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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김효정의 에로틱 시네마 게재 일자 : 2018년 02월 27일(火)
뱀파이어가 된 司祭와 유부녀의 공허한 욕망… 결국 한 줌의 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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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쥐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거장 박찬욱 감독은 섹스신 역시 빼어나게 풀어낸다. 특히 2009년 작 ‘박쥐’(사진)에서의 섹스신은 직설적이고 처절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이 영화에서 뱀파이어와 인간이 나누는 섹스는 육체적 결핍을 채우는 것과 동시에 영(靈)적인 수혈이 되기도 한다.

가톨릭 사제인 상현(송강호)은 봉사하러 간 아프리카 어딘가에서 전염병에 감염되고 치료 중 수혈받은 피로 인해 뱀파이어가 된다. 상현은 시도 때도 없이 쳐들어오는 육체적 욕망을 주체할 수 없어 괴로워한다. 어느 날 상현은 초등학교 동창 강우(신하균)의 집에 방문했다가 그의 아내 태주(김옥빈)를 보고 반한다. 고아인 태주는 시어머니(김해숙)와 강우가 쏟아내는 학대에 가까운 히스테리를 감내하며 지옥 같은 인생을 꾸역꾸역 살아낸다. 태주의 지친 얼굴을 간신히 받치고 있는 하얗고 가녀린 목과 얇은 핏줄이 상현에게는 생존을 위한 피의 욕망이자 여자를 향한 욕망으로 다가온다.

태주 역시 상현에게 사랑을 느낀다. 태주는 상현과의 밀회를 위해 시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하고 상현이 봉사하는 병원에 방문한다. 식물인간 환자가 입원 중인 한 병실 구석 침대에서 그들은 침묵 속에 사랑을 나누지만, 이들의 몸 안에 갇혀 있던 욕망과 에너지는 침묵하지 못한다.

신을 배신하고 욕정 가득한 남자로 다시 태어난 상현에게 태주의 육신은 먹이이며 또 다른 삶을 담보하는 생명이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평생을 자신을 ‘주워다 키워준’ 모자에게 치이며 살아왔던 태주에게 상현은 구원이며 부활이다. 그렇기에 두 사람의 정사는 게걸스럽다. 성적 욕망에 생존을 향한 몸부림이 더해진 이들은 고깃덩어리를 구한 짐승처럼 서로의 손과 발을 물고 핥아댄다.

▲  김효정 영화평론가
처음으로 여자의 육체를 경험한 상현과 오랜 시간을 불능에 가까운 남편과 살아온 태주에게 섹스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황홀하다. 이 황홀경 속에서 태주는 상현에게 “왜 이렇게 좋은 거예요”라고 반복해 묻는다.

이 영화의 섹스신은 눈뿐 아니라 귀로도 느껴진다. 상현이 흡혈하는 장면과 상현과 태주가 서로를 탐하는 장면에서 피를 마시고 육체가 부딪치는 소리가 증폭돼 들린다. 이렇게 과장된 사운드가 태주와 상현이 나누는 섹스의 본질과 너무나도 잘 맞아떨어진다. 서로의 오르가슴으로 생명과 사랑을 수혈받는 이들의 결합은 인간에서 뱀파이어, 즉 유한한 존재에서 영속의 존재로 변환되는 인간의 육체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상현을 향한 욕망이 커진 태주는 넌덜머리 나는 집을 탈출하기 위해 강우에게 누명을 씌워 상현이 그를 죽이도록 부추긴다. 살인을 한 이후로 둘의 사랑은 죄책감과 악몽에 메말라버린다. 입을 맞출 때도, 섹스를 할 때도 서로에 대한 갈망 없이 공허한 오르가슴만 뿜어낸다.

사제로서, 유부녀로서 가져선 안 되는 육체와 피를 탐하고 살인을 저지른 상현과 태주는 결국 하늘의 징벌을 피하지 못한다. 상현은 욕망의 최면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태주에게 희망을 버리고 함께 자살하자고 제안한다. 벼랑 끝에 선 두 사람은 해가 뜨는 순간 불에 타 한 무더기의 재가 된다.

박찬욱의 섹스신은 야하고 심오하다. 그는 남녀의 섹스를 에둘러 장식하려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심오하게 보이는 이유는 박찬욱의 에로티시즘은 늘 무언가와 엉켜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유머와 비애가, 때로는 음란함과 고상함이, 그리고 죽음과 생명이 등장인물의 숨결에, 육신에 묻어난다. 박 감독의 다음 작품, 특히 그가 그려낼 다층적이고 신비로운 섹스신에 미리 흥분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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