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 출신 김기식 “前정부 탓할 때도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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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진영서도 비판 목소리

“손에 피 안묻히려는 정부…
‘구조조정 수건돌리기’ 그만하라”

韓銀도 “실업률만 봐선 안돼
장기성장 기반 다져야할 때”

‘묻지마 지원’속 조선업 위기
“실기땐 일본식 장기침체로”

“고통과 희생이 수반되지 않는 구조조정은 없다. 속된 말로 누군가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서는 제대로 일을 처리할 수 없다. 전임 정부가 남긴 잘못된 유산이라고 탓할 시기도 지났다. 손수건 돌리기는 이제 그만해야 한다.”

참여연대 출신의 김기식(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더미래연구소장이 최근 한 기고문에서 강조한 내용이다. 정부가 기업 구조조정을 계속 미루면서 ‘총대를 메지 않는’ 현실을 이른바 진보 성향의 인사들조차 꼬집고 나선 것이다. 대규모 인력 감축이 수반되는 구조조정은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에서 아예 밀려났다는 게 산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특히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 표심을 잡기 위한 정치적 고려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실업률 측면만 주시하지 말라면서 장기성장 기반을 위한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제기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도 의미심장하다. 이 총재는 27일 금융통화위원회를 마친 후 기자간담회에서 기업구조조정에 대해 “실업률 양산 등의 측면만 볼 게 아니라, 인적자원과 물적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재배치하는 것까지 포괄적으로 봐야 한다”면서 “앞으로 장기성장 기반을 다져 나간다는 측면에서 보면 이러한 구조조정은 꾸준히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1월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방문은 ‘정치’가 구조조정의 방향을 결정한 사례라는 시장의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다. 문 대통령은 당시 “조선 경기가 곧 회복될 가능성이 크다”며 “(조선업이) 재도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청산 위기에 몰린 중견 조선사들에 ‘산소호흡기’를 부착한 것으로 산업계는 보고 있다. 성동조선해양과 지난해 법정관리를 졸업한 STX조선해양에는 공적자금만 7조여 원(STX조선 4조5000억 원, 성동조선 2조6000억 원)이 투입됐다.

조선업에서 중국과 한국의 희비가 엇갈린 것도 결국 정부의 산업 정책이 결정타였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조선업계 고위 관계자는 28일 전화통화에서 “중국 정부는 산업 정책에 대해서는 정치 논리를 배제하고 규제도 하지 않은 채 일정 기간 육성하는 정책을 펼쳤지만, 한국 정부는 조선업에 대해 구조조정도 하지 않고 지원 정책도 내놓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중국이 한국 조선업을 따라잡는다는 위험신호는 수년째 나왔다”며 “‘반도체 굴기’를 진행하는 중국에 대해 조선업처럼 안일하게 대응하다가는 반도체 시장 주도권도 내주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저생산성 기업을 퇴출하지 못한 일본의 구조조정 실기가 1990년대 장기침체로 이어진 것과 유사한 상황이 이미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미 한국이 구조조정을 실기해서 일본식 장기침체 도식으로 이어지는 양상”이라면서 “부실한 회사에 재정이 투입돼 명맥을 유지하면 이는 업종 전반의 경쟁력을 취약하게 만드는 구조적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방승배·권도경 기자 bs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