’이나 ‘신숙주 숙직사건’에서 보듯이 세종은 일 잘한 인재들에게 파격적인 상을 주었지만, 잘못한 관리를 처벌하는 데도 엄격했다. 지방 발령을 꺼려 병들었다고 거짓말한 조극관을 전라도에 유배 보낸 일이나, 왕의 총애를 받던 승지 이순지가 인사 청탁을 받아들이자 그를 엄히 꾸짖고 파직시킨 일이 그 예다.

세종이 가장 미워한 자는 거짓말하는 관리였다. 군사훈련을 겸한 사냥인 강무(講武)를 시행하는 도중에 ‘왕이 아프다’고 거짓말한 관리를 망언죄(妄言罪)로 판결해 의금부에 가두고 90대를 때리게 했다. 거짓말이나 허위보고야말로 조직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신뢰를 해치는 빌미가 된다는 게 세종의 생각이었다.

계속되는 참사에도 책임지는 공직자 한 명 없고, 온갖 거짓 뉴스가 판치는 지금 “그물의 벼리줄(綱)을 잡아당기니 그물눈(目)이 저절로 펴졌던” 세종시대의 정치를 기대할 수는 없겠다.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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