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정신건강전문가 27명이 본 트럼프의 정신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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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라는 위험한 사례 / 밴디 리 엮음, 정지인·이은진 옮김 / 심심

막강한 권력을 쥐고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위치에 있는 대통령은 훨씬 더 안정된 정신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더구나 이 세계를 수차례 파괴할 수 있는 핵무기 버튼을 쥐고 있는 미국 대통령은 더 말할 게 없다. 예컨대,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로 미국과 소련이 일촉즉발의 핵전쟁 위기로 몰렸을 때,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합동참모본부가 만장일치로 쿠바 미사일 기지를 선제 타격하라고 압력을 가했지만 침착하게 군(軍)에 속하지 않은 참모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며 인류 존망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만약 당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었다면? “트럼프는 그 편집증적인 트위트들을 올렸던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미사일을 발사할 것이다.”(마이클 J 탠지, 임상심리학자)

이 책은 미국의 저명한 정신과 의사와 정신건강 전문가 27인이 트럼프의 정신상태를 진단한 내용을 담았다. 책의 편집은 예일대 의과대학원 법·정신의학부 임상조교수인 한국계 미국인 밴디 리 박사가 맡았다. 나치 협력 의사들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심리학자 로버트 제이 리프턴을 비롯해 ‘스탠퍼드 감옥 심리 실험’으로 널리 알려진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 등 ‘대가’들이 참여했다.

미국정신의학회 윤리강령 중에는 “정신과 의사가 직접 대면 검사하지 않았고 합당한 허가를 받지 않았다면, 특정 공인(公人)의 정신 건강에 관해 전문적 의견을 제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규칙(골드워터 룰)이 있다. 책에 참여한 저자들은 “위급한 상황일 때, 의사는 골드워터 룰을 어겨야 한다. 우리는 지금이 그런 위급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고 선언한다. 저자들은 트럼프가 대중적으로 알려진 1980년대부터 생산된 수백 시간의 동영상과 수천 건의 인터뷰, 매일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수만 건의 트위트 멘션 등 30여 년간의 기록물을 분석했다.

책에 따르면, 트럼프는 미국정신의학회 진단분류(DSM-5)에 들어있는 여러 정신질환을 지니고 있다. 자신의 자아를 부풀리고 선천적으로 낮은 자존감을 달래기 위해 무슨 말이든 가리지 않으며, 과거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 모습에서 보이는 ‘극단적 현재 쾌락주의’, 타인의 이견을 개인적 공격으로 받아들여 분노로 반응하고 그를 ‘적’으로 여겨 파괴하려는 충동적 행동을 보이는 ‘소시오패스’ 양상 등이 있다. 하버드의대 정신의학과 교수를 지낸 랜스 도즈는 “트럼프는 부인할 수 없는 소시오패스적 특징을 보인다”고 경고한다. 이 밖에도 다른 사람에게는 기회도 안 주고 혼자만 떠드는 자기애성 인격장애, 버락 오바마가 트럼프 타워의 전화를 도청했다고 주장하는 트위트들에서 나타난 편집증적 망상 등이 거론된다. 리프턴은 책의 서문에서 “트럼프가 하는 행동이 단순히 민주주의 절차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로써 위험한 대통령이 정상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악의 정상화’(normalization of evil)가 미국 통치의 역학을 장악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572쪽, 2만2000원.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