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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살며 생각하며 게재 일자 : 2018년 03월 02일(金)
걷기…삶의 시작, 질병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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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우 경희대 한방신경정신과 교수 火病전문가

걷기는 평생 동안 할 수 있는 운동
러닝머신 비해 효과 훨씬 뛰어나

숲길에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자연과 끊임없이 교류하는 행위

우울증도 걷지 못하는 데서 시작
3월은 제대로 걸을 수 있는 계절


화병(火病)클리닉에서는 억울하고 분한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걷기’를 권한다. 걷기는 운동 효과와 함께 자신의 고유한 리듬을 만듦으로써 정신적으로 안정을 찾게 되고, 신체는 에너지를 얻게 되며, 스스로 최적의 상태에 이르도록 돕는 방법이다. 화가 치받는 분노의 현장에서는 잠시 벗어나서 걸음으로써 감정을 가라앉히도록 교육한다. 용서를 못 해 속을 끓이는 환자에게는 때로 당사자와 함께 걷기를 권하기도 한다. 한없이 걷는 과정에서 자신의 마음속 응어리가 풀리고, 대화를 하면서 화해와 용서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걷기는 화병 환자뿐 아니라, 우울증과 불면증 그리고 치매나 암 환자, 심지어 척추에 문제가 있는 환자에게도 적용되는 매우 의미 있는 치유 행위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걷기의 운동 효과에 관심을 가진다. 그야말로 직접적인 효과에 초점을 둔 것이다. 그래서 ‘하루 만 보, 2시간 걸어 봐야 운동 효과는 제로’라는 신문 르포에 눈이 간다. 르포에 소개된 것처럼, 하루에 2시간 러닝머신에서 설렁설렁 걷는 행위는 그저 칼로리만 소모할 뿐 운동 효과는 없다는 주장으로, 짧은 시간의 근력 운동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설명이 이들에게는 더 설득력이 높다.

그러면 과연 바람직한 걷기란 어떤 것인가. 바람직한 걷기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걷기는 인간에게 마치 잠을 하루에 7∼8시간 자는 것이나, 식사를 하루에 3번 하는 것처럼 오래전부터 길든 행위다. 인류가 산업혁명 이전, 즉 교통수단으로 자동차가 보편화하기까지, 지금으로부터 불과 200여 년 이전에는 평균 하루 보행 수가 3만 보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지금처럼 하루에 채 1만 보도 걷지 않는 우리는 수천 년 동안 익숙해진 행위의 채 3분의 1에서 5분의 1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니 모자라는 보행 수는 여러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의학계에서는 이를 운동 부족, 활동 부족으로 보아 생활습관병으로 이행된다고 설명한다.

우리의 일상을 조금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제대로 걷는 일이 그다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나마 ‘건강 걷기’라고 하는 1만 보도 실제로 많이 걷는 것은 아니다. 스마트폰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또는 스마트 워치를 하루 종일 차고 다녀 나온 결과인 1만 보는 결코 많은 보행 수가 아니다. 출퇴근 시간에 걷는 것, 점심을 먹으러 밖으로 나가는 것뿐만 아니라, 집 안에서 움직이는 것, 사무실에서 잠시 왔다 갔다 하는 것, 화장실 다녀오는 것 등 앉거나 누워서 지내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보행 수로 체크가 되니 5000∼6000보는 쉽게 기록된다. 그래서 만 보를 채웠다고 해도 정작 작정하고 걷기는 채 4000보가 안 되는 것이다.

걷기가 효과적으로 운동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바람직한 걷기를 해야 한다. 바람직하게 걷는 것은 오로지 걷기에만 충실하는 것이다. 척추를 똑바로 세우고, 양손에 짐을 들지 않고 양팔을 적절하게 움직이면서, 상쾌하고 기분 좋게 걷는 행위다. 더구나 자신의 고유 리듬을 찾아서 처음에는 천천히 걷다가, 다시 속도를 내다가, 자신의 리듬에 맞춰 걷게 되면, 운동 효과뿐 아니라, 이완 효과가 동반돼 가장 이상적인 운동법이 된다. 마치 그 시간에 춤을 추는 것과도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걷기는 헬스장에서 하는 ‘걷는 행위’와는 다르다. 다리만 조근조근 움직이는 행위와는 달리, 보고, 듣고, 냄새 맡고, 자신의 주의에 항상 변화를 주면서 자연과 끊임없이 교류하는 행위다. 특히, 걷는 길이 평평하지 않고, 오르고 내림이 있고, 또 아스팔트가 아닌 숲길에서는 다리의 여러 미세 근육들을 각기 작동시키는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바람직한 걷기의 효능에 대한 근거로 80분간의 주 3회 산림 걷기 운동은 같은 조건의 러닝머신 운동에 비해 하체 근력, 상체와 하체 유연성, 민첩성·평형성, 그리고 심폐지구력과 체중 관련 신체상 요인과 몸매 관련 신체상 요인에서 효과적이라는 논문이 보고되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걷기의 운동 효과 측정은 바람직한 걷기에 맞춰 측정될 필요가 있다. 단지 걷는 행위만을 걷기로 정의해 운동 효과가 있다, 없다를 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의 저술가 리베카 솔닛이 ‘그 역사가 인간의 역사보다도 길다’고 한 걷기를 새롭게 정의해 보자. 우선, 걷기는 꾸준히 할 수 있는 기본이 되는 운동이다. 인간이 하는 가장 본질적 운동으로 30분이라는 짧은 운동뿐 아니라, 하루 8시간이라는 운동 시간도 소화해낼 수 있고, 첫돌 아이 때부터 시작해 죽기 직전까지 할 수 있는 운동이다. 그리고 걷기는 재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 걷기에 한정되는 게 아니라, 걷기를 통해 무엇이든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걷는 동안 오감을 통해 자연을 접하게 되며, 사색하고, 대화할 수 있으며,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다.

척추 수술을 받은 환자에게 장기간 활동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일어났다. 곧이어 식욕이 떨어지고, 잠이 잘 오지 않게 되고, 의욕도 상실하게 되는 전형적 우울증 환자의 양상이 나타났다. 우울증은 걷지 못하는 데서 시작됐다. 환자들의 회복은 한 걸음의 걷기에서 시작한다. 걸어서 밖으로 나가면서 첫 단추가 끼워진다. 걷기를 본격화하면서 식욕도 돌아오고, 잠도 잘 잘 수 있게 되며 의욕이 생기고, 결국 자신이 원하는 곳에 이르게 된다. 화병클리닉에서 보는 걷기는 삶과 질병의 시작과 끝이다.

바야흐로 3월, 봄이다. 제대로 걸을 수 있는 계절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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