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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His Story 게재 일자 : 2018년 02월 21일(水)
“김일성 앞에서 노래하며 당원 꿈꿔… 이젠 北실상 고발이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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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흥광 NK지식인연대 대표가 지난 13일 서울 성동구 소재 사무실에서 NKTV 온라인 방송을 시연하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北교수 출신 탈북자’ 김흥광 NK지식인연대 대표

어렸을 때 ‘노래 신동’ 불리며
김일성 참석한 예술축전 경연
“가수로 노동당원 될 것” 다짐

변성기 거친 이후 공부 전념
컴퓨터공학 배운 뒤 교수 돼
19년간 北사이버전사 양성

더운물 나오고 가스로 밥하는
탈북자 일상이 北선 간부생활
유튜브 방송하고 USB 北보내

‘엿들을라’ 속삭이는 北사회
외부의 자극 통해 실상 알려
웅성웅성하는 사회로 바꿔야


“북한 주민들이 스스로 처참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외부 세계에서도 그 실상을 제대로 알게 하는 것. 그게 제 꿈이죠.”

김흥광(58) NK지식인연대 대표는 북한 ‘교수 출신 탈북자’라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2003년 중국으로 탈북했고 2004년 ‘한국인’이 됐다. 탈북 지식인들과 연대 조직을 설립한 2008년부터는 북한 주민에게 바깥 세상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한국의 일상이 담긴 USB를 북한에 몰래 반입시키고, 바다 조류를 이용해 직접 쌀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입을 다물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위협은 일상이 됐다. 현재 테러에 대비해 하루 10시간 넘게 무장경찰의 경호를 받고 있다.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최근에는 유튜브를 이용한 온라인 방송채널도 열었다. 북한 사이버 강군을 위해 컴퓨터 운영체제를 연구하던 그가 이제는 북한 시스템을 무너뜨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셈이다. 올해 10월 NK지식인연대는 창립 10주년을 맞는다. 김 대표를 지난 13일 서울 성동구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 대표에게도 ‘김일성’이 전부이던 시절이 있었다. 북한에 있을 당시 그는 ‘조선노동당원’을 꿈꿨다. 어렸을 때는 노래가 그 길을 열어주리라 믿었다. 김일성 전 국가주석 앞에서 경연하는 설날 맞이 전국 학생 소년예술축전에 차출될 정도로 노래 신동이라 불렸기 때문.

“경연이 끝나고 바지 옆에 세로로 흰 줄이 새겨진 체육복을 선물로 받았죠. 당시 일명 ‘줄 쳐진 바지’는 장군들이나 만경대혁명학원 학생들이나 입을 수 있었으니 사람들이 얼마나 쳐다봤겠습니까. 마냥 뿌듯했고, 그렇게 가수가 될 줄로만 알았죠.”

김 전 주석이 당시 같이 중창한 김귀국동 씨를 따로 부르는 것을 보곤 꿈은 더 간절해졌다. “두 살 위인 김귀국동은 1960년 재일 귀국선에서 태어났어요. 김일성이 ‘길조’라며 그 의미를 담아 직접 이름을 지어줬죠. 중창이 끝나고 김일성이 그 친구를 기억한다며 따로 부르는데, ‘영광이라면 바로 저런 게 영광이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죠.”

이 같은 그의 꿈은 꿈으로 그치고 말았다. 불현듯 찾아온 변성기는 그의 목소리를 갉아먹었다. 북한에서 허스키한 목소리는 인정받지 못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방향을 바꿔 공부를 시작했는데 의외로 적성에 잘 맞았다. 북한의 최고 대학인 김일성종합대학을 노릴 성적이 됐지만 결국 2지망이었던 김책공업종합대학 시험을 보라는 파견장을 받았다. 북한의 대학입학시험은 거주하는 군, 시의 대학모집 과에서 ‘어느 대학에 가서 시험을 보라’는 파견장을 받아야 치를 수 있다. 그리고 1977년, 생전 들어보지도 못했던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다. 북한에서 대학 및 학과 배치는 성적·학교생활뿐 아니라 가족의 신분 등을 고려해 이뤄진다. 그는 “컴퓨터가 뭔지도 몰랐지만 아버지가 높은 간부가 아니었으니 (대학이나 학과가 배치된) 사정을 이해했다”고 회고하며 미소를 지었다.

1981년 졸업 후 19년 동안 그는 북한의 ‘사이버 전사’들을 키워냈다. 함흥컴퓨터기술대학에서 10년, 북한공산대학에서 9년이다.

“컴퓨터 네트워크나 운영체제를 가르쳤어요. 제자들은 거의 다 사이버 부대에 가거나 군수공장에 취업했죠.”

1986년에는 북한 최초로 교육용 극초소형 컴퓨터를 개발해 당원의 꿈을 이뤘다. “입당 자체가 벼슬이나 관직은 아니지만 일단 북한사회에서 안정을 찾을 수 있고, 더불어 출세할 수 있는 일종의 면허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장가도 당원이 돼야 잘 갈 수 있죠.”

이후로도 그는 ‘상급 교수’가 되기 위해 발버둥 쳐야 했다. 북한의 교수는 조교원, 교원, 상급교원, 2급 교원, 1급 교원 등 5개 급수로 나뉘어있다. 2년에 한 번 자격시험을 치러야만 급수를 유지하거나 진급할 수 있다. “짐승을 다루는 방식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하라는 대로 열심히만 하면 뭐가 떨어지게끔 하는 거죠.”

승승장구하던 그의 신분은 하루아침에 뒤집혔다. 그 시작은 ‘검열’이었다. 2000년도 들어 중국으로부터 전자 파일화된 영화와 음반들이 많이 반입됐다. 전공 특성상 그는 북한 주민들이 다른 나라 콘텐츠를 보는지 단속·검열하는 업무를 맡게 됐다. “북한은 라디오도 한 채널만 들어야 하니 다른 채널로 넘기지 못하게 철사로 막고 납땜질을 해야 해요. 간혹 다른 나라 방송을 들으려고 이 철사를 끊는 경우가 있는데, 집집마다 들어가 끊겼나 감시했죠. 길 가는 사람도 불러다 가방 검사를 하고, CD나 비디오테이프 등을 다 회수해 수시로 검열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남을 감시하고 검열하던 과정 중에 그가 접한 한국 드라마 등을 통해 ‘남한에 대한 동경’을 품게 됐다. “분명히 남한은 ‘사람이 살지 못할 생지옥’이라고 들었는데 아닌 거죠. 여기서 수십 년 있으며 그야말로 ‘개고생’하며 사느니, 가고 싶으면 언제든 외국에 나가고, 책에서만 보는 인터넷도 자유롭게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게 얻은 한국 드라마 ‘모래시계’와 영화 ‘007시리즈’를 담은 CD와 비디오테이프를 친구에게 빌려준 게 화근이었다. 친구가 검열에 걸려버린 것이다. 결국 그는 1년 동안 정직 처분을 받고 협동농장으로 끌려가 ‘혁명화’ 과정을 겪었다. 매일 농사를 짓고 잡초를 뽑으면서 반성문을 썼다. “내가 뭘 잘못했고 왜 이런 사람이 됐는지, 이걸 어떻게 고칠지에 대한 보고서를 매일 써야 했습니다. 360장 정도 썼을 거예요.” 혁명화가 끝나고 공산대학으로 복귀했지만 그는 그를 ‘이색분자’ 취급하는 사회 분위기와 직면했다.

“간부를 키워내는 교수들이니 쉽게 말해 사상이 새빨개야 하고 오염돼선 안 된다는 거죠. 언젠간 공산대학보다 한 급이 낮은 일반 대학으로 쫓겨나고, 그 이후에도 낙향을 거듭할 게 뻔했습니다. 도저히 북한에서 살기 어려운 신세가 된 거죠.”

결국 그는 2003년 두만강 가를 지키던 군인들에게 돈 만 원을 주고 중국으로 넘어갔다. 당시 그의 교수 월급은 4400원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드디어 동경하던 한국에 발을 디뎠다.

“북에서는 잘 나가는 의사나 연구원이었던 사람들이 탈북 이후 할 수 있는 건 요양보호사 정도였죠. 꿈을 포기해야 하니, 그 속이 허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죠.” 탈북 이후 김 대표는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경제학 석사, 정치·통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한세대 U-city IT 융합 박사를 거쳐 한신대, 경기대, 수원대에서 겸임교수로 강의했다.

탈북자 중 그처럼 북한에서와 같은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이들은 극히 드물었다. 김 대표가 남북하나재단 전신인 북한이탈주민 후원회에서 3년간 정착지원과장으로 일할 당시 들여다본 탈북자들의 현실은 처참했다. “고학력 탈북자들일수록 취업도 빨리하고 적응력도 높아요. 하지만 당시 학력 인정도 어려웠고 단순 노동 위주의 직업을 주로 얻을 수밖에 없으니,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이라곤 찾아볼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는 북한에서 얻은 지식을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단체를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2008년 ‘NK지식인연대’가 출범했다. 북한에서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뒤 전문직을 지낸 탈북자들로 구성된 단체는 현재 전체 탈북자의 1.5% 정도인 470여 명 규모다. 이공계만 70~80%다. NK연대는 북한 내부에 외부 사정을 알리는 일에 특히 관심이 많다. 그 일환으로 2014년 USB에 여러 콘텐츠를 담아 북한 내부로 보내기 시작했다. “탈북자들의 생활을 영상으로 찍어 담았죠. 수도꼭지를 틀면 더운물이 나오고, 냉장고를 열면 먹을 게 가득한 모습. 가스 불로 밥을 하고, 온도를 높이면 방이 따뜻하고. 북한 중앙당 최고 간부들이나 할 수 있는 생활이 여기서는 ‘기본’이라는 걸 알려주는 거죠. 지금 북한의 삶은 말도 안 되는 짐승생활이라는 걸 깨닫도록요.”

문제는 북한에 어떻게 반입하느냐는 데 있었다. 맨 처음 중국 수입업자를 통해 5000개를 들여보냈지만 모두 압수당했다. “새 USB는 되는데 뭔가 파일이 있는 USB는 반입이 안 된다는 겁니다. 일일이 컴퓨터에 끼워서 확인하더군요.”

그래서 고안한 게 ‘스텔스 USB’다. USB 속 파일들을 모두 보이지 않게 은폐해놓은 뒤 USB가 컴퓨터에 20번 정도 끼워졌을 때 저절로 드러나게끔 사전 조치를 취했다. 미국 국무부의 지원을 받아 2015년까지 2년 동안 2만여 개의 USB를 들여보냈다. 이것도 잠시, 결국 북한은 스텔스 기능을 포착했다. 북한은 은폐된 파일을 강제로 보이게끔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김 대표가 ‘스텔스 버전 2’를 만들며 재차 시도했지만 싸움은 삼파전에서 끝났다. “2016년에는 북한에서 아예 ‘붉은별’이라는 운영체제를 만들어서 쓰더라고요. 그 운영체제에서는 우리가 만든 파일들이 열리지 않아요. 결국 손을 들 수밖에 없었죠.”

이후에는 대북 ‘직접 지원’도 시작해 3년째가 됐다. NK연대 회원들은 페트병이나 김치통 등에 쌀과 공책, 약품, 라면 등을 담아 인천 강화도에서 조류를 이용해 북한으로 보낸다. 흘러간 물자들은 황해남도 연안에 도착한다. “여태까지 페트병으로 쌀 40t, 김치통으로는 8t 정도 보냈어요. 위치추적장치를 넣어 시험해보니 13시간 정도 되면 북방한계선(NLL)을 넘고, 19~20시간 정도 되면 도착하더군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얼굴을 그린 풍선을 묶어 보내기도 한다. “김정은 사진을 잘라야만 먹을 것을 얻을 수 있게 한 거죠. 북한 주민들로선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일 겁니다. 결국 할 수밖에 없을 거고, ‘김정은을 찢었다’는 그 용기는 마음에 남겠죠.”

김 대표는 최근 사재를 털어 ‘NKTV’라는 유튜브 채널을 시작했다. 영상 제작을 위해 살고 있는 국민임대주택 전세금 3000만 원을 빼서 카메라와 조명을 비롯한 장비들을 마련했다. “영상 편집의 ‘편’자도 몰랐지만, 책을 보며 알음알음 공부했죠. 그냥 북한 실상과 인권, 그들의 간계를 제대로 알리고 싶었습니다.” ‘3만 개의 마이크’ ‘중앙당 X파일’ ‘북한 이슈 농단’ 등 코너도 다양하다. 이 중 3만 개의 마이크는 3만 탈북민들의 ‘입’을 뜻한다. “여러 사회적 편견에 부딪혀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는 탈북자들이 많아요.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공유하는 플랫폼입니다.” 지난해 11월부터 시작했지만 벌써 구독자만 해도 2000여 명, 총 시청자는 24만8000여 명에 달한다.

그는 매일을 테러 위협 속에 살아간다.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장 경찰이 그를 밀착 경호한다. 그 생활이 벌써 5년 정도 됐다. “북한에서 저를 비롯한 8명의 탈북 활동가들을 지명수배해 놓은 상태라고 하더군요. 테러대상자가 된 거죠.”

그를 ‘죽이겠다’는 위협은 전화와 팩스를 가리지 않는다. ‘너 같은 ‘벌거지’를 반드시 밟아 역사의 오물장에 처넣겠다’든지, ‘너는 살아서는 즐겁지 못할 것이고 죽어서도 편하지 못할 것’이라는 등의 내용이 주다. “분명 중국 전환데 우리 말을 하면서 욕을 마구 하더군요. ‘너 누구냐’고 하면 ‘목을 따러 가겠으니 방송이나 신문에서 입 벌리지 말라’며 험한 말을 합니다.”

이렇게 섬뜩한 협박도 그의 활동을 막지는 못한다. 그는 또 다른 대북 지원 사업을 계획 중이다. 김 대표는 “75㎏까지 실을 수 있는 드론을 이용해 USB, 전단, 먹을거리 등을 평양에 직접 투하하고 싶다”고 밝혔다. 조류를 이용하는 방식보다 훨씬 빠르고, 파급력이 크기 때문이다. “북한은 ‘속삭이는 사회’예요. 집에서도 누가 듣겠다며 목소리를 낮추죠. 하지만 본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있잖아요. ‘너 어제 물건 떨어진 거 봤니, USB에 영화가 담겨있대’와 같은….”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어갔다.

“북한을 가만히 놓아두어서는 안 됩니다. 외부 자극을 통해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는 걸 주민들이 알게 해야 해요. 북한을 ‘웅성웅성하는 사회’로 변화시키는 것, 그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김현아 기자 kim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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