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북 특사 파견보다 ‘北核 압박’ 韓·美 공조 다질 때다

문재인 대통령이 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대북(對北) 특사 조기 파견’을 통보한 것은, 남북 및 한·미(韓美) 관계가 또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북한 김정은이 신년사와 김여정 특사를 통해 ‘조속한 평양 정상회담’을 밀어붙이고, 문 대통령은 ‘여건’과 ‘우물가 숭늉’ 등의 표현으로 신중함을 나타내면서도 적극적 대북 유화책을 시도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한·미 사이에는 대북 정책 엇박자가 더 심각해지는 양상이다.

문 대통령이 평창동계올림픽을 활용해 미·북을 한자리에 앉히려던 ‘중매’ 계획은 일단 무산됐다. 대북 특사 파견은 4월 초 한·미 연합훈련 개시 때까지 3월 한 달 동안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보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양국 정상 통화 뒤 발표만 봐도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청와대는 “특사 파견은 물론 남북 정상회담까지 긴밀하게 소통하며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을 뿐, 비핵화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반면 백악관은 “북한과의 어떤 대화도 명확하고 변함없는 목표인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조건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게 확고한 입장”이라고 밝혔다. 명확, 확고, 불변 등의 표현을 되풀이 강조하는 데서 단호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북한이 비핵화 대화를 거부한다면, 대북 특사를 파견해 교류협력 확대나 정상회담 원칙에 합의해도 한반도 위기는 해소되지 않는다. 이미 김영철 북한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은 방남 기간중 ‘핵보유국 지위를 갖고 대화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측에 대화의 문턱을 낮추라는 것은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라는 의미로 비칠 뿐이다. 평창올림픽 대표단으로 방한해 문 대통령과 만찬을 함께한 제임스 리시 상원의원은 “(문 대통령이) 대화 문턱을 낮추라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미국 조야(朝野)의 주류는 이제 대북 제재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만큼, 김정은이 체제 붕괴와 비핵화 중에 택일할 때까지 압박을 높여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문 정부는 대북 특사 파견을 서두르기보다 한·미 동맹 차원의 대북 압박 공조를 더욱 다지는 노력을 선행하기 바란다.