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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명작의 공간 게재 일자 : 2018년 02월 09일(金)
외진 골목길에서… 비정상 사회가 만든 ‘괴물’과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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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마포구 망원동 망원동우체국 앞 사거리. 영화 ‘추격자’가 망원동을 주요 무대로 한 것은 ‘멀리 보인다’ 혹은 ‘멀리 볼 수 있다’라는 지명의 뜻과 연관이 있다. 탁 트인 곳은 보려고 하는 자만이 볼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신창섭 기자 bluesky@

영화 ‘추격자’ 촬영지 서울 망원동·성북동

1970·80년대 큰물난리 망원동
망리단길 핫플레이스 등극에도
‘주변부 삶’이란 편견 남아있어

‘망원사거리’ 범행의 관찰 지역
여자들 유인·납치 묻지마 살인
우리의 ‘시대적 불안증’ 담아내

여자 구사일생 맨발 탈출장면
성북동 적막한 비탈길서 촬영
슈퍼마켓 골방속 긴장감 최고


▲  연쇄살인범에게 납치된 여자가 맨발로 도망치는 장면은 서울 성북구 성북동 외진 골목에서 촬영했다. 영화에서 서스펜스가 최고조로 올라가는 장면이다. 아래는 추격자 영화 스틸.
서울 마포구 망원동 하면 일단 물난리가 떠오른다. 사람들 대개는 망원동 물난리를 1984년 태풍 ‘준’ 때 있었던 일로 기억하지만 더 심했던 때는 그보다 10여 년 전쯤 일이다. 1970년이나 1971년. 그때 그곳 사람들은 집과 집 사이를 뗏목을 타고 다녔다. 그 진풍경은 당시만 해도 전형적인 세로쓰기에 거의가 한문으로 채워져 있는 신문 헤드라인 사진으로 뜨기도 했다. 그때 이후 망원동은 비만 오면 상습적으로 침수되던 지역이라는 곳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만큼 도시 개발에 있어 주변부로 밀려나 있던 공간임을 의미했다. 60, 70대 사람들 가운데 망원동 하면 아직도 좀 못사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생각하는 건 그래서다. 같은 말이라도 인토네이션(intonation)은 시대에 따라 굉장히 다른 톤으로 바뀐다. “망원동 살아?”라는 질문이 그렇다. 어쨌든 과거 형 인간들의 그 같은 추억(?)과는 달리 지금 망원동은 핫 플레이스로 등극한 지 오래다. 삶의 공간은 늘 그렇게 기억과 현실이 교직(交織·뭉치 실타래처럼 어떠한 생각이나 사건이 번갈아 나타남)되고 교차되며 이미지화된다. 망원동은 현재 분명 번영일로에 있지만 산업화와 도시화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지 못한 곳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연쇄살인마 유영철 사건을 모티프로 한 영화 ‘추격자’가 망원동을 주요 무대로 한 것 역시 아마도 그 같은 기억의 음영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의 여자들, 그러니까 이른바 출장 성매매 아가씨들이 납치되고 감금됐다가, 강간당하고 살해당한 후 매장되거나 토막 내 버려지는 원천지는 지금의 망원동우체국 사거리다. 이곳 역시 낮에 가보면 여느 사거리와 진배없는 평범한 곳이다. 다만 ‘망원(望遠)’이란 의미 때문인지 왠지 시야가 탁 트이는 것 같아진다. ‘망원’은 ‘멀리 보인다’ 혹은 ‘멀리 볼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 ‘망원’의 의미가 영화에서는 살인자 지영민(하정우)에게 유리하고도 적극적으로 쓰여졌다. 밤마다 그는 사거리 한쪽에 차를 세우거나 흐느적흐느적 차를 몰고 다니면서 택시 기사로 위장해 아가씨들을 유인하고 납치한다. 그에게 망원 사거리는 범행의 관찰지역이다. 탁 트인 곳은 누구나 볼 수 있지만 반대로 보려고 하는 자만이 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여자들이 유린(蹂躪)당하는 이야기기도 하지만 1960∼1970년대라는 사회와 역사, 그러니까 급격한 도시화로 인한 극단의 양극화와 피폐의 잔해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시대적 불안증을 담아낸 작품이기도 하다. 우리의 삶은 과연 안전한가. 우리 안에 악마가 있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는가. 그런데 그 악마는 누가 키운 것인가. 그리고 그 악마는 종국적으로 없앨 수 있는 존재이기나 한 것인가. 영화는 시종일관 그 질문을 이어가고 있다.

영화가 갖는 예시감, 그 예지력은 시시각각으로 세상을 향해 경고장을 날린다. 지난 2008년 2월에 개봉한 이 영화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실제 사건을 모델로 하고 있다지만 영화는 그 실제를 넘어 새로운 실제, 곧 본질을 발견해 낸다. 진실은 항상 저 너머에 있다는 것이야말로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다. 세상은 결코 나아지지 않았으며 이런 상태로라면 더 더욱 나아지지도 않을 것이라는 점을 이 영화는 강조한다.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깜짝 놀라고 동시에 끔찍해했던 것은 영화 속 지영민의 엽기적 살인 행각이나 그를 쫓는 전직 형사 엄중호(김윤석)의 끈질기면서도 폭력적인 추적의 드라마 때문만은 아니다. 이 영화는 우리 사회가 영화 속에서 오로지 살해 욕망을 해소하고 거기서 얻게 되는 쾌락만을 위해 ‘묻지마 살인’을 벌이는 범인처럼 정상과 비정상, 이성과 비이성의 경계를 넘어섰음을 간증해낸다.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고 말했다. “미쳤어”. 사람들은 영화 속 살인마가 미쳤고, 영화가 미쳤으며, 세상이 미치고, 자신들도 점점 미쳐가고 있다고 느꼈다.

이 영화가 10년 전 집계로 5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으며 폭발적인 인기를 끈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는 어쩌면 이 영화로 인해, 아니 이 영화 때부터 우리 안의 ‘괴물’을 응시하게 됐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내 안의 괴물은 폭주하는 권력자일 수도, 환멸의 정치 자체였을 수도, 황금만능을 꿈꾸는 자본에 대한 욕망이었을 수도 있겠다. 그 괴물은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다.

망원동 일대에서 찍힌 듯 하지만 사실 이 영화는 서울 곳곳을 ‘헌팅’해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가장 중요한 신, 그러니까 영화의 핵심 부분인 골목길 추격전 장소만 해도 그렇다. 이 장면은 언제 봐도 명장면이다. 기억에 오래 남는다. 아드레날린이 불끈불끈 올라온다. 지영민이 커브를 틀며 미끄러져 넘어질 듯 냅다 도망치고, 그 뒤를 엄중호가 불도저로 밀어붙이듯 따라잡는데 그 박진감이 맥박수를 치솟게 만든다.

잡아야 할 텐데 잡아야 할 텐데 하는 마음이 굴뚝이지만 사람들은 엄중호가 지영민을 아직은 잡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안다. 영화의 러닝타임이 그럴 때가 아니어서 만이 아니다. 아직 엄중호에게는 자각과 성찰이 부족하다. 그는 형사 출신이면서 출장 성매매 여성들을 관리하는 보도방 사장을 하며 먹고 산다. 인생이 극에서 극으로 간 셈인데 어쩌면 그게 맞다는 느낌도 준다. 정의와 불의는 한 몸이다. 정직과 사기도 등을 붙이고 자야 하는 샴쌍둥이 같은 양면의 개념일 뿐이다. 지영민을 잡기에 엄중호 역시 ‘아직은’ 나쁜 인간이다. 엄중호는 잡을 수 없어서가 아니라 아직 잡을 때가 아니어서 지영민을 잡지 못한다.

그 긴박한 추격 장면 역시 망원동에서 촬영됐을 법하지만 사실은 서대문구 북아현동에서 찍었다. 북아현동이라 하면 추계예술대 입구에서 이화여대 역 사거리 직전까지의 난개발 지역을 말한다. 아니 한때 그랬다. 북아현동 앞쪽은 달동네형 집들로 가득했었다. 그리 고급스러워 보이지 않는 웨딩드레스숍과 가구점, 그 사이사이엔 안을 볼 수는 없지만 뽀글뽀글 파마머리에 욕심이 덕지덕지 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깊게 팬 싸구려 옷으로 몸을 휘감고 있는 늙은 창녀의 교성이 느껴지는 수상한 카페들로 가득했었다.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뉴타운이 들어서 있다. 번듯한 고층 아파트들이 그 허름함과 빈궁함을 덮은 지 오래다.

추격전이 진행된 골목길은 그 뉴타운 안쪽으로 비교적 조용하고 오랫동안 둥지를 틀고 살아가는 주택가에 위치해 있다. 아직은 일부가 남아 있지만 조만간 이곳 역시 밀려날 것이다. 어쨌든 이 골목길에 가보면 아직도 이런 동네가 남아 있나 싶어 신기하다는 느낌을 준다. 낮이나 밤이나 적막한 곳. 마치 사람들이 숨죽여 살고 있는듯한 느낌을 주는 곳. 생각보다 인적이 일찌감치 끊기고 전봇대 아래 그늘에 누군가 웅크리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곳. 가로등 등불은 전구에 먼지가 낀 듯 흐릿해서 늦게 귀가하는 딸아이가 있다면 큰길까지 나가서 데리고 오고 싶게 만드는 곳, 그런 곳이다.

지영민에게 납치됐다가 구사일생으로 풀려나는 것 같던 여자 미진(서영희)이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채 맨발로 구르듯 내려오던 비탈 골목길은 성북구 성북동의 외진 곳에 있다. 영화에서 미진은 다 쓰러져 가는 슈퍼를 하나 발견하고, 그 안으로 잠시 몸을 피신하게 되지만 주인 여자의 미련한 행동으로 지영민에게 다시 발각된다. 이 영화에서 서스펜스가 최고조로 올라가는 장면이기도 하다.

서스펜스는 미스터리와는 달리 범인과 관객들은 아는데 주인공 혹은 피해자만 모르는 경우에 느끼게 되는 긴박감을 의미한다. 미스터리는 범인도 모르고 주인공도 모르고 관객도 모르지만 이상하게 번지는 불안감 같은 느낌을 말한다. 지영민은 미진이 슈퍼 골방에 숨어 있다는 것을 안다. 영화를 보는 관객도 지영민이 그 사실을 안다는 것을 안다. 어리숙하고 가여운 미진만이 그것을 모를 뿐이다. 미진은 시시각각 지영민이 다가오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한다. 관객들은 마음속으로 부르짖는다. “이 바보야. 빨리 도망가!”. 그러나 미진은 결국 지영민에게 다시 잡히고 만다. 그리고 참살(慘殺)된다. 관객도 마음 한구석이 처참하게 찢겨 나간다.

이 영화로 우리는 우리가 지난 10년간 걸어온 삶의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역으로 우리 자신들의 과거를 추격하게 만든다. 그 사이 하정우는 빅스타가 됐다. 김윤석도 그렇다. 나홍진 감독은 이 영화 다음으로 ‘황해’와 ‘곡성’을 내놓으며 압도적으로 주목받는 인물이 됐다. 그는 언제부턴가 ‘흥행보증수표’ 감독 소리를 듣는다. 서영희도 꾸준하게 활동하고 있다. 세상은 대통령이 두 번이나 바뀌었다. 떵떵거리던 인간들이 감옥에 가고, 몰락하고, 초라해졌다. 그렇다고 궁했던 삶을 살아가는 인생이 대박 난 것은 아니다.

여전한 것은 골목길이다. 망원동 사거리도 그대로다. 아현동 골목길도 불안하지만 아직은 남아 있다. 성북동 비탈길 구멍가게는 문을 닫았다. 하지만 그곳이 이 길에서 유일하게 담배도 사고 아이스 바도 사고 하던 곳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변화무쌍한 이 시대에 의외로 다들 그대로 있는 것도 있다. 그런 것이다. 세상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남아 있는 것과 사라지는 것. ‘추격자’의 골목길은 우리가 흔적없이 사라져도 한동안 남아 있을 것들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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