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TV세상>11년만에 다시 봐도…‘하얀거탑’은 명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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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작 MBC ‘하얀거탑’이 재방송되고 있다. MBC는 파업 여파로 자체 정비가 필요했고, 어차피 평창동계올림픽 기간 동안 파행 방송이나 시청률 저하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재방송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해도 요즘 화제작들을 놔두고 굳이 11년 전 작품을 선택한 것이 놀랍다. 이것은 ‘하얀거탑’이 현재에도 여전히 생명력을 가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수많은 작품 중 이 작품을 선택했을 것이다.

‘하얀거탑’은 의료 드라마다. 하지만 의료 이야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이 작품은 조직과 권력을 그린다. 이 작품 전까지 의료 드라마는 의사들이 연애하는 이야기였다. 병원은 사람 생명을 살리려 의사들이 헌신하는 휴머니즘의 공간 정도로 그려졌다. ‘하얀거탑’이 조직, 권력, 암투를 이야기하면서 한국 의료 드라마의 새 장을 열었고, 이후 의료 드라마들은 어떤 식으로든 병원 내 권력투쟁의 문제를 건드렸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의료 드라마에 ‘하얀거탑’의 영향력이 미친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명인대학병원 부교수인 장준혁(김명민)이 외과과장이 되는 과정에서부터 시작한다. 기존 외과과장인 이주완(이정길)은 장준혁을 밀어내고 자기 후배를 후임 과장으로 세우려 한다. 이들의 싸움은 병원과 의료계 차원의 권력투쟁으로 비화해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파워게임이 벌어진다.

병원은 단지 배경으로 차용된 것일 뿐, 이 작품이 실제로 그린 것은 한국 사회 조직문화의 민낯이다. 이 작품의 연출자인 안판석 PD는 ‘아줌마’ ‘밀회’ ‘풍문으로 들었소’ 등을 통해 우리 사회의 내밀한 부분을 파헤쳤다. 그중에서도 ‘하얀거탑’이 압권이다.

이 작품에서 권력자들은 교양과 품위라는 우아한 가면을 쓰고 있다. 하지만 자신들의 이익이 걸린 일에 대해선 부정한 방식을 마다하지 않고 똘똘 뭉친다. “꼬장꼬장 권위 따지는 사람들, 뒤로 할 짓 다하면서 앞에서 폼에 살잖아.” 병원 부원장의 대사다. ‘폼에 사는’ 그분들이 실상은 어떤 사람들인지 까발리는 것이 작품의 미덕이다.

‘하얀거탑’ 속 인물들은 파벌에 살고 파벌에 죽는다. 과장을 뽑을 때도 어느 파벌 사람이냐가 실력보다 중요하다. 파벌 내부의 질서는 극단적으로 수직적이다. 윗사람의 말은 곧 법이다.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논문대필을 비롯한 온갖 수발을 들어야 하고, 그렇게 충성을 바치고도 비위를 거스르면 한순간에 내쳐진다. 지성인들이지만 보스 중심으로 뭉쳐 이익을 챙기는 행태가 조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중간층은 후배들이 어른의 심기를 잘 맞출 수 있도록 군기를 잡는다. 때때로 ‘집합’을 걸어 ‘얼차려’까지 가한다.

이 중에서 파벌 문제는 이번 평창올림픽 때도 큰 논란을 빚었을 정도로 현재진행형이다. 극단적으로 수직적인 조직문화 속에서 중간층이 후배들을 큰 어른의 심기에 맞게 길들이는 문화는, 이윤택 연희단거리패 성추문 파문에서도 문제가 됐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수발을 드는 것도 성추문 파문에 안마 형태로 나타났다. 고참이 집합을 걸어 군기를 잡는 것은 최근 병원 내 구타 사건에서도 드러났다. 이렇게 한국 조직문화의 고질병을 그렸기 때문에 ‘하얀거탑’이 재방영작으로 선택된 것이다. 변하지 않는 우리 사회 후진성, ‘하얀거탑’이 11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현재적인 명작으로 자리매김한 이유다.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