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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김효정의 에로틱 시네마 게재 일자 : 2018년 02월 13일(火)
가학적이고 피학적인 관계… 죄책감이냐 호기심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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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루 벨벳

바비 빈턴이 1963년 발표한 노래 제목을 그대로 차용한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네 번째 연출작 ‘블루 벨벳’(사진)은 럼버턴이라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작은 도시에서 일어나는 미스터리 사건을 시작으로 전개된다.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사고로 고향에 돌아온 대학생 제프리(카일 맥라클랜)는 숲속을 산책하던 중 사람의 잘린 귀를 발견한다. 그는 귀를 종이봉투에 담아 이웃인 윌리엄스 형사에게 넘긴다.

윌리엄스 형사는 제프리에게 아무 말도 해주려 하지 않지만 경찰이 사건과 관계한 주요 인물로 재즈 클럽가수인 도로시(이사벨라 로셀리니)를 지목했다는 것을 그는 알게 된다. 이 사건이 궁금해서 미칠 것 같은 그는 도로시를 보기 위해 재즈 클럽으로 향한다. 낡은 재즈 클럽을 가득 채우고 있는 도로시의 ‘블루 벨벳’. 눈으로, 귀로 스며드는 도로시에게 제프리는 한눈에 반한다. 그는 이 끔찍한 사건의 배후가 무엇이든 간에 이 몽환적인 노래를 너무나도 아름답고 구슬프게 부르는 이 여자를 위해 목숨을 걸기로 다짐한다.

결국 사랑은 집착이고, 보고 싶은 욕망이 아니던가. 제프리는 도로시의 집으로 잠입해 일상을 엿보기 시작한다. 벽장에 숨어 있던 그는 도로시가 범죄자인 프랭크(데니스 하퍼)에게 아들과 남편을 인질로 빼앗기고 성적으로 학대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약에 잔뜩 취한 프랭크는 밤마다 도로시의 아파트로 쳐들어와서 병적인 섹스와 롤플레이를 강요한다. 벽장 안의 제프리는 이 역겹고 고통스러운 연극의 유일한 목격자다.

▲  김효정 영화평론가
그리고 이들의 기괴한 삼각관계가 시작된다. 프랭크가 떠난 후, 수상한 존재를 감지하고 벽장에서 제프리를 발견한 도로시는 그를 내쫓지 않는다. 대신 “나를 만져달라”고 요구한다. 밤마다 프랭크로부터 온갖 학대와 폭력에 시달리던 도로시는 ‘선한 손길’이 필요했던 것이다. 도로시를 갈구하는 이 사슴 같은 눈의 청년이 도로시에게는 어쩌면 유일한 탈출구가 될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도로시는 설렘으로 벽장 속을 열어 본다.

그렇게 도로시와 제프리는 악마 같은 프랭크의 눈을 피해 만남을 이어 나간다. 그렇지만 제프리가 키워 가는 것은 사랑보다는 연민에 가깝다. 정상적인 사랑을 나누는 것을 이젠 잊은 것 같은 도로시가 제프리는 가여워서 견딜 수가 없다. 제프리와 침대에서 사랑을 나누면서도 도로시는 때려달라고 끊임없이 애원한다. 폭력에 중독돼 가는 도로시를 보면서 제프리는 하루빨리 사건을 해결하고 도로시를 프랭크로부터 구해내야 한다고 다짐한다.

‘블루 벨벳’은 악몽 같은 영화다. 벽장 속 제프리의 눈을 통해 ‘관람’하게 되는 사건들, 특히 도로시와 프랭크 사이에서 일어나는 가학적이고 기괴한 성행위와 롤플레이는 흡사 가위에 눌렸을 때 환영을 보는 것처럼 무섭고 불쾌하지만 묘한 여운이 남는다. 관객은 영화 전반부를 지배하는 관음증적 묘사에 염증을 느끼면서도 그러한 쾌락을 점차적으로 수용하고 다음 장면을 기대한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가학적, 피학적인 관계가 줄거리 안에서 존재할 뿐 아니라 영화 밖에서도 실행되는 셈이다. 영화는 제프리가 경찰과 함께 프랭크 일당을 소탕하고 도로시는 아들과 재회한다는 동화적인 해피 엔딩으로 끝을 맺는다.

이 영화의 강점이라면 상상 가능한 가장 은밀하고 난잡한 장면들에 우아하고 깊은 푸른색을 입혀 마치 고가의 춘화(春畵)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작고 못난 프랭크가 신화 속 여신 같은 외모의 도로시의 가운을 갈기갈기 찢으며 ‘아가’라고 불러 달라고 울부짖는 장면들은 보기에도 듣기에도 고통스럽다. 그러나 장면 장면을 스치는 도로시의 반들반들한 붉은 립스틱, 나신(裸身)을 덮고 있는 푸른색 벨벳 가운 등의 클로즈업들은 눈을 떼기 힘들 정도로 아름답고 고혹적인 정물에 가깝다. 이 영화는 치명적이다. 보고 나면 밀려드는 왠지 모를 죄책감과 호기심으로 보는 이를 혹사시키지만 반드시 경험하고 싶은, 그런 춘화를 닮은 영화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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