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 되니 또 출판기념회…김영란法 비웃는 ‘책값 모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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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후보자 출판기념회 성행
구매권수 제한없이 책값 전달

정상가격 지급한 거래의 경우
청탁금지법 저촉여부 불분명
선거법도 금액관련규정 없어
“별도입법 필요” 목소리 높아

27일 오후 경기 지역 한 6·13 지방선거 예비후보자의 출판기념회 현장은 본 행사 시작 한 시간 전부터 몰려든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행사장 앞 로비 한쪽에는 500여 권의 책이 쌓였고, 그 옆에는 방명록과 부조금을 넣을 때 쓰는 흰 봉투 뭉치, 봉투를 담는 모금함 모양의 종이상자가 놓여 있었다. 참석자들은 원하는 수 만큼의 책을 받은 대신 흰 봉투에 담긴 ‘책값’을 종이상자에 넣었다. 행사 관계자는 “봉투 안의 금액을 확인하고 그에 맞춰 책을 준다”고 설명했지만, 사실 여부를 확인하긴 어려웠다. 오히려 마치 결혼식장 하객들이 축의금 봉투를 내고 식권을 받아가듯, 참석자들은 흰 봉투를 내고 주최 측은 그들이 말하는 대로 책을 건네는 식이었다. 이날 출판기념회에는 700명 가까운 사람들이 몰렸고, 본행사 시작 직전엔 ‘4번’이라고 적힌 네 번째 상자에 돈 봉투가 쌓였다.

이처럼 선거 때마다 ‘정치자금 충전용’이란 비판을 받아왔던 출마 예정자들의 출판기념회가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또다시 성행하고 있다. 공직선거법상 선거일 전 90일(다음 달 14일)부터 출판기념회를 열 수 없는 만큼 시한에 쫓긴 출마 예정자들의 출판기념회가 러시를 이루고 있다.

책값 명목으로 출마 예정자들에게 돈 봉투가 전달되지만, 얼마가 들어있으며 누가 냈는지조차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문제는 여전하다. 현행 정치자금법,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등은 후원회를 통하지 않은 정치자금 모금과 공직자의 1회 100만 원(연간 300만 원) 초과 금품 수수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인 출판기념회에는 이를 엄격히 적용하기가 어렵다. 출마를 앞둔 지방자치단체장이나 현역 의원 등 공직자는 청탁금지법에 따라 직무 관련성·대가성이 없더라도 1회 100만 원, 연간 300만 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수수할 수 없지만, 정상적인 책값을 지급한 것이라면 적용되지 않는다. 출마 예정자와 책 구매자의 직무 관련성·대가성도 개별적으로 따지기 어려운 데다가, 이마저도 봉투에 다른 사람의 이름을 적는 경우가 많아 확인이 쉽지 않다. 전직 공직자 신분의 출마 예정자는 현직과 달리 청탁금지법상 금품수수자 적용을 받지 않아 더 자유롭게 ‘책값’을 모을 수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28일 통화에서 “출판기념회 관련 규제 규정은 ‘선거일 90일 전까지만 개최할 수 있다’는 것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출판기념회를 통한 불법적인 정치자금 수수를 제한하는 별도 입법과 정치권의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황정근 변호사는 “현행법으로는 출판기념회를 통한 정치자금 수수를 검증하거나 제한하기 어려운 구조”라며 “출판기념회 자체를 금지하기 어렵다면, 정당 및 국회가 자율적으로 출마 예정자들에게 자제하도록 권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지·이후연 기자 eu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