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무례에 대처하는 기술과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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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미 문화부 부장

무술년(戊戌年) 설 연휴 각 서점 베스트셀러 1위는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라는 자기계발서였다. 베스트셀러가 곧 좋은 책은 아니고, 최고의 자기계발서란 ‘자기계발서’라는 카테고리의 책이 아니라 진짜 좋은 책, 뛰어난 문학작품이라는 것이 불변의 진리지만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라는 제목의 책이 설 연휴 가장 인기 있었다니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설 연휴는 명절 증후군의 공간이고 때론 오랜만에 만난 가족, 친지에게 상처를 받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를 예감한 이들이 책에서 웃으며 무례에 대처하는 법을 배우고 싶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명절 증후군만 해도 가족 관계, 성 역할 등이 얽힌 사회구조물이니 개인이 대처만 잘하면 나아질 수 있는 ‘기술’ 문제가 아니다.

이 책 역시 화를 내거나 관계를 끊지 않고 무례한 이에게 자기 입장을 밝히는 법을 이야기하지만 ‘부드럽게 말하는 기술’이 아니라 ‘단호하게 말하는 용기’에 방점이 가 있다. 일정 선을 넘는 사람에게 그가 누구든 “당신, 금 밟았다”고 단호하게 말하라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하고 목소리를 낼 때 세상은 바뀌기 시작한다고, 좋게 좋게 넘어가지 않아야 좋은 세상이 온다고 이야기한다. 여성 문제에 추악한 권력 문제까지 결합해 한국사회를 근본에서부터 뒤흔들고 있는 ‘미투(#Me Too)’의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권모술수까지 끌어와 개인의 처세술을 말하는 자기계발서도 ‘기술’이 아니라 ‘용기’를 말하니 우리 사회의 도도한 변화의 흐름을 알 수 있다. 책의 부제는 ‘인생 자체는 긍정적으로, 개소리에는 단호하게’이다. 남의 눈이 두려워, 불이익을 받을까 무서워 혼자 삭이며 스스로 상처받는 길로 가지 말고 ‘개소리’에 단호하라는 것이다.

‘개소리(bullshit)’라면 미국 분석 철학자 해리 프랭크퍼트 프린스턴대 교수가 명확하게 정의한 바 있다.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의 정문정 작가가 같은 뜻으로 썼는지 알 수 없지만 ‘용기’를 말하는 시대에 생각해볼 주제다. 프랭크퍼트 교수는 책 ‘개소리에 대하여’에서 “개소리는 단순한 헛소리와 달리 화자의 교묘한 의도가 숨겨진 말”로 “거짓말보다 더 위험하다”고 했다. 거짓말쟁이는 거짓을 참으로 말해야 하니 최소한 진실이 뭔지는 알고 있는 데 비해 개소리는 참과 거짓이라는 진리에는 관심 없이 그저 특정 목적을 위해 내뱉는 말이기 때문이다. 참, 거짓 자체를 부정하고 진리를 호도하는 교활한 언어다. 이 틀로 도널드 트럼프 현상을 분석했던 프랭크퍼트 교수는 허위로 판명 나도 아무 책임지지 않는 정치인의 말들, 숱한 말 바꾸기를 대표적인 개소리라고 했다. ‘미투’ 폭로에 오래돼서 기억나지 않는다거나, 후배를 격려하기 위해서였다는 변명도 이 범주를 벗어나기 어렵다. 프랭크퍼트 교수는 개소리가 넘쳐나는 것을 우리 시대 문제로 지적하며 정확히 알아야 대처할 수 있다고 했다.

새로 출발한 무술년, 베스트셀러를 보다 ‘당신, 금 밟았다’고 말하는 용기, ‘개소리’를 구분하는 예리함, 진리에 대한 민감함을 갖기를, 그렇게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의 제1장을 열기를 기원해 본다.

ch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