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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이현종 논설위원 게재 일자 : 2018년 02월 12일(月)
‘毒 든 사과’ 집은 文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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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北에 눈길 한번 안 준 펜스
‘통일의 주역’ 부추긴 김여정
남북 정상회담 둘러싼 激浪

실패한 두 정상회담 반복 안돼
비핵화 성과 없인 一場春夢
평화의 봄은 말 아닌 들판에서


지난 9일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이 열린 올림픽 스타디움 귀빈석에서 포착된 한 장의 사진은 지금의 한반도 상황을 단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는 뒤편의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특사인 김여정과 반갑게 악수했다. 문 대통령 옆에 앉아 있던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부부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펜스 부통령 옆에 앉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한 번 흘깃 뒤를 쳐다보고는 펜스 부통령처럼 무표정하게 앞만 응시했다. 남북 선수단 공동 입장 때 펜스 부통령과 아베 총리는 박수도 안 쳤다.

2박 3일 동안 서울과 평창을 방문한 김여정은 4번이나 문 대통령과 만나 ‘우리 민족끼리’ 이미지를 한껏 부각시켰다. 문 대통령에게 “통일의 문을 여는 주역이 되어 후세에 남을 자취를 세우라”는 ‘덕담’도 했다. 반면 동맹인 미국은 외교 결례를 감수하면서까지 이들과 접촉하지 않으려 했고, 일본은 미국 편에서 눈치 보는 모습을 연출한 것이다. 과거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대북 정책에 이견을 가지고 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디스맨(this man·이 사람)”이라고 부르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지맨(easy man·만만한 상대)”으로 지칭한 것을 보면 펜스 부통령의 이 같은 태도는 미국식 불편한 심기의 표현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김여정이 김정은 친서를 전달하며 “이른 시간 안에 만날 용의가 있다. 편하신 시간에 북을 방문해 주실 것을 요청한다”고 제의하자 문 대통령은 “앞으로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키자”고 사실상 수락했다. 문 대통령이 ‘여건’이라는 전제를 달기는 했지만 이미 후보 시절부터 정상회담에 대한 의지를 밝혀온 만큼 속도감 있게 진행될 것이다. 지금 문 대통령의 외교·안보 멘토와 핵심 참모들은 대부분 지난 2000년 6·15와 2007년 10·4 정상회담에 참여한 이들이다. 문정인 청와대 외교안보특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조명균 통일부 장관, 서훈 국가정보원장 등이 모두 두 회담의 주역이다. 두 차례 정상회담은 당시에는 기대를 모았지만, 결과론적으로 지금의 평가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고도화하는 시간을 벌어주고 돈을 제공해주었다는 비판을 벗어나기 힘들다. 똑같은 참모들이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큰 것도 이 때문이다.

더욱이 지금의 주변 정세와 각국의 상황은 앞선 두 차례 정상회담 때보다 훨씬 심각하고 거칠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때만 해도 김 전 대통령은 집권 후 2년간 미국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집중했다. 그 결과가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 조정관의 포괄적 북핵 해결 방안을 담은 ‘페리 프로세스’로 나타났다. 한때 북폭(北爆)까지 검토했던 클린턴 행정부가 정책 전환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2007년 정상회담도 부시 행정부가 집권 2기에 들어서 1기 때 네오콘 중심의 대북 압박 정책을 전환, 6자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 했고 임기 내 북·미 평화협정 체결의 의지가 있었기에 열릴 수 있었다. 북핵 해결과 남북관계 진전이 그나마 속도 조절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이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한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도발-보상-도발’의 악순환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입장이 분명하다. 지금의 남북 대화도 트럼프 행정부가 펼쳤던 대북 압박과 제재의 결과물이라는 인식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펜스 부통령이 탈북자들을 잇달아 만나 북한 인권문제를 적극 제기하고 ‘코피 작전’이라는 군사적 옵션을 거론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의 정상회담 제의만 가지고 미국을 이해시키기는 어렵다. 비핵화에 대한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없는 남북정상회담은 약(藥)이 아닌 독(毒)이 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누가 진정한 친구인가’라는 물음에 답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내면서 임기 말 남북관계 대못을 박으려 성급하게 추진한 10·4 남북공동 선언이 다음 정권에서 어떻게 무시됐는지 잘 알 것이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상황이 좋지 않다. 남북관계가 북·미 관계, 특히 북핵 폐기와 보조를 맞추지 않을 경우 그 후과는 생각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 ‘평화의 봄’이 들판에 오지 않았는데 종이 위의 그림이나 말 한마디로 봄이 왔다고 우길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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