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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오피니언] 살며 생각하며 게재 일자 : 2018년 02월 09일(金)
나라 흥망엔 필부(匹夫) 책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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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원장

꼬리 물고 일어난 慘事의 충격
책임에 대한 냉철한 省察 필요

사회주의 중국 人人有責 강조
스스로 책임진다는 자세 중요

포괄적·구체적 책임 구분하고
상응하는 책임 분명히 물어야


병원과 상가 등 다중이 몰리는 곳에서 화재 사건이 잇달아 일어나고 있다. 화재가 날 때마다 정부는 대책 마련에 나서고, 야당은 책임자 문책을 강하게 제기하고, 언론은 원인 규명을 촉구하고, 국민은 안전한 나라에 대한 열망을 나타낸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이전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나서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대형 사고의 재발을 방지하려면 책임(責任)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나아가 책임도 포괄적 책임과 구체적 책임으로 나눌 필요가 있다.

중국의 웬만한 도시를 가면 거리 곳곳에서 ‘모든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는 인인유책(人人有責)이란 표어가 다양한 용례로 쓰이고 있는 사례를 자주 보게 된다. ‘인인유책’ 앞에 ‘환경오염’이 있으면 모든 사람이 환경 보호에 책임을 져야 하고, ‘안전사고’가 있으면 사람마다 안전사고의 예방에 유의해야 한다. 모든 사람의 책임을 강조하는 ‘인인유책’은 그 나름 오랜 연원을 가지고 있다.

한족의 명나라가 만주족의 청나라에 망하자 내로라하는 식자들은 참담한 상황을 마주하고서 원인 규명에 나섰다. 고염무(顧炎武)도 그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명나라의 멸망을 황제 한 사람의 실정으로 한정할 수 없고 청나라의 침략에 목숨 걸고 싸우지 않았던 모든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천하의 흥망은 황제나 사대부의 책임에 한정되지 않고 필부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일지록(日知錄)’ 중 ‘정시(正始)’에 나오는 문맥은 훗날 ‘천하흥망(天下興亡), 필부유책(匹夫有責)’이라는 표현으로 다듬어져서 널리 쓰이게 되었다. 고염무의 원인 진단은 예나 지금이나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현대에 이르러 ‘인인유책’으로 재탄생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청나라에 멸망당한 명나라의 사족과 필부가 분연히 떨치고 일어났더라면 만주족의 지배는 아주 단기간에 끝났을 수도 있다. 청나라는 1644년부터 250년 넘게 한족을 장기간 관리하고 지배했다. 만인이 망국의 책임을 통감하고서 모두 떨쳐 일어나 복종을 거부하고 저항했더라면 복종의 역사는 그렇게 장기간 진행되지 않았겠지만, 서양의 식민지 개척에 즈음해 청나라는 망국의 조짐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청나라가 팔기군(八旗軍)처럼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천하를 완전하게 통제했기 때문에 만인이 감히 저항에 나서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여기에서 군사적 측면과 별도로 책임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망국과 대형 사건이 일어났을 때 모든 사람은 비극을 막지 못한 심정적 부담을 크게 느낀다. 이에 모든 사람이 망국과 대형 사고에 책임이 있다는 포괄적 책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포괄적 책임을 느끼더라도 그에 대한 반응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공직자가 현직에서 은퇴할 수도 있고, 직무를 더 성실하게 수행하자며 다잡을 수도 있다. 시민은 타락한 정치인을 신랄하게 비판할 수도 있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일 수도 있다. 즉, 보편적 책임은 사람이 자신의 상황에서 스스로 판단해 조치하는 영역이다. 합당과 적합의 척도는 전적으로 개개인에게 달려 있다. 예컨대, 대형 사건이 발생하면 정치 지도자가 즉각 담화를 발표하며 사과를 하고 시민들이 정치권을 향해 책임 논쟁을 벌인다. 사과는 일시적으로 당사자를 위로할 수 있고 논쟁은 한때나마 희망을 품을 수 있다. 하지만 불안의 상황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 사과와 논쟁의 시간은 짧지만, 불안과 위험의 시간은 무한으로 널려 있기 때문이다.

대형 사고가 일어나도 재발을 방지하지 못하고 피해가 발생했는데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역설적 상황을 막으려면 우리는 포괄적 책임과 구체적 책임을 구분해야 한다. 지난 3일 발생한 세브란스병원 화재의 경우 사고 자체는 불행이지만 예방의 측면에서 희망을 준다. 화재의 발생을 예방하고 화재의 진압과 구조 작업을 성공적으로 진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화재가 발생하자 경보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여 방화벽이 내려오고 스프링클러가 제대로 작동하여 화재와 연기의 확산을 막았으며 소방과 구조 차량이 조기에 출동해 참사(慘事)를 막았다. 그리하여 사상자의 숫자가 나오지 않고 ‘다행히 환자 등 300여 명이 긴급 대피하면서 인명 피해 없이 끝났다’는 보도가 나오게 되었다.

이렇게 보면 다중이 모이는 곳을 대상으로 평소에 시설물 안전의 법규 마련과 점검 그리고 사고에 대한 예방과 훈련을 적시에 한다면 대형 사고를 막을 수 있다. 법규가 마련되지 않았다면 정부와 국회가 입법화를 추진해야 하고, 법규가 있다면 당국은 점검과 진단을 주기적으로 실시하고, 해당 기관은 예방과 훈련의 매뉴얼을 작성해 실제로 운용하면 된다. 이 모든 과정은 누가 무엇을 하고 하지 않았는지 꼬리표가 뒤따라야 한다. 이렇게 구체적인 책임이 적시된다면 만에 하나 사고가 발생할 경우 꼬리표에 따른 책임의 소재와 경계가 분명하게 나뉘게 된다.

이익단체의 압력에 못 이겨 법규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방치의 책임을 져야 하고, 점검과 진단을 제때 실시하지 않는다면 직무유기의 책임을 져야 하며, 예방과 훈련을 소홀히 했다면 안전 보장의 책임을 져야 한다. 대형 사고가 되풀이되는 비극과 참사가 발생했지만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역설을 막으려면 모든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거나 포괄적 책임을 묻는 관행을 벗어나 무엇을 누가 잘못 대응했는지 세세하게 밝히는 구체적인 책임을 따지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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