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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2018 설특집 게재 일자 : 2018년 02월 14일(水)
한현민, ‘넌 특별한 존재’ 엄마의 말씀대로 ‘특별’ 해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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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현민이 지난 6일 문화일보 본사를 방문, 준비해온 한복으로 갈아입고 독자들에게 새해 인사를 하고 있다. 그는 “이번 설에는 스케줄로 바쁘겠지만 마침 가족과 함께하는 예능 촬영이 있어서 모처럼 가족 나들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선규 기자 ufokim@

- 한국인 한현민…흑인 혼혈 모델의 특별한 설맞이

나이지리아인 父- 한국인母
서울 토박이에 영어 포기자
피부색 빼면 뼛속까지 토종

“흑형” 놀림받고 가출하기도
입·출국때마다 심사서 걸려
내국인줄에 서면 “저리가라”

런웨이·방송출연 ‘종횡무진’
세계 영향력있는 10代 30人
“세상의 편견·차별 사라지길”


피부색 차별요? 느끼죠. 지금처럼 얼굴이 조금 알려져서도 아직 주위 시선이 차갑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요. 그때마다 엄마가 해주신 말씀을 떠올립니다. ‘넌 특별한 존재야’라고… 참,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말 tvN의 새 예능 프로그램 ‘나의 영어 사춘기’를 알리는 자리였다.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타임스퀘어에서 열린 이 프로그램의 제작 발표회에 황신혜, 지상렬, 휘성 등 낯익은 스타들 사이로 유난히 눈에 띄는 출연자가 보였다. 189㎝의 커다란 키, 모자처럼 불쑥 솟아오른 헤어 스타일, 그리고 검은색 피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뽑은 ‘2017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대 30인’에 포함된 모델 한현민(17).

누가 봐도 영락없는 외국인인 그가 영어를 못해서 배워보겠다고 이 프로그램에 나온 것도 의외지만 이제 데뷔 2년 된 신인이고, 게다가 10대 고교생이라는 점에 더 놀랐다. 지난 6일 그를 문화일보 회의실에서 만났다.

한현민은 2001년 5월 19일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서울서 자랐다. 이태원이 집이고 오는 5월 만 17세 생일을 맞는 서울 강서구 화곡동 한광고 2학년이다. 아버지가 나이지리아인이고 어머니가 한국인인 흑인 혼혈이지만 그는 뼛속까지 ‘토종’이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순댓국과 간장게장. 특히 청양고추를 듬뿍 넣은 매콤한 된장찌개를 좋아한다. 데뷔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지극히 평범한 한국의 고교생으로 지냈다. 학교 공부가 싫어서 성적이 바닥이고, 외국에 나가본 적도 없는 영어 포기자. 시간이 나면 친구들과 어울려 PC방에 가서 게임을 하고, 뭔가 알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오르던 중학교 때는 가출도 해봤다. 한겨울 2만7000원을 들고 집을 뛰쳐나갔다가 3일 만에 백기를 들고 귀가했다. “엄마가 저를 찾지 않으니까 더 불안한 거예요. 그래서 죄송하다고 하고 집에 돌아갔습니다. 그 뒤론 절대 가출 안 했어요. 하하.”

그런데 그에겐 단 하나, 다른 친구들과 결코 같아질 수 없는 게 있었다. 바로 피부색, 다문화 가정 출신이라는 시선이 항상 따라다녔다.

“어릴 때는 수학여행 가는 게 제일 싫었어요. 다른 반이나 학교 학생들이 저를 이상한 눈으로 보는 게 거북했어요. 그냥 주목받는 거 자체가 싫었죠.”

그래서 초등학교 때는 친구들과 자주 다퉜다. “흑형”이라고 놀릴 때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제가 사는 이태원에서 다문화 가정 친구들을 만나게 됐어요. 처지가 비슷한 친구가 많다는 걸 알았죠. 서로 놀림 받은 경험을 공유하고 위로하면서 약간은 주위의 시선을 이겨낼 수 있게 됐어요.”

한현민의 원래 꿈은 야구선수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한화 이글스 팬으로서 프로 선수의 꿈을 키웠다. 그러나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데다 동생이 4명이나 있다는 현실을 깨달으면서 야구는 포기하고 아마추어 축구 동아리에서 취미로 공을 찼다.


지금도 축구를 좋아합니다. 야구를 포기한 뒤에는 축구 동아리, 게임, 프리미어리그 시청 등을 하면서 대리만족했던 거 같아요. 잉글랜드 아스널의 팬이고, 독일 국가대표 출신인 루카스 포돌스키를 가장 좋아해요. 물론 손흥민 형의 광팬이고요.”

그러다가 한현민이 모델이라는 직업에 눈을 뜬 건 중2 무렵이다. 에이전시에 들어간 중3 선배 형을 알게 되면서 모델에 흥미를 느끼게 됐고 그때부터 유튜브를 보면서 런웨이 워킹을 독학하고 수시로 SNS에 사진과 프로필을 올렸다.

“그래서 몇 군데에서 연락을 받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이상한 곳이었던 거 같아요. 같이 설 파트너가 필요하다며 어떤 분이 제안을 해왔어요. 잘되면 나중에 밀라노 패션쇼에도 갈 수 있다면서요. 그래서 믿고 10시간 넘게 이틀씩 촬영했는데 모델료 한 푼 못 받았죠.”

그렇게 몇 번의 실패 끝에 지금의 소속사 대표를 만났다.

“집 근처 이태원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는데 이런저런 인터뷰를 하신 후에 대뜸 밖에 나가서 한번 걸어보라고 하시더군요. 진짜 그로부터 2주일 만에 2016년 F/W 서울패션위크에서 한상혁 디자이너의 무대에 섰어요. 그때는 정말 너무 떨려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요.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이후로 지난 2년간 한현민은 숨 가쁘게 현장을 뛰었다. 모델로서 잇따라 런웨이에 섰고, 얼굴이 알려지면서 방송국의 러브콜을 받았다.

지난해 말 MBC ‘라디오 스타’ 출연을 시작으로 JTBC ‘아는 형님’,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로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받았다. ‘나의 영어 사춘기’에서는 영어 한마디 못하는 토종임을 알려 오히려 더 큰 관심을 받았다. 올해 초에는 시민 대표 자격으로 청와대 파티에도 초청받았다. 또 지난 8일에는 강원 강릉에서 진행된 2018 평창동계올림픽 성화 봉송에도 참여했고 화보와 CF를 찍었다. SNS 팔로어는 이미 12만 명에 달한다.

이미 방송됐거나 예정인 CF는 10개 가까이 된다. 스쿨룩스, 코나카드 등은 전파를 타고 있고, 현대자동차 벨로스터·유니클로·내셔널지오그래픽·CJ 오쇼핑·스마트폰 CF 등도 찍었다.

한현민은 그동안 설 연휴를 조용히 지냈다. 차례를 지내지 않아서 외할머니가 집에 와 만들어주는 고기와 생선전을 먹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이번 설 연휴부터는 달라질 것 같다. 우선 스케줄이 연휴 막바지까지 꽉 찼다. 설날엔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야 하고, 다음 날엔 한 TV 방송에서 하는 예능에 가족과 함께 출연할 예정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들과 함께 경기 용인의 대형 테마파크로 촬영을 겸한 나들이를 떠날 것 같다.

갑자기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됐지만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인터뷰 일정이 있을 때는 매니저 없이 혼자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기도 하고, 갈아입을 옷을 직접 들고 다니기도 한다.

“방송 출연 이후 요즘은 알아봐 주시는 분이 많아져서 다닐 때 좀 신경이 쓰이긴 해요. 그러나 절 좋아해 주시는 호기심의 시선이니 반갑고 감사하죠.”

얼마 전에는 공항에서 높아진 인기를 실감하기도 했다. 해외 촬영에 참여하기 위해 스리랑카로 출국하는데 그를 알아본 팬들이 갑자기 몰려드는 바람에 1시간 넘게 출국장에서 사인하고 셀카를 찍느라 발이 묶였다.

외국인으로 오해받은 적도 있었다.

공항 입·출국 심사 때마다 걸렸어요. 출국할 때 내국인 라인에 서 있으면 세관 관계자분들이 다가와서 영어로 외국인은 저쪽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외국 공항에서는 제 얼굴과 한국인 여권을 번갈아 보면서 여러 차례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어요.”

그러나 이게 더 이상 부담스럽지만은 않다. 자신을 알아봐 주고 반가워하는 사람이 더 많으니 감사할 일이다.

“제가 5남매 중 장남이에요. 요즘 더욱 장남으로서 책임감 같은 걸 느낍니다. 아버지는 건강이 좀 안 좋으시고 엄마는 집안일과 회사일을 병행하느라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니 안타깝죠. 동생들하고도 잘 지냈었는데 이제는 집에도 늦게 들어가고 아침에 또 일찍 나오다 보니 얼굴 못 본 지도 오래됐어요. 귀여운 동생들에게 친구 같은 형이 됐으면 좋겠어요. 부모님에겐 어서 효도하고 싶어요.”

이제 피부색의 소외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한현민의 꿈은 뭘까. 그는 톱모델이나 톱스타가 아니라고 했다.

“모델로 시작했으니 유럽과 미국의 유명한 패션쇼에 서보고 싶은 것은 당연하죠. 하지만 사람들이 행복해지고 사람들 사이에 편견이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저를 통해 피부색에 대한 편견이 사라진다면 정말 좋을 거 같아요. 그래서 제가 나중에 어른이 돼서 제 아이들을 기를 때쯤에는 아이들이 제가 어릴 때 느꼈던 차별 같은 걸 전혀 느끼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 같은 처지의 다문화 가정 친구들에게도 말해주고 싶어요. 어머니가 제게 그랬던 것처럼 ‘너희도 특별하다’고. 그러면 언젠가는 차별이 없어지지 않을까요.”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e-mail 김인구 기자 / 문화부 / 차장 김인구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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