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評>미·북 회동 不發의 선명한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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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 前 외교부 차관

청와대 회동 직전에 北이 취소
양측 입장 상호 확인하는 효과
북‘核동결’과 미‘비핵화’ 충돌

美는 제재 효과 및 北진의 파악
북핵 폐기 위한 압박 倍加할 것
남북정상회담用 美北대화 안 돼

미국의 대북정책 기조인 ‘최대 압박과 관여’는 말 그대로 지속적 압박을 통해 북한을 비핵화 대화로 불러내는 것이다. 바야흐로 압박에 이은 대북 관여(engagement)의 시점이 가까이 온 것 같다. 20일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 다음 날이던 지난 10일에 미·북 회담이 청와대에서 있을 예정이었으나 북한의 막판 취소로 불발됐다고 보도했다. 한국 정부의 주선으로 미측 마이크 펜스 부통령 일행과 북측의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이 만나기로 했으나 회담 2시간 전에 북측이 펜스 부통령의 방한 일정과 발언을 문제 삼아 회담을 취소했다는 것이다. 한국의 ‘중재’로 미·북 대화가 성사 직전까지 갔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북한이 미국과 최고위급 회담을 하려 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북한은 지난해 9월 6차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중국까지 적극적으로 동참하면서 상당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고, 그 결과 평창올림픽 참가와 남북대화를 통해 대북 압박 전선을 교란하고 미국의 ‘질투심’을 자극해 미·북 회담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단, 북한 입장에서 미·북 회담은 과거와 미래 핵무기 모두를 포기하는 ‘비핵화(非核化) 회담’이 아니라, 핵 개발을 적당한 선에서 중단하고 기존 핵 능력을 인정받는 ‘동결(凍結) 회담’이어야 한다. 북한의 협상 행태로 볼 때 미국과의 회담을 성사 직전에 취소한 것은 대미 관계에서 주도권을 잡고,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초조하게 만들어 비핵화가 아닌 핵 동결 쪽으로 유도하려 했던 듯하다. 좀 더 시간을 벌어 핵 능력 고도화와 대미 협상 준비를 하고, 한국에 ‘중재자’로서의 성과를 쉽게 내주지 않겠다는 계산도 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미국의 향후 대응 방향이다. 미국은 거센 압박이 북한을 평창으로 불러냈다는 자신감과 더불어 (청와대 미·북 대화 준비 과정을 통해) 북한이 미국보다 협상을 더 원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미국은 막판에 회담이 전격적으로 취소되는 것을 보면서 북한의 입장이 국제사회의 기대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점도 깨달았을 것이다. 시간을 끌면서 미국과 적당히 타협해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는 북한의 입장이 바뀌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따라서 미국은 향후 북한과 협상을 하더라도 비핵화 쪽으로 몰아가기 위해 대북 압박을 배가(倍加)할 것이다. 비핵화를 협상 의제로 받아들일 의사가 있는지 확인하는 ‘탐색적 대화(exploratory talk)’ 이상의 것을 요구할 것이다. 이는 미국과 북한의 만남을 주선하려는 한국의 입장이 더욱 어려워진다는 것을 뜻한다.

문제는 남·북·미 삼각관계다. 한국이 비핵화를 향한 전략적 중심축을 남북한과 한·미 관계 중 어디에 두느냐 하는 점이 관건이다. 북한이 평창올림픽 참가와 남북대화에 응하고, 평창올림픽 개막 2주일 전에 미국에 회담 의사를 표명하고, 우리 정부가 대한민국 대통령의 집무 공간을 내주면서까지 미·북 회담을 주선한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북한과 미국은 한국의 전략적 중심축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했을 것이다. 특히, 미국은 공고한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해 한국이 치밀한 대북 유인전략을 펼쳤는지, 아니면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형식적 여건 조성을 위해 미·북 회담을 주선했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7일 평창올림픽 메인 프레스센터를 방문해 내외신 취재진을 격려한 자리에서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라고 했다. 남북 정상회담을 서두르지 말자는 신중한 발언이다. 그러면서도 문 대통령은 “남북대화가 미국과 북한과의 비핵화 대화로 이어지길 기다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남북대화와 미·북 대화가 긍정적 상호작용을 하는 이른바 선순환(善循環)을 이뤄내기 위해 우리 정부가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그러나 미·북 비핵화 회담 개최는 북핵 문제의 종착역이 아니라 시작이다. 미·북 회담을 통해 남북 정상회담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남북 정상회담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한·미 동맹과 국제사회의 노력을 바탕으로 북한 비핵화에 집중해야 한다. 그것이 대북 전략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