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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역사 속 ‘사랑과 운명’ 게재 일자 : 2018년 02월 26일(月)
5세 정혼해 23년 同苦同樂…아내 떠나자 남편 “우리는 부부 넘어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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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운희가 부인 의령남씨 영전에 올린 제문(1717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동갑내기 정운희-의령남씨

결혼후 힘든 시절 함께 헤쳐
의리로 맺어진 동지애 보여


장릉 참봉을 지낸 조선 중기의 학자, 정운희(1680∼1745)의 이야기다. 그는 대대로 고관대작을 배출한 한양 명가의 자제로 한성부의 중부 정선방 제8통 3호에 조부모, 부모와 함께 살았다. 정운희가 다섯 살이 되던 1685년 어느 날,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너의 혼처는 이미 정해졌다.” 거역할 수 없는 할아버지의 엄명이었다. 다섯 살 때, 이미 혼사가 정해진 상대는 이웃에 사는 동갑내기로 명문 의령남씨 댁 딸이었다. 그러니까 그녀 또한 다섯 살에 이미 남편이 정해진 것이었다. 동갑이었던 정운희와 의령남씨는 서로를 배필이라 생각하며 자랐다. 정혼 된 사실을 서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밀당’이 필요치는 않았지만, 서로에 대한 면밀한 탐색은 필요했다. 하지만 정운희는 그녀가 별로 탐탁지는 않았다. 그가 보기에 의령남씨는 꾸미는 것을 좋아하고, 특별한 솜씨가 있거나 마음씨가 아주 고와 보이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주 보면 정든다고 하던가, 10여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녀를 지켜보며 아름다움과 착한 마음씨를 알게 되었다. 정운희도 다섯 살 때부터 시작된 인연으로 맺어진 혼인을 보통의 혼인과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일이라고 회고했다.

부부의 연을 맺은 두 사람은 어른들을 모시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넉넉한 살림은 아니지만 분수를 지키며 함께 헤쳐나갔다. 위기도 있었다.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정운희가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고 힘든 시간이 이어졌다. 부부는 묵묵히 기다렸다. 정운희는 부인에게 따뜻하고도 다정하게 대하지 못했던 점을 후회했다. 이들 부부는 점차 삶을 견뎌온 동지가 되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부인이 앓아눕게 되면서 정운희는 자신이 아플 때 부인이 직접 침을 놓아준 것을 떠올리지만, 정작 부인이 위독할 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에 안타까워했다. 의령남씨는 점점 병세가 깊어져 결국 위독한 지경까지 오고 말았다. 부부는 서로 눈물만 글썽거리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세상을 떠나는 사람과 남겨진 사람이 각자 지고 가야 할 삶의 무게를 달래는 말 없는 동지들의 대화였다.

서른여덟 살의 나이로 결국 그녀는 눈을 감았다. “당신은 23년 평생 나를 도와준 것이 많았다오. 나를 북돋워 준 것이 적절하였을 뿐만 아니라 의리(義理)로 나를 ‘절차탁마(切磋琢磨)’한 것이 그 얼마였던가? 우리 둘은 이름만 부부였지 사실상 서로에게 이로운 벗(益友)이었구려…”

정운희와 의령남씨는 5세에 정혼을 하고 10년 후에 결혼, 그리고 23년을 동고동락한 인생의 동반자였다. 이들 부부는 할아버지가 혼인할 때 일러준 공경하고 소중히 여기라는 가르침을 일생 동안 지켜 부부를 넘어 동지가 되었다. 그리고 정운희는 부인의 상여가 떠나는 날을 글에 적었다. “이제부터 부부의 즐거움은 없고 남은 삶은 슬픔만이 있을 것이라오.… 세월은 물 흐르듯이 빨라 천 년이 한순간이라, 수십 년은 짧은 시간이니 충분히 견뎌낼 것이오. 저승에서 다시 만납시다.”

남녀의 만남과 부부의 사랑은 옛날과 오늘날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정운희가 23년 차 부부로 살면서 비로소 깨달은 부부의 ‘의리’와 ‘동지’는 우리에게도 작은 울림이 된다. 이들 부부가 지켜온 서로 공경하고 소중히 하는 경애(敬愛)의 의리야말로 부부를 넘어 일생을 함께하는 동지가 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시쳇말로 “부부가 사랑으로 사나? 정으로 살지!”라는 말은 이제 “부부는 의리로 맺어진 벗이다”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정수환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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